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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뺑반’, 차는 좋은데 네비게이션이 고장났다
2019-01-30 00:00:00 2019-01-30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수사극과 추격전 그리고 카체이싱이 결합됐다. 빠른 전개와 긴박한 긴장감 여기에 강력한 빌런이 예감된다. 영화 뺑반은 이 조건을 어느 정도는 채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길을 잃은 느낌이다. 카체이싱의 탄력으로 곧바로 달려가야 하지만 중간에 급격하게 핸들을 꺾는다. 이런 방향 전환은 크게 두 가지다. 시나리오에서의 문제다. 스토리 전체의 결말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결이 잘못됐음을 인지하고 빠르게 분위기 전환을 한 것이다. 두 번째는 디자인의 문제다. 이건 연출이라기 보단 명백한 디자인이다. 원초적으로 뺑반은 카체이싱의 속도감을 살리면서 추격의 쾌감을 살려야 했다. 속도감은 속도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지만, 추격은 인과 관계의 문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 설정이 명확해야 한다. ‘뺑반은 중반 이후 흐릿해진 이 관계 설정을 위해 다소 무리한 요소를 집어 넣었다. 사실 무리하다고 볼 순 없지만 전체의 흐름에서 분명히 도드라져 보이는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뺑반은 확실하게 시동을 걸었고 빠르게 엑셀레이터를 밟았는데 중간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버렸다. 결국 앞선 탄력을 쫓기에는 역부족이란 느낌이 강했다.
 
 
 
뺑반은 기존 수사극 혹은 형사물에서 장르적 제도권 밖에 위치해 있던 내사과와 뺑소니전담반을 소재로 했다. 내사과 경위 은시연(공효진)과 뺑반 소속 순경 서민재(류준열)의 활약은 버디물의 그것을 쫓기에 꽤 안성맞춤의 조건을 보인다. 은시연은 무리한 내사 수사로 인해 좌천된 인물이다. 서민재는 다소 우스꽝스런 외모이지만 그것을 커버할 천재적인 감각을 소유했다. 이들은 점차 서로에게 녹아 들어가면서 사건의 합을 맞춰 간다.
 
뺑소니 전담반이 주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JC모터스 소속 정채철 회장(조정석)을 겨냥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은시연은 정재철과 경찰 고위 관계자의 비밀 커넥션을 파헤치다 좌천됐다. 은시연의 직속 상관 윤지현(염정아) 과장은 비밀리에 내사 수사를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이미 은시연과 윤지현은 정재철의 커넥션 파워에 사건이 무마됐고 좌천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내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지점까지만 해도 나쁜놈은 명확해 졌다. 영화에서도 그것을 뒷받침할 여러 힌트가 직접적으로 거론된다. 정채철은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장애에 가까운 캐릭터로 묘사된다. 그의 무소불위 권력은 영화 속 나이대와 다소 걸맞지는 않지만 납득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영화 '뺑반' 스틸. 사진/쇼박스
 
중반까지의 전개다. 은시연과 윤지현 두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과 그 반대편에 선 정재철의 강렬함이 꽤 이채롭다. 형사물 특유의 마초 감성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날카로움으로 대체됐다. 은시연과 윤지현이 만들어 낸 날 선 감각과 반대로 정재철이 만들어 낸 예측 불가능의 불안함이 눈길을 끈다. 이 정도면 중반까지의 흐름은 합격점이다. 그래서 뺑반이 제목처럼 카체이싱을 예감한 활극이 아니라 정통 수사물이 가까운 흐름으로 이어간 지점이다. 인물간의 충돌과 그 충돌이 만들어 낸 꽤 강렬한 파열음도 수준급이다.
 
하지만 뺑반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측 불가능이었다. 은시연과 윤지현이 만들어 낸 긴밀하고 세심한 지점을 중반 이후부터 버린다. 서민재 캐릭터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여성 캐릭터의 주도적 방향성에 확신을 못 느낀 것인지 모르겠다. 급격한 핸들 전환의 목적지는 서민재의 개인 스토리였다. 서민재의 숨겨진 사연부터 그가 핸들을 쥔 운전자가 된 뒤 뺑반은 급격하게 속도를 올린다. 앞서 달려온 수사극과 형사물 특유의 속도감을 넘어선다. 중반 이후의 방향 전환과 그리고 더욱 엑셀레이터를 밟아 만들어 낸 속도감이 어색하지는 않지만 그 이유가 다소 엉뚱하고 의도가 보이기에 명확하게 흐름을 따라가는 관람의 동력이 떨어진다.
 
영화 '뺑반' 스틸. 사진/쇼박스
 
놀랍게도 영화는 후반 이후 또 한 번의 핸들을 꺾는다. 국내 장르 영화가 버린 것으로 판단됐던 반전 강박증이 일어난다. 예상 밖의 인물이 검은 속내를 드러내면서 스토리는 끌어 올린 속도감에 연신 클러치를 밟으며 공회전을 일으킨다.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낸 결말의 완성도는 이미 예상을 하고 있던 지점이다. 결말의 정공법이라고 하면 옳고 결말의 뚝심이라고 하면 다소 힘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방법이 힘겹다. 빠른 속도감으로 치고 나가고 올 곧게 뻗은 길을 그대로 달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뺑반은 그 속도감에 겁을 냈던 듯싶다. 치고 나가는 속도감에서 브레이크와 클러치를 연신 밟아댄 탓에 레이싱의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분노의 질주를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스피드의 쾌감을 느껴야 할 장르와 구성의 특성을 스스로 버린 느낌에 안타까움이 들 정도였다.
 
영화 '뺑반' 스틸. 사진/쇼박스
 
이건 속도의 문제라기 보단 목적지를 안내하는 네비게이션 문제처럼 보인다. 달리는 차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이건 분명히 안내의 문제다. 좋은 차가 아까워 보였다. 개봉은 1 30.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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