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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PMC: 더 벙커’ 속 배우 하정우의 ‘사생결단’
“5년 전 아이디어, 이렇게 완성된 것 감개무량하다”
영어 대사-할리우드 배우 출연…“해외 진출? OK!”
2019-01-02 00:00:00 2019-01-02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하정우가 또 고생을 한다. 이번에도 고생을 한다. 죽을 만큼 고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갇힌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도 작은 스튜디오에 갇힌 채 겪을 수 있는 갖은 고생은 전부 온몸으로 겪은 바 있다. ‘터널에선 무너진 터널 안에 홀로 갇힌 채 사투를 벌인 경험도 있다. 이번에는 지하 벙커다. 지옥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고생길이다. 하정우는 고생을 하면 할수록 또 어딘가에 갇히면 갇힐수록, 또 그 강도가 높을수록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게 대체 무슨 아이러니인가. 하정우도 도통 모르겠다며 웃는다. ‘팔자가 그런가 보다라며 또 웃는다. ‘더 테러 라이브연출을 한 김병우 감독과 5년 전 무심결에 주고 받은 작은 아이디어 한 마디가 ‘PMC: 더 벙커의 기획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해 연말 개봉 후 박스오피스를 석권 중이다. 하정우는 고생을 하고 또 어딘가에 갇혀야만 하는 스토리 팔자인 듯하다. 물론 관객들은 그럴수록 즐겁다. 너무 즐겁다.
 
배우 하정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개봉을 이틀 앞두고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저녁 무렵이었다. 식사 시간을 앞두고 있던 시간인지라 출출함이 더했다. 커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웃는 하정우다. 이미 터널에서 시장함을 개 사료로 때운 경험도 있으니 커피는 진수성찬이라며 웃는다. ‘PMC: 더 벙커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반삭헤어스타일은 온데간데 없이 원상 복구 됐지만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과 말투는 여전했다.
 
새로운 형태인 것 같아서 사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기대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5년 전 지나가는 말투로 내비친 아이디어가 이렇게 완성될지는 사실 저도 놀랍죠. 5년 동안의 제작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 왔으니 기분도 남다르고요. 김 감독과는 더 테러 라이브를 통해 만나서 5년 간 작품을 구성하고 얘기를 많이 나눠와서 어떤지 잘 알죠. 지금까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체감이 좀 남달라요.”
 
언론 시사회 및 일반 시사회 이후 평가와 반응은 뚜렷하게 갈렸다. 일단 하정우의 말처럼 새로운 방식에 높은 점수를 주는 쪽이 많았다. 1인칭 슈팅 게임을 연상시키는 시점샷이 영화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관객 입장에선 관람이란 개념보단 체험의 영역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 이런 구성 떄문에 어지럽고 관람의 몰입감이 많이 떨어진단 지적도 있었다.
 
배우 하정우.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 점도 충분히 수긍이 돼요. 초반에 스토리에 빠져 들거나 집중하지 못하면 이게 뭐지란 생각을 하기 쉬운 구조인 것 같기는 해요. 너무 빠르다는 지적도 있더라고요. 사실 가편집본에선 더 빨랐어요(웃음). 저도 게임을 하지 않아서 1인칭 슈팅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겐 좀 힘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반면에 이 영화는 이런 형식이란 걸 사전에 알고 보시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봅니다.”
 
형식의 색다름도 있지만 하정우 본인으로선 가장 고생인 점이 따로 있었다. 대사의 80% 이상이 영어다. 용병팀 블랙 리저드소속 팀원 전체가 외국인 배우들이다. 그들의 캡틴인 에이헵을 연기한 하정우는 그들과 영화 속과 영화 밖에서 모두 영어로 소통을 해야 했다. 기본적인 영어 소통이야 가능하지만 감정을 실어서 전달해야 하는 대사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곤욕이었다고.
 
, 외우는 거야 배우로서 일상이니깐 크게 어렵다고 할 수는 없죠(웃음). 하지만 그 외운 영어 대사에 감정을 실어야 하니 이게 맞는 건지란 헷갈림은 정말 곤욕스러웠어요. 억양과 제스처 또 실제 영어권에서 쓰는 생활어 등이 있으니 굉장히 분간하기 힘들었죠. 연기를 하다 보면 즉각적으로 튀어나와야 하는 지점도 있어요. 어떤 리액션의 경우 곧바로 반응이 영어로 나와야 하는데 이게 외국어라서 머리로 한 번 간 뒤에 걸러져서 입으로 나와요. 그 시간차가 사실 어마어마했죠. 그 시간을 줄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하하하.”
 
배우 하정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용병 팀원 중에는 국내 영화팬들에게 낯이 익은 배우도 있다. 또한 에이헵과 스크린으로만 대화를 나누는 CIA 맥킨지 국장 역의 여배우도 꽤 이름값이 높은 할리우드 배우다. 다국적 프로젝트로서의 위상도 적지 않다. ‘PMC: 더 벙커제작에도 참여한 하정우로선 해외 배급 및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속내를 이번 영화로 표현한 것일까란 시선도 받고 있다. 일단 부정하지는 않았다.
 
참여할 기회가 된다면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웃음). 영어 대사도 조금은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아요. 배우로서 표현의 힘을 얻은 것이고요. 해외 시장 배급도 좋죠. 이번 영화도 기획 제작을 하면서 대한민국 중심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신과 함께를 하면서 그걸 확인했으니까요. 케빈 두런드나 제니퍼 엘 같은 배우들의 참여도 한국 영화의 달라진 위상을 반증하는 증거 아닐까요.”
 
다국적 배우 참여와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과 하정우의 두 번째 만남으로 이미 ‘PMC: 더 벙커는 기획 당시부터 충무로에 입소문이 퍼졌던 작품이었다. 이미 완성도 면에서도 해외 배급이 활발히 논의 중이다. 재미도 그렇고 구성도 특이하다. 물론 한 가지 논외 대상이라면 하정우의 사용법이다. 앞서 설명한 갇힌 공간에 대한 설정이다. 이미 그는 더 테러 라이브’ ‘터널에서 경험했다. 일반 관객들에겐 하정우의 갇힌 공간 연기가 식상할 수도 있을 법한 위험 요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우 하정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충분히 납득됩니다. 하지만 갇힌 공간이라도 그 공간 자체가 다르니 다른 지점으로 관람을 해주시면 다른 재미가 올 겁니다(웃음). 우선 이번에는 갇힌 공간이라도 좁은 공간이 많아서 더 정신이 없었어요. ‘터널때는 그저 차 안에 카메라 하나 설치하고 저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좁은 세트 안에 촬영 팀이 3팀이나 있었어요(웃음). 사실 연이어 같은 설정이라 재미있게 봐주실까란 걱정도 분명히 있었죠. 이번에는 매번 스테이지를 격파하는 듯한 미션이 있어서 그 지점에 중점을 뒀죠.”
 
그런 미션 속에서 한 가지 색다른 재미는 바로 이란 존재다. 영화 상에서 은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만 나온다. 누군지 정확하게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관객들은 상상할 수 있는 그 인물을 떠올릴 법하다. 실제로 영화 속 의 이미지도 비슷하다. 이 배우에 얽힌 흥미로운 뒷얘기도 하정우는 전했다. 현장에서 대사가 없이 그저 눈을 감고 누워만 있던 이 배우의 놀라운 비밀을 공개했다.
 
연극계에서 활동하시는 분으로 들었어요. 배우라기 보단 연극계 종사하시는 되게 높으신 분으로 들었어요. 그런데 영화 보시면 잘 구분 안되시죠? 하하하. 몇몇 장면에선 이 사람이 아니라 더미(영화에 쓰이는 실제 인간 모형)였어요. 저도 촬영하면서 가끔씩 깜짝깜짝 놀라고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충무로 특수효과 기술이 정말 대단해요. 진짜 사람이랑 분간이 안되더라고요. 영화 보시면 어떤 장면이 더미인지 한 번 찾아보세요. 하하하.”
 
배우 하정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외에도 외국 배우들에 대한 흥미로운 뒷얘기도 공개했다. 계약 상 하루 12시간을 초과해 촬영할 수 없는 외국 배우들의 근로 조건에 얽힌 사실과 CIA 국장 맥킨지로 출연한 할리우드 여배우 제니퍼 엘의 촬영 방식도 색달랐다. 영화 상에서 특수한 모니터를 통해 화상 통화를 하는 에이헵과 맥킨지의 장면에 얽힌 비밀도 공개했다. 이 모든 내용을 알고 보면 자칫 ‘PMC: 더 벙커의 재미가 반감될 여지도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하정우는 그것도 재미다며 손사래다.
 
하하하, 알고 보셔도 신기하실 거에요. 외국 배우들은 숙소에서 문 열고 나오는 시간부터 근로 시간이 스타트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서도 12시간을 안 넘기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웃음). NG 안내려고 무진장 노력했다니까요. 맥킨지 역의 제니퍼 엘은 국내에 입국해서 세트장에서 한 번에 몰아서 촬영했어요. 영화에선 저랑 실제로 단 한 번도 안 만나잖아요. 세트에서 저랑 화상 통화를 하는 장면은 벽에 A4 용지가 붙어 있어요. 전 그걸 보고 연기를 했죠. 되게 신기한 경험이었답니다. 하하하.”
 
‘PMC: 더 벙커로 얘기 보따리를 풀어내고 끝도 없이 비밀을 공개하는 하정우다. 인터뷰 말미에는 자신의 세 번째 연출작에 대한 밑그림도 공개했다. ‘롤러코스터’ ‘허삼관에 이은 세 번째 연출작은 이미 신과 함께개봉 이후 만났을 당시 언론에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스토리를 구성하면서 다른 얘기로 방향을 전환 했단다. 일단 며칠 안으로 초고 시나리오가 완성될 예정이라고.
 
배우 하정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신과 함께개봉 이후 인터뷰 당시 언급한 내용은 하와이를 배경으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는 스토리였는데, 바뀌었어요. 기자가 주인공이에요. 장르적으론 케이퍼 무비라고 봐야 할 텐데, 딱히 설명 드리긴 참 애매하네요. 하하하. 아마 새로운 얘기가 나올 것 같아요.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연출은 제가 하는 거고, 제가 출연도 할지 말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현재 제 스케줄이 3년치가 꽉 차 있어서. 아마도 3년 뒤에나 세상의 빛을 볼 프로젝트가 될 겁니다. , 이번에는 갇힌 곳에서 고생하는 얘기는 아닙니다(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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