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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예술과 정치 그리고 신념
2018-11-28 00:00:00 2018-11-28 09:34:20
예술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단 정치적 목적의식을 갖고 작품을 만드는 경우는 예외다. 예술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건 어떠한 작품이든 정치놀음에 흔들리면 안 된단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예술가 개인이 작품을 빌미로 정치놀음을 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진 않단 뜻이기도 하다.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 국내를 대표하는 두 영화제를 보면 이창동 감독이 겹친다.
 
먼저 대종상의 위상은 재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추락했다. ‘출석상’ ‘대충상’ ‘대리상등 대종상이 뒤집어쓰고 있는 오명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지난달 22일 열린 시상식은 대종상이 어떤 위치에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막장 코미디였다. 반면 지난 23일 열린 청룡영화상은 영화인들의 잔치다웠다. 수상작들은 납득할 만 했으며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리수상자 역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이 감독은 역주행을 택했다. 그는 올해 영화버닝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건재함을 알렸다. 눈에 띄는 점은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버닝이 청룡영화상에선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부문에선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했단 점이다. 영화제 측이버닝을 배제한 게 아닌 이 감독 스스로 선택한 보이콧이었다.
 
참여정부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 감독은 2001 9친노영화인으로 알려진 명계남 권해효와 함께조선일보 반대 영화인 선언에 동참한 바 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이 주최하는 청룡영화상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이 감독 친동생이자버닝제작사인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언론인터뷰를 통해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청룡영화상을 상대 안 한 지 10년이 넘었다. 조선일보와 같이 잔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미뤄 보면 이 감독이 청룡영화제에 불참하는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개인의 정치적 신념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이 감독은 공인의 성격을 띤 예술가의 위치가 더욱 강하다.
 
굳이 시상식 주최 측 정치적 성향을 따져 보이콧을 선언하는 게 거장으로서의 신념과 개인적 선택으로 해석해야 할지 혼란이 온다. 더군다나 주최 측의 정치적 성향으로 선별을 두다 보니 정작 문제가 많은 시상식에는 작품을 내밀고 그렇지 않은 시상식에선 작품을 거둬들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미 대종상은 참여로 인해 회복을 도와야 할 상황이 아니다. 이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영화인들의 공감대다이 감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장이고 그의 존재는 한국 영화계 큰 자산이다. 그의 행동엔 힘이 실린다. 그의 개인적 정치색이 폐지 여론까지 나오는 대종상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로 해석될 수도 있다.
 
영화란 창작이고 창작의 관점에서 보수와 진보는 정치의 그것이 아닌 장르와 스토리로만 해석될 개념이다. 결과적으로 예술 속에 정치의 개념을 끌고 온 이 감독의 고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청룡영화상에 균열을 일으킬 여지를 남기고 있는 셈이다. 대중 예술과 정치 그리고 한 사람의 의지와 신념은 분리돼야 마땅한 것일까 아니면 개인의 선택으로서 존중 받아야 할 것인가. 두 개의 영화제를 보며 느낀 거장에 대한 헷갈림이다.
 
김재범 디지털뉴스부장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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