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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교황의 북한 방문이 필요한 이유
2018-11-07 06:00:00 2018-11-07 06:00:00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면서 얻은 성과 중의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을 끌어낸 것이었다.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북한의 개방과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란 점에서 환영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교황의 북한 방문을 환영하는 입장보다는 우려하는 입장이 강했다. “북한은 최고의 종교탄압국”인데 교황의 방문이 북한의 독재를 합법화하게 될 것이란 지적이 대표적이다. 지난 1일에 방한한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 사무총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은) 그저 독재정권을 축복하는 데에 그친다면 옳지 않다. 현재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으니 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반대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슬그머니 지나쳐버리고 만 일이지만 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고민이 되는 일이다. 지금까지 인권운동은 개별 인권침해 이슈들을 제기하고,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면서 인권침해를 낳아온 정치·경제적인 구조 문제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과정은 지난 1970년대 이후 서유럽이나 미국의 인권단체들이 한동안 지속적으로 견지해온 주류적 입장이기도 하다. 서유럽 등의 인권단체들은 집중적으로 동유럽의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을 폭로하면서 동유럽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해왔다.
 
하지만 동유럽 사회는 급격히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면서 그 사회에서 자유를 얻은 반면에 사회·경제적인 조건은 더욱 열악해졌다. 인권이 자유의 영역만이 있는 게 아니라 평등의 영역도 있고, 그런 관점에서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 분야의 인권 개선도 필요한 것인데, 동유럽 사회의 인권에서 사회권 분야의 인권 개선에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세계적인 인권단체로 유명한 국제앰네스티나 휴먼라이츠워치와 같은 국제인권운동 단체들은 그 사회에 사는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조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한반도의 상황에서 남이나 북에 사는 시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선차적인 과제는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훗날 위와 같은 평가를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는 아직 없거나 부족하다. 하지만 70년간 남과 북에서 다른 체제를 유지해온 분단체제에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남한만의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불필요한 논란만 휩싸이게 된다. 지금 진행되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먼저 경주되면서 국제인권기준을 수용할 수 있는 북한의 정치·경제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최근 조효제 교수는 한 인권잡지에서 “주류 인권담론에서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보다 구체적인 개별 침해 사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 인권운동의 특장점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득세했다”면서 “인권기준을 이행하는 전통적 방식과, 인권실현을 위한 조건형성 방식을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기준이행 접근방식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행 접근방식과 조건형성 접근방식을 어떻게 최적화하여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유엔은 매년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하지만 유엔의 인권결의안이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국제인권기준을 수용하는 조건이 형성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시점에서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는 일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개별 인권이슈들을 제기하는 것을 넘어서 북한 사회를 인권수용적인 국가로 만들어내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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