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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 ‘증인’, 결코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
2019-01-23 00:00:00 2019-01-23 09:57:16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증인’은 결핍에 관해 얘기한다. 우리는 흔히 결핍을 갖고 있으면 비정상이란 시각으로 바라본다. 정상 대 비정상이란 이분법적 논리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신체적 결핍 대상인 장애인, 부가 결핍된 가난한 자, 엄마의 존재가 결핍된 부자(父子) 가정, 그리고 싱글맘. ‘증인이 그려내는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가 결핍이다.
 
 
 
증인속 세상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증인이 있다. 사건은 반 이상 해결된 셈이다. 그런데 그 증인이 16세 자폐스펙트럼을 앓는 소녀다. 이 소녀의 증언으로 살인범으로 몰린 가사 도우미가 있다. 누가 봐도 선량한 인물이다. 주변 사람들도 선량해 보이는 그에게 힘을 보탠다. 사회는 이제 따가운 눈초리를 돌린다. “자폐아의 증언, 과연 믿을 수 있는가!”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소속된 로펌 대표는 재판정에서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들이밀며 외친다. “자폐는 일종의 정신병으로 볼 수 있다!”. 정신이상자 증언을 엄중한 재판정에서 증거로 채택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무고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없다고 외친다. 과연 우리라면 자폐아의 증언을 믿을 수 있을까.
 
이제 영화는 소녀의 증언이 정신이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정과 팩트를 도입한다. 첫 번째는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소녀가 바라본 현실에 대한 이해다. 자신만의 의사소통 방식이 있는 지우(김향기)와의 대화를 위해 순호는 지우의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또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한다.
 
영화 '증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순호는 지우의 세계에서 지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모습은 혼란이다.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은 그저 혼란일 뿐이다. 순호에겐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 지우에겐 고통이었다. 감각의 문제였다. 청각이 민감한 지우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듣고 그 때문에 살인사건의 증인까지 됐다. 발달장애인의 감각 문제는 그들의 삶을 온전히 지배한다.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 모든 감각이 어떤 부분에선 너무 민감하거나 어떤 부분에선 너무 둔화됐다. 그리고 많은 경우 감각들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해 정보를 인식하는 데 있어 오류를 일으킨다. 영화 속 지우가 그랬다. 고도로 발달한 청력으로 인해 그에겐 재판정의 시계 초침 소리가 고통스러울 정도다. 하교길 자신을 반기는 동네 개의 짖어댐이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순호는 지우의 특성을 재판정에서 소개하며 설명한다. “자폐스펙트럼을 앓는 친구들의 경우 나비의 날갯짓 소리를 굉음처럼 받아 들일 수도 있다. 실제 가능한 케이스다.
 
지우는 영화에서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 시선을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우의 시선에서 낯선 상대의 얼굴은 얼굴로 보이는 게 아니다. 눈만 크게 다가오거나, 속눈썹의 떨림이 감지되거나, 얼굴 표면 솜털이나 모공이 확장돼 다가와 보일 수도 있다. 자폐 스펙트럼이 던져주는 감각의 문제다. 영화가 짚어낸 발달장애인의 세계다.
 
영화 '증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증인’이 주목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발달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들 가운데 발달장애인의감각 문제를 처음으로 깊이 있게 다뤘다. 기존 발달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특별한 재능을 지닌서번트 증후군에 주력했다면, ‘증인은 재능이 아닌 감각에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발달장애 특성을 이해시키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영화는 이제 결핍의 얘기에 충실하기 위해 순호의 변화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세상의 관점에서비정상으로 인식된 지우를 통해정상이라 불리는 세계에 속한 줄 알았던 순호는 오히려 자신에게 있는 결핍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지우의 비정상적이라 여겨질 만한 통념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민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투쟁하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지우의 맑음과 순호의 투쟁은 순수하단 것에서 맞닿아 있다. 순수의 지점에선 정상도 비정상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없다.
 
영화 '증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박근형), 이버지가 남긴 엄청난 빚, 그로 인해 포기한 결혼. 그 모든 것들이 순호를 제도권 세상으로 몰아넣었다. 제도권 안에 들어가야 정상이 되는 사회였다. 그런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의 맑음을 보면서 순호는 깨닫는다. 이제 변화의 주체는 지우가 아닌 순호다.
 
영화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다.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값진 무언가를 얻게 된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오빠생각착한 영화를 주로 연출한 이한 감독은 이번증인에서도 착한 영화의 감성을 이어간다. 하지만 착함에만 집중한 채 진짜를 놓친 이 영화의 아쉬움은 발달 장애 가족의 눈에는 분명히 보일 것이다. 이건 분석과 평가의 개념이 아니다. 그저 보일 수 밖에 없다.
 
‘증인’은 그동안 미디어(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능)가 소비해 왔던 발달장애의 소비적 측면을 탈피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영화채비가 그려낸 극단적 슬픔, ‘7번 방의 선물이 그려낸 억울함, ‘그것만이 내 세상이 그려낸 서번트 성공신화등은 그저 현실 속 영화일 뿐이다. 반대로 증인은 그것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라보려 노력했지만 그 방법 안에 역시나기존 프레임을 집어 넣었다. 발달장애 특별성에 대한 활용 방식 문제다. 영화 속 지우처럼 특정감각이 초능력 수준으로 발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번트스토리와 분명히 구분되지만 시선은 같다. 그 시선 자체가 불편하다. 이미 영화 밖 현실의 순호조차 지우의 특별한 감각이 다른 기관의 퇴화로 일어난 시스템의 보완이라고 인식했다. 소수의 특별성으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증인도 마찬가지다.
 
영화 '증인'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건 착함도 따뜻함도 아니다. 교묘한 형태로 기존 프레임을 반복했을 뿐이다. 이 영화가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개봉은 2 13.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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