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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극한직업’, 웃음 심약자 ‘절대 관람불가’
충무로 최고 ‘말맛’ 연출 이병헌 감독, 대사 코미디 ‘甲’
유쾌하고 유니크한 상황 연출, 반박자 빠르거나 느리게
2019-01-11 00:00:00 2019-01-11 09:44:54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병헌 감독은 충무로 최고의 각색 작가다. 굳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나열할 필요도 없다. 포털사이트 프로필 검색에서 그가 참여했던 작품들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그가 참여했던 작품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코미디다. 슬랩스틱 혹은 상황적 코미디가 아니다. 기묘하게 두 가지를 혼합한 복합 코미디다. 두 번째가 포인트다. 복합 혹은 혼용이라고 불러야 할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를 움직이는 동력은 말 맛이다. 그의 연출 데뷔작 스물을 떠올려 보면 확실하다. 대사 하나 하나, 대사 속 단어 하나 하나에 양념을 듬뿍 쳤다. 인공 감미료 ‘MSG’의 맛이 아니다. 이건 예상 밖의 지점이다. 그의 영화 속 코미디는 그래서 예상을 조금씩 벗어나고 그 맛에 감탄하고 또 탄복하게 된다.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는 그런 맛이 있다. 대충 봐도 폭소가 터지고 제대로 보면 출산의 고통을 느낄 만큼의 배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극한직업은 웃음 심약자의 경우 관람 제한을 둬야 할 듯싶다.
 
 
 
극한직업은 형사물이다. 하지만 보통의 형사물이 아니다. 이병헌 감독의 연출작이다. 장르 불문 존재감을 드러내는 류승룡이 나온다. ‘범죄도시로 강렬한 인상을 줬지만 사실 제대로 웃길 줄 아는 내공의 소유자인 진선규가 칼을 갈았다. ‘범죄도시에 이어 이번에도 칼을 든다. 하지만 그 쓰임새가 다르다. 찌르고 쑤시는 칼이 아니라 내리친다. 제대로 친다. 뭘 치는지는 영화를 보면 안다. 예쁜 외모의 이하늬는 제대로 과격하다. 강렬한 러브신도 있다. 하지만 그 러브신마저 액션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배우, 완전 환골탈퇴다. 이동휘는 예상 밖으로 과묵하다. 그런데 그 과묵함이 더욱 폭소를 자아낸다. 공명은 B급 장르물의 신동이 될 듯한 인상이다. 역시 제대로 키워내면 물건이 될 듯하다. 이병헌 감독의 눈은 이번에도 제대로 먹혔다.
 
이들 5인방은 경찰서 마약반이다. 멋들어지고 범인 잘 잡는 형사들이 아니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뒷북치고 허당끼 제대로 충만하다. 오프닝의 폭소탄은 오프닝수준도 안 된다. 이질적인 배경음과 합쳐진 이들 5인방의 활약상은 좌충우돌이란 단어로도 모자란다. 범인 잡으랬더니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실적도 바닥인 마약반은 이제 경찰서의 골칫거리다. 결국 서장(김의성)은 해체를 통보한다. 마약반 고반장(류승룡)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팀을 이끌고 국내 최대 마약 사건을 손에 움켜쥔다. 자신보다 후배지만 먼저 승진한 강력반 반장의 깔봄과 무시는 사실 안중에도 없다. ‘그래 개XX !’라고 육두문자 제대로 날려주면서도 후배 반장에게 큰 절을 할 정도로 속도 없다. 이건 속이 없는 게 아니라 유들유들한 고 반장의 성격이다. 사실 세상은 그의 성격을 두고 무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마약반’ 4명은 고반장이라면 하늘처럼 받든다. 이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단 얘기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그 믿는 구석은 예상 밖의 지점에서 터져 버린다. 후배 반장의 도움으로 실마리를 잡게 된 국내 마약 거물 이무배(신하균)의 거점이 하필이면 팀원들과 신세 한탄을 늘어 놓던 폐업 직전의 치킨집 바로 앞이다. 이들은 상상 이하의 계획을 세운다. 치킨집 인수, 그리고 치킨집을 거점으로 한 잠복 수사다.
 
파리만 날리던 치킨집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이들이 인수한 날부터 손님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치킨을 팔며 잠복 수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이제 나름의 역할 분담을 한다. 그리고 치킨을 튀긴다. 그런데 이 치킨, 왜 이렇게 맛이 있는 것인가. 고 반장의 잠복 수사 거점인 치킨집은 급기야 전국의 맛집으로 소문이 나고, 방송국의 취재 요청까지 받게 된다. 이건 예상을 벗어나도 한 참 벗어난 흐름이다. 도대체 이 영화,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우주로 향한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극한직업은 형사들의 고된 일상을 보여 주는 큰 뼈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상상을 넘어선다. 스토리 전체는 전형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정말 듣지도 본적도 없다. 형사가 닭을 튀기고 그 닭집이 맛집으로 소문이 난다. 이제 형사들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인지 닭을 잡아야 하는 것인지. 연출을 맡은 이병헌 감독은 관객들의 정신을 붙잡고 사정 없이 뒤흔든다. 정신을 차릴 시간을 초단위로도 주지 않는다. 그 흔한 슬랩스틱의 억지 웃음이 아니다. 상황과 캐릭터가 결합했다. 그 결합은 말이란 양념으로 감칠 맛을 더한다. 다이어트 불문율이 있지 않나. 늘어난 뱃살을 움켜쥐고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내일부터 다이어트다라며 폭식을 거듭하는 당신의 모습. 이 영화가 딱 그렇다. 분명히 웃긴다. 여기서 웃길 것이란 예상이 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을 수가 없다. 그걸 보고 있자면 웃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눈을 부릅뜨고 스크린을 주시하지만 이내 무릎을 치고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폭소를 터트리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사실 이 웃음의 근원은 이병헌 감독이 사용하는 지질함에 있다. 그는 전작 스물을 통해서 최대한 지질한 인물들이 뒤엉켜 만들어 낸 지질함의 감칠 맛을 이끌어 내는 재주를 선보인 바 있다. 그 방식이 진흙탕이 아니라 유쾌하고 유니크한 방식이었기에 색달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익숙함은 느껴질지언정 낯익은 맛은 절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박자 빠르게 아니면 반박자 느린 지점에서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린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굳이 흠결을 트집 잡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 스트레이트급 펀지의 연속으로 정신이 피로해질지 모른다. 그걸 늘어지는 감정으로 받아 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충 곁눈질로 보고 있어도, 늘어진다고 스스로가 최면을 걸어도 단 한 가지는 절대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극한직업’, 처음부터 끝까지 안 웃긴 지점이 없다. 다시 한 번 경고한다. 웃음 심약자는 절대 관람 불가다. 굳이 경고를 무시하고 관람을 한다면 출산의 고통에 가까운 배 아픔을 반드시 경험한다. 오는 23일 개봉.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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