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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뜨는 디지털 자산시장…국내 대처 미흡해 우려"
한중섭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장 "암호화폐 활용한 핀테크도 미국과 중국이 양분"
"글로벌 시장 진출 위해 하루빨리 국내 제도정비 절실"
2019-04-25 06:00:00 2019-04-25 10:31:10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암호화폐 기반의 글로벌 디지털 자산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중섭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장은 페이스북이나 애플 같은 글로벌 정보통신(ICT) 기업,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등 거대 금융·증권사들이 암호화폐를 활용한 디지털 자산사업에 적극 나서는 상황이라며 국내시장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의 시장 잠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더했다. 한 센터장은 지난 2013년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ICT 분야 주식분석을 담당했다. 그러다 비트코인 등 디지털 자산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지난해 말 체인파트너스에 합류했다.
 
국내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전문 리서치센터는 드물다. 체인파트너스와 리서치센터를 소개해달라.
 
먼저 우리는 암호화폐가 아닌 디지털 자산이란 표현을 선호한다. 화폐보다 자산의 관점에서 암호화폐에 접근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이기도 하다. 체인파트너스는 이같은 디지털 자산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금융플랫폼 회사다. 그런데 이 시장은 아직까지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상황이다. 리서치센터는 디지털 자산시장의 올바른 정보를 투자자와 산업계 종사자들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한다. 또 기존 금융사들과 협업할 수 있는 사업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디지털 자산에 대해 관심을 가진 계기는.
 
한국에서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 분야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였다. 그러다 홍콩 증권사에서 일하면서 ICT 분야를 담당하게 됐다. 2017년 암호화폐 버블이 한창일 때는 이 시장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 판단했고, 실제 이듬해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글로벌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이 디지털 자산시장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많이 들렸다. 또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나 넷스케이프를 만든 마크 안드레센, 트위터의 잭 도시 등 실리콘밸리 선구자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침 홍콩이나 미국, 싱가포르에서는 금융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많이 디지털 자산분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국내 금융업계는 대체로 암호화폐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데, 그 이유는 뭐라고 보나.
 
현실적으로 투기 수요가 많은 게 사실이다. 소위 '김치 프리미엄' 영향도 있고. 이런 탓에 정부에서 강하게 규제하고 있지 않나. 한국에서 정부가 싫어하는데 기존 금융사나 증권사가 전면에 나서기는 힘든 구조다. 실제 암호화폐 시장이 한창 호황일 때는 증권사들이 거래소 사업을 추진하거나 관련 상품을 준비했다. 현재는 정부 눈치를 보며 계획을 다 접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정부는 블록체인 산업은 진흥하되 암호화폐는 규제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사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순기능과 역기능이 모두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역기능이 많이 부각된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 체감되지 못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암호화폐를 통한 순기능도 많았다. 시야를 넓히면 남미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기존 은행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서는 비트코인이 대안적인 금융 시스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 버블이 역기능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닷컴 버블을 통해서 많은 기업이 망했지만, 유니콘들이 나와 세상을 바꿨다. 이 시장도 그런 가능성을 지녔는데, 현재 자금줄이 막힌 상태라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금씩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삼성이나 카카오 등 대기업 참여가 이뤄지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지 않나.
 
국내외에서 디지털 자산시장도 대기업 중심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성이 선제적으로 스마트폰에 암호화폐 지갑을 탑재했다. 애플과 화웨이, 샤오미 등도 따라갈 텐데, 그렇게 되면 대중화는 앞당겨질 것이다. 월가 금융자본이나 실리콘밸리 인터넷기업들도 이미 관련된 투자를 많이 했다. 문제는 기존 스타트업이 해왔던 사업들이 얼마나 지속가능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결국 직접적인 경쟁보다 협업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 페이스북이 자체 코인을 발행하고, 세계 최대 거래소인 인터컨티넨털 익스체인지가 디지털자산 전문 플랫폼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면 시장 판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한중섭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장이 지난 1월 서울 역삼동 마루180에서 열린 체인파트너스 미디어토크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체인파트너스
 
암호화폐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시장을 강조했다. 결국 자산시장을 중심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업계가 돌아갈 것으로 보나.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나는 그렇다고 본다. 국내에서도 생태계의 핵심 역할은 거래소가 하고 있다. 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핀테크 얘기를 많이 하지만, 비트코인이 나오기 이전의 핀테크는 아이폰 이전의 모바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이 나오면서 핀테크 분야에서 확실한 '퀀텀 점프'가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디지털 자산시장은 결국 현재 인터넷시장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될 것 같다. 글로벌 시장으로 보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고군분투하는 수준이지 않나. 자산시장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핀테크, 암호화폐 시장에서 강세를 보일 거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 규제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중국은 신용카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 그래서 바로 알리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시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모바일 결제가 이뤄지다 보니 여기서 대출과 자산운용, 보험 같은 금융 서비스들이 활발히 이뤄진다. 이게 암호화폐 시장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중국 정부는 핀테크 산업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글로벌시장에서 채굴과 거래소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다. 무조건 금지하는 게 아니라 자국 내에서 하지 말고 해외시장에서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셈이다. 또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에도 적극적이다. 정부 통제가 가능한 블록체인 기반의 CBDC, 암호화폐 관련 핀테크 등 선진화된 서비스들이 중국에서 가장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최근 리서치센터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통화 상이성'이 없기 때문에 글로벌 디지털 자산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스타벅스도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고, 애플도 골드만삭스와 함께 애플카드 사업에 진출했다. 이같은 글로벌 핀테크 사업들이 암호화폐 기반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암호화폐가 각국 통화 장벽을 넘어 국경을 초월한 가치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다른 측면에서 기존 금융 인프라가 열악하고 법정화폐의 가치가 불안정한 남미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암호화폐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장을 누가 선점하냐가 중요한데, 우리도 빨리 해외시장을 개척할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빨리 제도화가 이뤄져야 한다. 실질적인 규제방안이 마련돼 사기꾼이 있다면 시장에서 빨리 퇴출시키고, 우리 산업의 체력을 기르는 방향에서 빨리 제도를 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해외에서는 수년간 노하우와 인프라를 축적해놓고 있는데, 국내에서 뒤늦게 따라가려 한다면 이미 늦는다. J.P.모건의 경우, 다이먼 회장은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현재 자체 코인을 발행하고 관련 산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런 변화가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충분히 연구하고 준비해서 나온 결과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도 지난해부터 비트코인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미 2014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금융권에서 나와 암호화폐나 디지털 자산과 같은 비교적 새로운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느낀 점들이 있다면.
 
이 산업의 장기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확고한 편이다. 미래 잠재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장의 규제 장벽이 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절감했다.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해외에서 결과물이 나오고 실질적인 성과들이 보여야 국내 상황이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내 금융분야는 규제 산업이라 핀테크가 클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국내 업체들이 아니라 거대 해외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이 국경을 초월한 디지털 자산을 활용해 금융사업에 진출할 것이고, 우리는 그들에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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