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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교육개혁, 학생 입장에서 이뤄져야
2018-11-20 06:00:00 2018-11-20 06:00:00
한국의 교육제도는 수십 년째 난항을 겪고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문제 유출사건만 봐도 우리 교육제도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대학 입시제도는 그 동안 수차례 바뀌었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으며 개혁방안을 둘러싼 논쟁만 여전하다.
 
지난 8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공론으로 결정하겠다고 나섰지만 상황은 어렵게 흘러갔다. 시민 490여명이 공론화 과정을 거친 후 대학수학능력시험 선발인원 비중을 전체의 45%로 높이는 개편안과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를 주요내용으로 한 개편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전자(52.5%)와 후자(48.1%)를 지지하는 비율이 오차범위를 넘지 못해 어느 쪽으로도 결정할 수 없게 되고 다른 이슈들도 해결하지 못한 김 장관은 결국 물러났다.
 
입시제도를 공론조사로 결정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던 필자는 투표 결과가 무산된 것을 아주 다행으로 생각한다. 지면이 부족해 그 이유를 일일이 밝히기 어렵지만, 큰 틀에서 하나만 짚자면 이 공론조사에는 대입제도의 당사자인 학생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입학시험을 치르는 주인공은 학생들인데 왜 시민들이 나서 입시제도를 결정하는가. 우리의 교육제도가 표류하는 것은 학생들보다 학부모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에 따라 너무 춤을 추기 때문은 아니던가.
 
교육개혁은 우리에게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이 주제는 역시 난제다. 다만 우리와 분명 다른 것이 있다. 프랑스에서 교육개혁 주제는 입시제도보다는 소외지역 학생들에 대한 교육정책이나 학제 간 실용교육의 선택, 고전어 교육 강화, 학교의 자율성 증가 등에 대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새 교육부 장관에 임명된 장-미셸 블랑캐르(Jean-Michel Blanquer)는 전 정부의 나자 발로 벨카셈(Najat Vallaud-Belkacem) 장관이 추진하던 교육개혁의 일부를 재검토하고 추진 중이다.
 
그러나 프랑스 교육개혁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eration)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에 대해 고등학교 1학년생들의 의견을 듣는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지난 14일자에 실린 첫 번째 인터뷰는 생테티엔(Saint-Etienne) 지역 오노레 뒤르페(Honore-d’Urfe)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셀리아(Celia)와 이뤄진 것이다. 리베라시옹은 이런 특집을 마련한 의도를 “교육의 제1관계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교육개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교육부 장관이라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등 총 11개의 질문을 하고 있다. 인터뷰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학교는 어떤 걸 주느냐’는 질문에 셀리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지식이다. 학교는 많은 것을 준다. 학교 덕에 우리는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외국에 가는 것을 들 수 있다. 언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인상적인 선생님은 누구였냐’는 질문에 셀리아는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은 내가 역사과목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 선생님은 예를 들어주시고 내가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 선생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 몇 번이고 설명해 주셨다. 틀에 박힌 수업을 하기보다 활동적인 것을 제안하시고, 역사와 관계된 놀이를 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여 주셨다. 나는 그 선생님이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고, 색다른 방법으로 역사 수업을 하셔서 좋아했다”고 답했다. 셀리아에게 ‘만약 장관이라면 어떤 개혁을 하겠냐’고 묻자 “수업을 좀 더 자유롭게 받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며, 선생님들과 좀 더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답했다. 셀리아는 “중학교 때는 선생님들과 친구처럼 지냈다. 반면에 고등학교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처럼, 이런 자율성을 위한 법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개혁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는 “조금 들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전문과정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정도다”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셀리아는 자신이 경험한 학교생활을 통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절대 어리지 않다. 입시제도를 개혁하려면 먼저 학생들과 논의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들인데 그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최적의 입시제도안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듣고 반영하라. 프랑스 리베라시옹처럼 한국도 언론이 앞장서서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교육이 어떤 것인지 심층취재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사회적 논쟁을 크게 일으켜 주길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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