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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벤처연구 1세대 윤병섭 교수 "초기단계 과감한 투자가 벤처정신"
양적성장 위주 정책에 쓴소리…"국내 벤처인증, 기술평가보다 벤처캐피털 투자비중 중심으로 가야"
"벤처캐피털, 투자금 회수 급급해 운용…중기부 중심 통합적 관리추진체계 마련해야"
2018-11-21 06:00:00 2018-11-21 06:00:00
[뉴스토마토 최원석 기자] 정부는 19973'벤처기업 창업 활성화 종합대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90여 차례 이상 벤처·창업관련 대책을 수립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7년말 벤처기업 수는 35282개로 1998년 벤처확인제도 시행 이후 17.3배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벤처 시장이 양적으론 성장했지만 질적으론 미흡하다는 게 중론으로, 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통한 내실화는 문재인정부의 과제로 요구된다. 국내 벤처 연구자 1세대인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벤처 산업 태동기와 성장기를 함께 해온 산증인으로 여겨진다. 윤병섭 교수를 만나 국내 벤처 시장의 진단과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소개를 해달라.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는 2003(옛 서울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개교한 호서법인의 사립 대학원대학교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벤처 인재를 양성하는 게 설립 목적이다. 석사 및 박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본교가 배출한 840(석사 397, 박사 443) 졸업자가 벤처 일선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1998년부터 벤처캐피털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벤처캐피털 연구자가 상당히 드문 때였다. 200591일부로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벤처의 출발점을 되짚어본다면.
 
벤처의 실질적인 개념은 1990년 후반에 등장했다. 벤처기업은 다른 기업에 비해 기술성이나 성장성이 높아 정부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혁신형 중소기업을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벗어나고자 김대중 정부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벤처기업을 지원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 등으로 IT기반 벤처기업의 붐이 일어났다. 이때가 국내 벤처의 실질적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구원투수 역할을 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가 있다.
  
수많은 벤처 성공신화도 있었고, 신기술이라든지 새로운 제품의 혁신을 가져온 것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묻지마 투자'가 성행해 거품이 심했다. 당시에는 벤처에 투자하면 떼돈 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투자받은 돈으로 기술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했어야 하는데, 기업가 정신을 잃어버린, 무늬만 벤처인 기업도 많았다. 세계경제 침체 영향으로 2000년 벤처 붐이 꺼지면서 벤처기업의 절반가량이 폐업했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속출하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불신이 확대됐다. 벤처가 장기적으로 침체기를 겪게 되는데,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고 남아 있다.
 
벤처기업 수가 201735282개다. 양적으론 성장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이 19982000, 20025000개 정도였을 때 2005년까지 4만개의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벤처캐피탈로부터 지원받은 벤처기업 수가 적었고,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에 매우 부족했다. 기존 중소기업을 벤처기업으로 전환했지만 이것도 한계에 부딪치자 벤처캐피탈 투자와 관계없이 기술평가한 중소기업을 벤처기업으로 대폭 편입시켰다. 기술보증기금이 기술평가보증서를 발급하는 등 벤처기업 인증제도를 적극 활용해 벤처기업을 양적으로 증가시켰다. 그 결과 2017년말 벤처기업 90%가 기술평가 관련 기업으로 벤처 확인을 받았다.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은 벤처투자기업이나 R&D로 인증받은 연구개발기업은 10%도 안 된다.
 
기술평가보증과 벤처캐피털 투자기업 인증은 어떤 차이가 있나.  
 
미국은 벤처캐피털 투자기업을 벤처기업으로 본다. 우리나라도 벤처캐피털 투자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려면 벤처기업에 벤처캐피털이 10% 이상 투자를 해야 한다. 벤처투자 룰에 의해서 까다롭게 투자되기 때문에 벤처투자기업은 성장 가능성이 높다. 벤처캐피털은 투자뿐만 아니라 회사가 커나가도록 기술이나 경영자문, 네트워크 공여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게 벤처캐피털의 기능이자 역할이다. 하지만 기술평가보증 또는 기술평가대출 기업은 벤처투자기업 만큼 까다롭지 않고 관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니터링과 사후 관리가 쉽지 않다. 국내 벤처 시장이 질적 성장과 내실화에 문제를 드러내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창업투자조합과 한국벤처투자조합의 2017년말 총투자재원이 20조원을 돌파했다. 정부 투자 재원인 모태펀드도 2017년말 4.3조원에 이르러 역대 최대다. 운용상의 문제점은 없나.
  
벤처펀드를 조성해도 실제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다. 창업투자조합과 한국벤처투자조합 등이 출자한 금액은 벤처펀드 조성 규모의 절반에 불과하다. 조성 대비 출자 비율이 90%를 초과하는 조합은 34% 정도이고 소진율 20% 미만도 상당 수 있다. 한편, 조합으로부터 투자받은 벤처기업은 20%(기술평가보증 인증 후 벤처캐피털 등에 투자받은 경우 포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조합은 마땅히 투자할 벤처기업이 없다는 이유로 투자를 기피하고, 벤처기업은 실패하면 낙인찍히는 게 두렵지만 보증서 들고 대출받으러 은행에 간다. 그나마 대출이 어려워 투자자금 모으기 위해 프로젝트 등을 하다가 벤처연구 본질을 놓치기 일쑤다. 벤처펀드 조성도 중요하지만 운용을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한국벤처투자조합의 해산조합 수익률과 회수율이 창업투자조합보다 높고 은행금리 수준을 상회한다고 발표하는데, 이건 자랑이 아니다. 수익률과 회수율이 높은 것은 어느 정도 기술 수준이 올라온 벤처기업만 골라서 후기투자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초기 기업보다 투자금이 많게 들어가기도 한다. 벤처는 미래 예측이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초기에 10군데 벤처기업에 투자해 9군데 망했지만 1군데에서 크게 성공하면 투자금 회수가 된다. 물론 단계별로 꾸준히 관리, 평가 및 투자를 유지해 주는 게 중요하다. 과감한 투자가 벤처 정신이다. 이 정신을 한국벤처투자가 살려야 한다.
 
정부가 모태펀드 운영방식을 민간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벤처펀드 조성의 정부 역할은.
 
정부 중심의 벤처캐피탈 투자 운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비중을 줄이고 민간 중심 벤처캐피탈 육성 방안으로 나가야 한다. 민간 중심의 모태펀드 조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민간 중심의 벤처생태계 혁신대책을 가지고 있지만 민간 주도로 성장하는 실질적 조성이 되도록 각각 역할을 구분해서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 정책 목적성, 시장 실패 부분은 정부가 메워주고, 4차산업혁명을 끌고 갈 실질적 실행계획을 지닌 벤처는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벤처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출범했다. 벤처 육성을 위한 정책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벤처 관련 업무를 운용하는 부처가 분산돼 있다는 게 문제다. 주무부처가 중기부인 '중소기업창업 지원법'과 주무부처가 금융위원회인 '여신전문금융업법'으로 이원화돼 있다.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와 신기술사업금융회사는 벤처캐피탈 기능이 동일한 금융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근거법률과 주무부처가 달라 적용하는 규제에 차이가 있어 창업투자회사의 사기를 꺾는다. 벤처캐피털 지원 체계를 동일기능 상이규제에서 동일기능 동일규제로 바꿔 벤처기업의 성장지원 기능이 올바로 작동하도록 법체계 일원화를 반드시 해야 한다. 지금 국회에 있는 '벤처투자촉진법' 제정()에는 신기술사업금융회사 관련 내용이 완전히 배제돼 있다. 분리하지 말고 벤처캐피털 정책을 종합하는 법체계 일원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에 통합하지 않으면 향후 벤처정책의 통합은 요원해지고 정부의 벤처육성 정책도 그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실효성이 낮아짐은 불보듯 명약관화하다. 중기부가 앞서서 벤처투자 정책에 대한 통합적 관리추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중기부는 벤처산업 생태계를 자연스럽게 합리적으로 형성해 벤처기업 정책과 제도, 예산을 관리·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최근 국회에서 열린 '정부의 벤처·창업정책 실효성 제고 방안 정책간담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윤병섭교수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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