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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게임에도 노조 설립 바람…노동운동, 공장서 사무실로
게임사 이어 SK하이닉스 기술직도 노조 설립…"장시간 노동 근절하겠다"
2018-09-06 17:59:04 2018-09-06 19:30:45
[뉴스토마토 구태우·김동현 기자] 장시간 노동과 수직적 조직문화에 지친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노조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IT·게임 업종에서도 최근 들어 노조 설립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실제 교대제 근무와 시급제를 통해 노동시간과 임금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생산직과 달리 사무직에는 이 같은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사무직 노동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다 탈진하는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소진 증후군)'에도 시달린다.  
 
6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기술사무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가 이날 출범했다. SK하이닉스기술사무직지회(노조) 조합원은 엔지니어, 연구원, 일반직 직원 등으로 구성됐다. 기존에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가입한 한국노총 SK하이닉스노조(이천공장·청주공장)만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신규 노조 출범으로 창사 후 처음으로 복수노조 사업장이 됐다. 2011년 7월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된 지 7년 만이다. 
 
노조 설립의 불을 당긴 건 주 52시간 근로제였다. 올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법정 최대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됐다. SK하이닉스도 지난 3월 노동시간 단축에 맞춰 근무시간 효율화를 추진했다.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엄격하게 책정해 주 52시간을 넘지 않게 하자는 취지다. 노조는 회사가 휴게시간(비근로시간)을 임의로 늘려 주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직원들은 실제 야근 등으로 주 52시간 넘게 일하지만 추가근무 시간을 비근로시간으로 책정, 연장근로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포괄임금제를 운영, 주 3시간만 연장근로시간으로 책정했다. 포괄임금제는 월급의 일부를 떼 고정연장수당으로 책정한 임금 체계다. 노조 관계자는 "살인적인 근무 강도에도 사무직의 노조가 없어 하소연하지 못했다"며 "수당도 못 받고 피로에 시달리는 사무직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고 말했다. 
 
애플 제품과 아이튠즈 상담을 하는 상담사 노동자들도 최근 노조를 설립했다. 상담사들은 외국계 기업인 콘센트릭스서비스코리아와 고용관계를 맺고 있다. 애플 상담사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인력이 부족해 식사시간과 휴게시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 상담사는 말했다.  
 
최근 IT·게임 업종에서 노조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표/뉴시스·뉴스토마토
 
게임업계에도 최근 노조 설립 바람이 거세다. 게임사는 '판교·구로의 등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다. 주로 게임 출시를 앞둔 크런치 모드 때 직원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한다. 이 시기 낮과 밤, 주말도 없이 집중근무를 한다. 하지만 포괄임금제에 묶여 수당은 없다. 장시간 노동으로 넷마블에선 2016년 직원이 유명을 달리하는 일도 발생했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게임사 최초로 넥슨노조가 지난 3일 설립됐고, 이틀 뒤인 5일에는 스마일게이트노조(SG길드)가 설립됐다. 이들 노조는 장시간 노동을 유발한 포괄임금제 폐지에 나설 계획이다. 게임사가 미리 연장근로수당을 산정한 탓에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일을 시킨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넥슨노조 관계자는 "포괄임금제로 야근은 공짜가 됐고, 직원들은 크런치 모드로 항상 피로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게임업계에서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이 해체되고, 직원들의 잦은 이직으로 노조 설립이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국내 최대 게임사인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서 노조가 생기면서 이 같은 부정적 전망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일단 넥슨과 스마일게이트는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 설립이 생산직에서 사무직으로 확산되면서, 노조 활동도 방향을 달리 할 전망이다. 기존 공장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노동자 중심에서 사무직 노동자들도 투쟁 전선에 가세, 조합원들의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다. 사무직의 노조 가입이 늘어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과 SNS를 꼽는다. 20대와 30대 젊은층은 워라밸을 중시하지만, 포괄임금제 등에 묶여 장시간 노동의 관행을 따라야 하는 실정이 노조 설립 등의 집단행동을 낳고 있다는 설명이다. 카카오톡, 네이버밴드 등의 SNS는 노조 설립을 유용하게 하는 도구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게임산업의 경우 초고속 성장이 끝나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개발자들이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일상적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그동안 직원에게 제대로 된 보상과 동기부여를 하지 않은 게 노조 설립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구태우·김동현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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