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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재계시각)첫 외부기업 인수 ‘현대중공업’, ‘대우의 저주’ 풀수 있을까
2019-03-18 00:00:00 2019-03-18 15:51:27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현대중공업이 ‘범 현대가’가 아닌 외부 기업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다. 과거 CJ투자증권을 인수해 하이투자증권으로 운영하다가 지난해 매각한 적은 있지만, 주력 사업을 기준으로 하면 대우조선해양이 처음이다. 더 나아가 한 때 중공업 맞수로 불렸던 ‘현대’와 ‘대우’가 한 식구가 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생전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김우중 회장의 대우를 일컬어 기업을 인수할 줄만 알지 처음부터 키워본 경험이 없다고 폄하했고, 김 회장은 아산이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자 잠시 경영을 중단하고 정치판에서 맞불을 놓을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현대의 경쟁상대로 삼성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주력 사업이 중복된 대우와의 마찰이 컸다. 실제로 영업일선에서 만난 양사 임직원들이 서로를 이기겠다는 각오가 엄청났고, 이로 인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객 빼앗기 경쟁도 치열했다고 한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후 각 계열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새주인을 찾았다. 일부 기업들은 새로운 기업문화에 흡수되어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으나, 그보다 충돌을 일으킨 경우가 많았다. 대우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06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며, 재계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의 기업문화는 대우건설을 통제하기에 역부족이었고, 그룹이 무너질 상황에 몰리자 결국 회사를 포기했다. 대우자동차(현 한국지엠)는 노조에 관해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는 GM도 관리를 제대로 못해 군산공장 가동중단에 이어 한국 생산 중단이라는 최악의 수까지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지주 부회장(앞줄 왼쪽 세번째)을 비롯한 그룹 경영진들이 정주영 창업자 18주기를 앞두고 지난 16일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찾아 참배해 묵념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소위 말하는 ‘대우의 저주’라는 단어가 나오는 이유다. 대우 계열사를 인수하면 모 그룹이 흔들린다는 것인데, 그만큼 대우의 기업문화는 다른 기업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포스코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해 어떻게 해서든지 잡음 없이 경영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의 자존심인 미얀마 가스전을 매각하려고 했다가 최고경영자(CEO)의 항명사태를 치르고 철회했다.
 
자존심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현대’와 ‘대우’가 합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더군다나 두 회사는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전 세계에서 수주경쟁을 벌이는 기업이다. 어느 한쪽이 처지면 그나마 나을텐데 두 회사 모두 실력에서 뒤지지 않는다.
 
그동안의 역사를 놓고 보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선업계에서는 당장 노조의 반발만 잘 해결하면, 양사는 분명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일단 지주사 ‘한국중공업’ 아래에서 두 회사는 독립경영을 한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선박 영업과 설계, 생산 등을 총괄하고 있어 대우조선해양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조선사들은 오랫동안 거래해 온 특정 선주들로부터의 매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이러한 충성 고객 선주가 거의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선주들이 대우조선해양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있다고 당장 거래를 끊지 않을 것이다. 인수·합병(M&A)에서 제외된 삼성중공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맞지 않다. 삼성중공업의 고객층도 양사 못지않게 두텁다.
 
합병이 결정된 만큼, 미래를 위해 양사가 보유한 강점을 합쳐야 할 시점이다. 양사가 힘이 있을 때, 중국과 일본이 헤매고 있을 때 혁신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물리적·화학적 결합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때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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