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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포용국가의 철학과 정책
2018-11-12 07:00:00 2018-11-12 07:00:00
임채원 경희대 교수
2016년 촛불혁명은 대한민국에 새로운 국가론을 요구하고 있다. 이 나라의 국가모델은 발전국가에서 신자유주의로, 그리고 이제 포용국가론으로 진화 중이다. 서구의 국가모델은 1970년대까지 전통적 복지국가, 1980년대는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시작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는 신자유주의로 진화했다.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는 붕괴했으나 아직 대안모델은 정립되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1960년부터 1987년 민주화까지는 발전국가모델이 득세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로 대체됐다. 87년 민주화 이후 오히려 자본의 영향력이 강화된 신자유주의가 한국의 주류 담론이 된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서구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모색된 시기는 2008년 직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0여년이나 지체됐다. 2016년 촛불혁명으로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이 몰락하고 새 정부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대안모델이 제대로 모색되고 있다. 그 결과가 포용국가론이다. 서구에서 신자유주의 붕괴 이후 제시된 다양한 대안모델들이 아직 주류 담론이 되지 못한 것과 달리 한국의 포용국가론은 실제 현실적 정책대안으로 제도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포용국가론이 등장할 수 있었던 직접적 계기는 촛불혁명이다. 1700만 촛불시민들이 "이게 나라냐"면서 국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고,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며 새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민들은 제도정치에 권력을 맡기는 대의제 정치를 넘어 주권자 민주주의로 변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대통령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정책은 '광화문 1번가'였고, 지금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시민들은 주권자로서 공론을 만들고 있다. 촛불혁명은 경제적 발전을 넘어 시민사회의 성숙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 포용국가론은 그 전환의 시민적 열기를 새로운 국가 담론으로 제기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 시대의 요구로 등장한 '포용국가'는 스웨덴의 복지국가와 같은 역사적 경로를 걸을 수도 있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설계사였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Johannes Wigforss)는 시민주의에 대해 "시민들이 꿈꾸지만 현실적용을 통해 수정가능한 '잠정적 유토피아(Provisional Utopia)'라고 말했다. 포용국가 역시 국가에 대한 촛불시민들의 요구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철학과 정책을 담아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도그마가 되지 않고 정합성을 높여간다면 노르딕 복지국가의 50년 장기 집권처럼 긴 안목의 국가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포용국가의 철학적 기초는 인권과 민주, 평화, 생태 등이다. 이 보편적 가치들은 촛불혁명의 과정에서 시민들이 요구한 시대정신이다. 발전국가의 수직적 문화가 아닌 수평적으로 연결된 개인들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공론이 만들어지고, 광장에서 도출된 가치들이 포용국가의 철학이다. 촛불혁명 이후 갑질문화에 대한 반발과 미투운동의 확산 등은 개인의 인권과 민주적 가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였다. 개인 사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야 포용성의 원리가 자연스럽게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촛불집회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참여했다. 이 공간 속에 있었던 정신은 다양성과 포용성이었다. 억압적 권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조직적 단일성보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현했기 때문에 촛불혁명은 새 시대를 낳을 수 있는 토양을 축적할 수 있었다.

촛불혁명의 또 다른 정신은 창조성과 혁신성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느슨한 연대를 통해 만들었던 촛불집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같은 새로운 상상과 창조를 낳을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10대와 20대들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르네상스 세대처럼 새로운 문화창조의 빅뱅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자유공간에 공존했던 것이 창조성과 혁신성이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이후 다른 가치를 추가한다면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중요성이다. 발전국가의 산업체제가 데이터경제 시대로 전환되면서 한국사회는 기존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지고 새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죽음의 계곡'을 경험하고 있다. 이 때 개인과 공동체, 국가 모두에게 절실한 것은 스스로 정신과 육체의 근력을 키우는 회복탄력성이다.

다양성과 포용성, 창조성, 혁신성, 회복탄력성의 정신 위에서 만들어지는 포용국가의 정책들은 역량과 고용, 소득에 역점을 두는 정책패키지다. 데이터경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과 기업, 지역, 국가의 역량이다. 개인의 역량 함양은 창의성에 바탕한 인간중심교육으로 가능하다. 기업의 역량도 사업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혁신정책을 추구할 때 실현될 수 있다. 포용국가의 정책은 역량의 함양이 고용확대와 소득증대를 가져오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야 한다. 정책패키지는 현재 심각해지는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형 뉴딜정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과 함께 고용혁신과 사회적 대화, 산업혁신 그리고 사회보장을 포함하는 통합적 소득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얼개를 바탕으로 포용국가의 철학과 정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할 때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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