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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일감 몰아주기' 태광그룹에 과징금 22억원
공정위, 비교없는 사익편취 제재 조항 첫 적용
2019-06-17 12:00:00 2019-06-17 12:00:00
[뉴스토마토 차오름 기자] 총수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의 김치, 와인을 전 계열사가 고가에 대량 구입하도록 한 태광그룹이 21억8000만원의 과징금을 받게 됐다. 이번 제재는 기업집단 내에서 합리적 고려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의 거래로 총수일가에게 부당이익을 제공한 행위에 대한 제재 첫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거래행위 금지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 제공 금지 위반으로 태광그룹에 21억8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호진 전 회장과 김기유 경영기획실장, 태광산업·흥국생명 등 19개 계열사를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이들의 혐의는 총수일가 소유 회사인 티시스가 식품위생법을 위반해 생산한 김치를 10킬로그램(kg)당 19만원인 고가에 전 계열사가 구매하도록 한 것이다. 계열사들이 지난 2014년 상반기부터 지난 2016년 상반기까지 구입한 김치는 총 512톤, 95억5000만원어치다.
 
김치 내부거래는 티시스의 실적 개선을 위해 이뤄졌다. 티시스의 자회사인 고급 회원제 골프장 휘슬링락CC의 적자가 티시스 전체의 실적을 악화시키자 이를 개선하려던 것이다. 휘슬링락CC는 총수일가의 지시, 김기유 경영기획실장의 계획에 따라 지난 2014년 4월 강원도 홍천군에 위치한 영농조합에 위탁해 김치를 대량 생산했다.
 
태광그룹은 각 계열사에 임직원수와 판촉 수요 등을 합해 구매량을 할당했다. 계열사들은 직원 복리후생비, 판촉비 등으로 김치를 구매해 직원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지급했다.
 
태광그룹은 지난 2015년 7월부터는 계열사 운영 온라인 쇼핑몰에 직원 전용 페이지를 구축해 김치 구매에만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하기까지 했다. 이 포인트 역시 복리후생비, 사내 근로복지기금 등 회사 비용으로 휘슬링락CC에 지급했다.
 
식품업계의 배추김치 가격은 kg당 6000원대, 알타리무김치는 7000원대로 휘슬링락CC 김치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 2016년 휘슬링락CC 김치의 영업이익률은 43.4%로 식품업계 평균 3%의 11.2배에 달했다. 더구나 휘슬링락CC는 식품위생법상 시설기준, 영업등록, 설비위생인증 등을 준수하지 않아 과태료와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태광그룹은 총수일가 소유의 또 다른 자회사 메르뱅의 와인도 각 계열사 비용으로 구입해 임직원들에게 명절 선물로 지급했다. 와인 유통 시장에는 500여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데도 계열사들은 가격 등 거래조건에 대해 다른 사업자와 전혀 비교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각 사별 임직원 선물지급기준을 개정하기도 했다.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지난 2014년부터 2016년 9월까지 메르뱅으로부터 구매한 와인은 총 46억원에 달한다.
 
김치와 와인 구매를 통해 총수일가에게 배당, 급여 등 형태로 제공된 이익 규모는 최소 33억원으로 추산된다. 공정위는 "티시스와 메르뱅 모두 총수일가의 지분이 100%인 회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 후 지배력 확대, 경영권 승계 등에 이용될 우려가 상당했다"고 밝혔다.
 
실제 티시스가 인적분할해 설립된 티알엔은 이 회장과 자녀의 지분이 91.2%에 달하며 현재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메르뱅은 지난 2008년 설립시 자본금이 1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 2017년 7월 상속증여세법상 평가방식에 따른 지분 가치가 55억원에 달했다.
 
세종=차오름 기자 risi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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