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과 화합의 장…'음악 생태계' 재정의한 한국대중음악상
양희은부터 BTS까지…대중음악계 관통한 '한국의 그래미'
단순한 수상 의미 넘어…"뮤지션들 어깨 두드려주는 시상식"
입력 : 2019-02-27 16:55:09 수정 : 2019-02-27 17:03:32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침이슬'이란 곡을 제가 49년 동안이나 부르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돌이켜 보면 음악생활을 막 시작했던 당시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든 노래들은 파기되기 일쑤였고, 그래서 어떤 노래를 쓰고 불러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 '한국대중음악상(KMA, 한대음)' 시상식. '국내 대중음악계의 대모' 양희은이 무대에 오르자 일대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정확한 발음으로 한글자, 한글자 힘주어 얘기하는 그의 육성이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중간에 라디오 DJ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음악을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후회도 많습니다. 여러분, 버티고 오래 오래 음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이 자리가 단순히 경쟁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 너무나 좋습니다."
 
양희은의 이 수상소감은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의 취지와 의미를 그대로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단순한 시상식의 의미를 뛰어 넘은 포용과 화합의 장이었다. 선배들과 후배들, 주류 장르와 비주류 장르. 음악을 재단하는 높고 낮음에 상관 없이 모두가 얽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가 독려하고 보듬어주는 '음악 생태계'의 새로운 정의였다.
 
철저하게 음악성 기준으로 평가…'코리아 그래미'
 
한국대중음악상은 국내의 다양한 음악 장르를 아우르는 시상식으로 오랫동안 통해왔다. 타 시상식과 달리 음악성 평가에 큰 비중을 두기에 '한국판 그래미어워즈'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밴드나 힙합, 포크 등 K팝 가수가 아닌 이들이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고, 음악이 알려지는 국내 유일무이한 채널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시상식은 순간의 인기에 연연하기보단 음악성을 철저한 평가 기준으로 삼아왔다. 학계와 대중음악계 평론가, 음악 담당 기자와 방송 PD, 시민 단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후보 추천을 받고 투표를 거쳐 수상자를 결정해왔다. 
 
역대 수상자로는 러브홀릭과 더더, 빅마마, 조PD, 윤도현, 이한철, 이적, 장기하와 얼굴들, 언니네이발관, 서울전자음악단, 소녀시대, 싸이, 조용필, 빅뱅, 박재범, 선우정아, 혁오 등이 있다. 수상자 면면을 보면 아이돌 음악에 치중된 타 음악 시상식에 비해 대체로 장르적 편중이 없는 편이다. 
 
올해는 2017년 12월1일부터 2018년 11월30일까지 발매된 음반을 대상으로 평가를 했다. 예년처럼 인기도와 방송 출연 빈도, 음반 판매량 등 여타 시상식에서 통용되는 채점표를 버리고 철저히 음악성을 기준점으로 세웠다. 수상 부문도 록을 모던 록, 메탈&하드코어와 나누고 팝, 댄스, 일렉트로닉, 랩, 힙합, 알앤비, 소울, 포크, 재즈까지 다양화시켰다. 
 
이날 사회자로는 1990년대부터 대중음악계를 대표해 온 가수 이승환이 맡아 선후배들을 잇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블랙 메탈 밴드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사진/뉴스토마토
 
비주얼 록 군단도 환영…다양한 장르의 포용
 
시상식이 중반을 향해갈 무렵, 징 박은 가죽재킷에 하얀 얼굴 분장을 한 이들이 일어서자 곳곳에서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블랙메탈 밴드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의 수상 순간이었다.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부문에 오른 이들은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딱 두 마디 만으로 좌중을 폭소케 했다. 
 
무대 위에서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이들은 "데뷔 이후 줄곧 해외에서 활동을 해왔다"며 "1집부터 3집까지 전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활동하다 지난해 한국에서 처음 4집을 냈다. 이런 모습이 생소할 수 있겠지만 관심이 생기셨다면 음악을 찾아봐달라. 앞으로 좋은 음악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순서 외에도 이날 시상식은 다채로운 장르의 향연이었다. 올해 시상식 후보곡을 미리 리믹스 형태로 들려준 'DJ 퓨어백프로'의 무대를 시작으로 록부터 포크와 팝, 힙합, 알앤비, 재즈 뮤지션들이 무대를 오르내렸다. 
 
세월호 참사와 한국사회를 돌아보는 음반으로 수상한 이선지 피아니스트는 "세월호에 관한 음악이고 나약한 사람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며 "곡 자체는 무거운 느낌이지만 오늘 이 자리가 마음의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앞으로도 폭 넓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상식 중간 중간의 축하 공연 역시 다채로운 장르를 포용하는 축제로 꾸며졌다. '최우수 포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된 네 명의 뮤지션(김사월, 황푸하, 김동산, 김해원)은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합주했고, 밴드 '로다운30'과 힙합 프로듀서 '비앙, 쿤디판다'는 개성 넘치는 음악들로 무대를 꾸몄다.
 
'한국대중음악상' 종합 부문 '올해의 음악인'에 수상된 후 소감을 말하는 방탄소년단. 사진/뉴스토마토
 
선후배 뮤지션, 화합과 독려 빛났다
 
양희은이 열어젖힌 시상식의 '화합' 분위기는 말미까지 이어졌다. 선후배들은 서로 격려를 아끼지않았고, 음악관계자들도 '음악계의 상생'을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
 
이날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팝 음반' 부문에서 2관왕을 차지한 장필순은 "제주도에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왔다"며 "'주변 지인들에게는 방탄 때문에 올해는 힘들다' 미리 말해놨다"고 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이어 "그런데도 이렇게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사실 제 음악의 반쪽은 조동진 선배의 것이라 생각한다. 30년 동안 그와 함께 숨 쉬어왔다. 그의 유작을 이 곳에서 아름답게 마무리 짓는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모든 후보들이 한국대중음악상을 만들었다 생각한다. 더 좋은 곳에서 많은 분들과 이 상을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회자 이승환은 "지난해 연륜과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선배님의 음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제주도의 '소길'이란 지명에서 음반 제목을 따왔다 하니 제주도로 여행을 가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꼭 선배님의 음반을 들어보셨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한 애리(AIRY)는 "음악을 시작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고 공연 다니면서도 용기가 필요했다"며 "힘들었던 일들을 거치면서 '다들 어떻게 음악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너무 답답했었는데 이 곳에서 힘을 얻고 간다. 내 꿈이 평가절하 당하는 힘든 순간이 있어도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양희은은 후배 김사월에 트로피를 직접 전해주며 격려했고, 이승환은 밴드 라이프 앤 타임등 후배들의 수상을 축하하며 무대에서 기념샷을 직접 찍어주기도 했다. '올해의 음악인'과 '올해의 노래', '최우수 팝 노래' 3관왕에 오른 방탄소년단(BTS)은 "음악에는 고하가 없다고 생각한다. 성별, 나이, 국적 구분 없이 음악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상의 의미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대중음악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상식의 위원장인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겸 한국대중음악학회 회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좋은 음악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 믿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악이 필요하다. 부디 이 시상식이 뮤지션들의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있는 상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시상식 말미에는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동료 음악인들에 대한 추모의 시간도 있었다. 국내 재즈 1세대 뮤지션으로 '한국의 베니굿맨'이라 불린 이동기, 한국식 스탠더드팝을 정립시킨 최희준,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 전태관의 영상이 홀 벽면에 흘렀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운드가 점차 줄어들 무렵 "이분들이 다져온 길을 잘 되새기는 게 우리들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싶다"고 이승환이 말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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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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