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심수진 기자]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가 외부감사법에 따른 회계감사 '표준감사시간' 제정 초안을 공개했으나 이해당사자인 기업들과의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진통을 겪고 있다. 감사시간이 50% 이상 크게 늘어나는 안을 내놓았지만 기업측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공회는 회계감사 이용자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으나, 기업 측은 충분한 공론화 없이 한공회가 일방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한공회가 공표한 표준감사시간 제정안을 놓고 기업측과 한공회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표준감사시간은 감사인이 적정한 감사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말한다. 지난 2017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전부 개정 이후 지난해 11월1일부터 표준감사시간을 제정하도록 명시한 신외감법이 작년 11월1일부터 시행됐다.
한공회는 2017년부터 연구용역을 통해 표준감사시간 제정안을 준비해 이달 초 초안을 공개했다. 지난해 10월부터 표준감사시간심의위원회를 운영하며 회계정보이용자와 기업, 감사인의 의견을 수렴해왔다는 설명이다.
표준감사시간 제정안에 따르면 외감 대상 기업들의 감사시간이 기존보다 50%에서 많게는 8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공회측은 선진국에 비해 감사시간이 현저히 낮아 감사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밝혔다. 기업측도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시간을 강화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
감사대상은 기업의 상장 여부와 회사의 규모, 사업의 복잡성, 내부회계관리제도의 구성 등의 요인을 고려해 자산총액과 상장, 비상장을 기준으로 9개 그룹으로 분류됐다.
그룹별로 적용되는 표준감사시간은 특정 산식을 통해 정해지는데, 문제는 이 통계모델에 대한 타당성 검증 여부다. 전 세계적으로 표준감사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 첫 번째 사례가 되는 만큼, 감사시간을 산출하는 통계모델의 신뢰도가 높아야하는데 기초 자료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한공회가 2017년부터 연구용역을 통해 만든 모델로 알려졌으나, 업계 관계자는 통계모델의 타당성이 아닌 산식에 대한 검증만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 11일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설명만으로는 통계모델의 타당성을 검증 받은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통계 전공자의 검증을 거쳤다고는 하나 이는 모형의 산식에 대한 검증이었고, 기초자료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적 규제 아닌 '가이드라인'…기울어진 심의위
표준감사시간은 적정한 감사를 위한 가이드라인일 뿐 법적 강제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한공회가 지난 17일 먼저 발표한 초안에 '최소시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혼선을 빚었다. 이에 금융위원회에서 표준감사시간은 적정 감사시간에 대한 참고사항일 뿐 강제규범이 아니라고 지적하자 한공회측은 이를 삭제한 제정안을 다시 공개했다. 그러나 제정안 시행시기에 대한 '적용률', '시행유예' 등은 이 제정안이 참고사항이 아니라 강제규범인 것처럼 비쳐진다.
이 제정안을 놓고 2차 공청회를 거쳐 심의위원회가 열리더라도 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심의위원회 구성원 다수가 한공회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15명 중 한공회 회장이 위촉하는 인원이 9명이다. 기업 측은 상장사협의회,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코스닥협회, 코넥스협회 등 5명이다.
기업들은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2월 중순까지는 회계법인과 감사계약을 해야한다. 지난해 말 감사계약을 마친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들은 대부분 기존보다 비용을 높게 책정했거나, 계약서에 표준감사시간에 따라 시간이 늘어나면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특약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을 앞둔 중소형 기업들도 이를 감안해 계약서를 쓸 가능성이 높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코스닥 기업들의 경우 이미 대기업보다 감사를 까다롭게 받고 있는 상황이고,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투자할 수도 있겠지만 비용 부담은 있다"고 말했다.
한공회는 20일간 제정안에 대한 의견을 받고 2차 공청회를 거쳐 이를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기업 측은 아직까지 표준감사시간 문제가 공론화조차 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일부 중소 상장사 중엔 표준감사시간 적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장협 관계자는 "외감법에 해당하는 기업이 3만3000여개인데, 중소기업에서는 이 같은 사안에 대해 파악할 인력조차 없을 만큼 소규모인 곳도 많다"며 "이번 표준감사시간 제정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더 신중하게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필요한데, 충분한 공론화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심수진 기자 lmwssj072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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