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소리가 쌓아올린 우주적 경외, 크라프트베르크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서 열린 6년 만의 내한 공연
기계처럼 맞물려가는 소리…그 위를 부유하는 인간적 울림
입력 : 2019-04-29 18:40:29 수정 : 2019-04-29 18:40:29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단순한 공연이라기 보다는 예술품의 감상, 때론 우주적 체험에 가까운 활홀경이었다.
 
네 명의 '로봇들'이 쌓아 올리는 소리들은 컴퓨터 세계를 여행하다, 아우토반을 질주했고, 무중력의 우주를 거닐었다. 자로 잰 듯 정확한 소리의 증축은 청각을 부지런히 공간화, 시각화시켰다.
 
20여분에 한번씩 '개벽'이 일어났다. 소리가 시공하는 새로운 세계가 끝없이 창조됐다.
 
지난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내한 공연. 6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그들에게선 세월의 흐름 따윌 느낄 새 조차 없었다. 포크 그리펜하겐(50)을 제외한 멤버 모두는 예순을 넘었지만 그들 모두는 영생하는 로봇 같았다. 파워풀했고, 기계적이었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한없이 인간적이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1970년대부터 활동해 온, 잔뼈 굵은 독일의 전자 음악 그룹이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속했던 일본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와 쌍벽을 이루는 '전자음악의 선구자'이자 '일렉트로닉 뮤직을 대중적으로 알린 최초의 뮤지션'으로도 평가된다.
 
지난 30년간 신시사이저, 일렉트로닉 퍼커션, 주문 제작한 보코더(목소리를 기계음화시키는 장비)로 밴드 만의 사운드 실험에 열중해왔다. 빌보드 앨범 차트 5위를 기록한 '아우토반(Autobahn)'(1974)을 비롯해 '트랜스-유럽 익스프레스(Trans-Europe Express)'(1977), '더 맨-머신(The Man-Machine)'(1978) 등의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전자음악에 토대가 있지만 팝, 록 영역에도 영향을 크게 미쳐왔다. U2와 데이비드 보위, 비요크, 디페쉬 모드, 뉴 오더, 마이클 잭슨, 콜드플레이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은 이들에 경의를 표하고 영향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거론할 정도다.
 
초기 멤버 플로리안 슈나이더가 탈퇴한 후 그룹은 랄프 휘터(73), 프리츠 힐페르트(63), 헤닝 슈미츠(66), 라이브 비디오 테크니션 포크 그리펜하겐(50)으로 4인조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3년 한국을 찾았을 당시에도 이 조합으로 큰 찬사를 이끌어 낸 바 있다.
 
우주를 구현해 낸 듯한 크라프트베르크의 'SPACELAB' 무대. 사진/뉴시스
 
이날 저녁 8시 칼 같이 등장한 네 멤버는 거대한 컴퓨터 한 대를 스크린에 띄우면서 등장했다. 70년대 처음 컴퓨터가 등장했던 때의 신선과 충격의 감정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사운드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머니', '피플' 등 간략한 단어들의 기계적 음성이 울리고, 주파수 대의 파형 모형에 맞춰 비트가 쪼개졌다. 장내 입장 전 나눠 준 3D 안경을 끼니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단색의 컴퓨터 부품들이 오로라처럼 춤을 추며 다가왔다. '넘버스(Numbers)', '컴퓨터월드(COMPUTERWORLD)', '홈컴퓨터(HOMECOMPUTER)', '컴퓨터러브(COMPUTERLOVE)'로 이어지는 21분의 '컴퓨터 세상'이 끝난 후에야 이들은 악기 위에서 분주하던 손을 멈췄다. 관중들의 박수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컴퓨터 세계에 대한 노래들은 광활한 우주에 대한 갈망으로 나아갔다. 우주선의 내부에서 바깥을 보는 듯한 3D 화면이 펼쳐지고, 멤버들은 각각의 소리들을 조합시켜 실제 이를 작동하는 듯한 연출을 시작했다. 
 
우주선 엔진의 발진 소리로 시작한 이 여정은 흡사 우주 체험을 하는 경험처럼 느껴졌다. 우주선을 조종하는 내부의 소리와 우주 밖을 유영하는 우주선의 소리가 교차하고, 3D 안경으로는 인공위성과 별무리들이 튀어 나오 듯한 환영을 일으킨다. 마지막 부분 대한민국의 지도, 올림픽 홀 사진을 교차 편집한 멤버들의 센스엔 관중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각각의 소리가 쌓아 올린 우주적 경외는 활홀경 그 자체였다.
 
소리는 다시 독일 경제의 구원자였던 아우토반 도로로 향했다. 분홍 폭스바겐 비틀이 주행하는 소리가 전자음으로 그대로 구현되는 순간, 장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동차의 바퀴소리와 차 내부의 라디오 음,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다 멀어지는 벤츠 차량의 소리. 4명이 쌓아 올리는 소리의 증축은 아우토반의 생생한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모든 곡들은 이들 넷이 쌓아 올리는 소리의 증축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와 영상은 정확한 이들의 '도면' 위에서 시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주최 측이 건네 준 셋 리스트를 힐끔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곳에는 마치 자신들끼리 공유하는 암호 같은 문구가 이런 식의 순환을 반복하며 적혀 있었다. ’20:15:30-컴퓨터러브(COMPUTERLOVE)/20:21:43-박수갈채(applause)’ ’20:50:23-라디오 액티비티(RADIO ACTIVITY)/20:56:47-박수갈채(applause)’
 
크라프트베르크 무대 모습.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기계처럼 맞물려가는 소리들은 한없이 차가웠지만 그 위로 부유하는 메시지는 강렬하고 한없이 인간적이다. 독일어, 러시아어, 일본어, 한국어, 영어 등 세계 각국 언어를 쏟아내며 그들은 인류의 옳고 그름을 단어 몇 개, 문장 몇 개로 읊어 댄다.
 
가령 후쿠시마 방사능에 대해 경고한 'RADIO ACTIVITY'의 순서 땐 커다란 고딕체 한글말로 ‘이제 그만 방사능’이란 문구가 거대하게 그려졌다. 관중들은 이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하 듯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며 화합했다. 
 
마지막 곡으로 '보잉- 뮤지크 논 스탑(BOING - MUSIQUE NON STOP)'이 흘렀다. 그들의 끝나지 않을 음악에 대한 다짐을 그린 노래. 스크린 위 음자리표 3D 기호들이 '보잉 붐짝' 거리는 사운드에 맞춰 두둥실 떠다녔다. 그리고 소리가 서서히 줄어 들 무렵, 2시간을 한 마디 말도 없이 서 있던 멤버들이 한 명씩 90도로 인사하고 퇴장했다. 
 
이보다 더 기계적인 공연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따스하고 아름다운 공연 또한 본 적이 없다. 기계 같은 소리에 담아낸 따스한 정서들, 그것이 바로 크라프트베르크였고, 그들의 음악이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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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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