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풍전등화 DMZ의 두루미
2019-03-18 06:00:00 2019-03-18 08:41:21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위풍당당한 두루미들이 매년 겨울을 DMZ에서 지낸다. 가속화되는 개발이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들을 위협한다면, 남북 간의 평화는 멸종위기의 두루미들을 위협할 수도 있다.” 미국 NBC가 3월 3일 보도한 저녁 뉴스의 제목이다. DMZ에 대한 외신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베트남에서 열린 북미회담을 계기로 미국의 CNN과 일본의 NHK가 DMZ 일원의 환경과 생물다양성의 위협을 다루었다. 특히 NBC는 동북아를 오가는 두루미를 남북평화의 상징으로 설정하고, 3일 동안 철원 DMZ와 민통선 일대에서 주민과 군인 그리고 군사시설을 배경으로 개발이 두루미에 미치는 영향을 취재하였다.
 
북핵을 두고 북한과 미국 간에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한국인들은 이 줄이 아예 끊어져버릴까 가슴을 졸인다. 얼마 만에 찾아온 남북의 봄인데…모처럼의 남북평화와 교류의 분위기가 북미회담의 결렬로 덩달아 무산될까봐 조마조마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남북교류가 DMZ 일원의 생태·환경을 침해할 것을 우려한다.
 
북미회담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남북교류의 확대를 전제로 DMZ 일원(민통선 이북지역과 접경지역 일부를 포함한다)의 보전과 이용 및 개발 논의가 봇물이 터지듯이 제가백가를 이룬다. 행정안전부나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DMZ 일원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DMZ에 개발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국방부는 DMZ와 민통선 사이 즉 민통선 이북지역(민북지역)을 점차 줄이고 있다. 민북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함이 주된 목적인데, 이를 기화로 난개발이 확산되고 있어, DMZ 일원의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이 위협을 받고 있어 걱정이다.
 
지금 민통선 안에는 농업용 온실(비닐하우스)과 축사들이 우후죽숙처럼 늘어나고, 농지 여기저기에 액상비료들이 뿌려져 악취를 풍긴다. 양구의 펀치볼 등에는 인삼밭이 무성하여 농약과 비료로 인한 토양오염을 가속화시키고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있다.
 
DMZ 개발바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관계부처나 지자체가 꿈꾸는 수많은 개발구상들은 ‘생태’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으나 한반도 유일의 동서 생태축(DMZ)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남북을 잇는 경제통로들을 경쟁적으로 복원하거나 신설하겠다고 주창함으로써,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무색하게 만든다.
 
민통선이 자꾸 DMZ 쪽으로 북상하면서 두루미, 철새, 산양, 사향노루, 토종어류 등의 서식지를 침해한다.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이러한 개발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종래 북측 안변의 두루미들은 서식 환경이 악화되자 남측으로 몰렸다. 이제 그 두루미들이 다시 갈 곳을 잃을 처지에 놓여있다.
 
연천 군남댐 주변의 두루미 서식지들도 댐 수위 조절로 피폐화되고 있다. 4대강 개발로 파괴된 철새들의 서식지가 비닐하우스와 축사의 증가 등으로 더욱 줄어든다. 철원의 두루미들은, 서해안을 거쳐 순천만과 일본의 이즈미까지 왕래하는 두루미들과 달리, 점점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경원선의 개통과 같은 경제통로의 활성화는 철원의 상업과 농업을 더욱 활성화시켜 철새들의 서식지를 침해할 것이다. 두루미가 사라지면, 생물종 하나를 잃는 것으로 끝날까? 미국 NBC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파고든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표어대로라면, 인류의 기술(농업과 임업 및 수산업)은 생태계와 야생을 도울 수 있다. 우리 국민신탁법에는 자발적 보전협약과 같은 대안이 있다.
 
자연환경국민신탁과 같은 NPO는 기업과 독지가들의 후원을 받아 철원 토교저수지 앞에 ‘두루미네논’ 2필지를 마련했다. 이를 경작하는 철원두루미보호협회는, UNDP의 표어처럼, 사람도 살고 두루미도 사는 세상을 꿈꾼다. 두루미는 몽골, 시베리아, 남북한, 일본등 동북아를 넘나드는 평화사절이요 미래세대 문화전령이다.
 
‘천년의 학’ 두루미는 한국과 아시아인들에게 특별한 존재이다. 두루미는 장수와 평화의 상징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학’(1953년작)은 두루미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나타낸다. 두루미를 잃으면, 두루미를 소재로 삼았던 수많은 이야기들도 사라진다. 아시아의 미래세대들은 문화의 단절을 겪을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