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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행 고신용자 대출 문제, 출범 초기 시장점유율 높이기 '혈안' 탓
중금리대출 부문 차별 역할 필요…전문가들 "자체 신용평가모형 지속적 검증·개선해야"
2018-09-05 08:00:00 2018-09-05 11:11:03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혁신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에서 나온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다. 당시 최 위원장은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제한) 완화 등 금융혁신법안 처리 필요성을 촉구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이 가져온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이 은행권에 긴장을 불어넣고 금융소비자의 혜택을 늘리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사진/뉴시스
실제 지난해 문을 연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IT와 금융의 융합을 바탕으로 금융 산업 내 경쟁을 촉진하고 중금리 대출시장 활성화와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마련됐다. 이로 인해 기존 시중은행에서도 비대면 채널을 확대하고, 해외 송금 수수료를 인하하는 등 대고객 서비스를 강화했다.
 
하지만 당초 의도했던 중·저신용자 대출 시장 확대는 여전히 부진한 모습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고신용자 위주의 영업에 집중하며 기존 은행과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다.
 
정무위 소속 한 의원실이 제공한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출금리 및 신용등급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케이뱅크는 전체 신용대출 4만5228건 가운데 73.49%인 3만3240건을 1~3등급 고객에게 제공했다. 이 기간 4~7등급 고객은 1만1935건으로 26.38%며, 8~10등급 대출자는 0.11%(53건)에 그쳤다.
 
카카오뱅크 역시 총 73만1481건의 신용대출 중 61.38%(44만8995건)를 1~3등급 고객에게 지원했다. 반면 중신용자로 분류되는 4~7등급 고객에 대한 대출은 28만2464건으로 38.61%에 머물렀으며, 8~10등급 저신용자에게는 0.003%(22건)만 제공됐다.
 
중저신용자보다 고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로 돈을 버는 일반 은행의 관행이 그대로 재현되며, 새로운 금융시장을 개척하겠다던 설립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여기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초기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신용리스크가 낮은 고신용 차주를 대상으로 기존 은행보다 낮은 금리를 제시하며 영업에 나선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표/뉴스토마토
 
이 같은 현상은 가계신용대출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올해 3월 말 인터넷전문은행의 가계신용대출은 총 6조1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고신용(1~3등급) 차주의 대출비중은 96.1%(차주수 기준으로는 90.7%)로 조사됐다. 이는 국내은행의 평균(84.8%)을 상회하는 규모다. 이에 반해 중신용(4~6등급) 차주의 비중은 3.8%로 국내은행(11.9%)보다 낮았다.
 
인터넷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신용등급이나 평균 금리의 경우 기존 시중 은행 분류기준으로 통계를 내는 탓에 은행연합회에서 산출되는 공시체계에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지난 7월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중금리대출을 전혀 취급하지 않은 것처럼 보는 시선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있다"며 "카카오뱅크는 기존 은행권에서 신용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4등급 이하 고객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1조4000억원의 대출이 이뤄졌다"고 항변했다.
 
카카오뱅크는 중금리 대출을 SGI서울보증보험 보증을 통해서만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실적은 연합회 공시에서 제외된다는 설명이다.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 역시 올해 4월 "자체 신용평가시스템을 통해 신용도를 평가하고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며 "중신용자 대출이 건수 기준 60%, 금액 기준 비중으로는 40%를 차지한다"고 피력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전문은행은 중·저신용자를 위한 대출 판로를 확대할 방침이다.
 
케이뱅크는 현재 개인신용정보사 신용등급 기준 7등급까지로 한정된 중금리대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카카오뱅크는 올해 4분기부터 은행에서 대출이 거절된 고객을 대상으로 카드사나 캐피탈 등 제2금융권으로 연결해주는 ‘연계대출’을 실시할 계획이다.
 
연계대출을 통해 소비자는 직접 2금융권 대출을 받을 때보다 더 높은 한도와 더 낮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또 그동안 축적해온 카카오뱅크 체크카드, 카카오택시, 카카오 선물하기 등의 데이터를 활용한 '자체 중신용 대출'도 출시할 예정이다.
 
한편 시장에서는 중금리대출 부문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의 차별화된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민아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금리 대출 시장에서의 카카오뱅크 점유율(대출 건수 기준)이 38%에 달한다"며 "자체 상품 출시하면 보다 정교한 신용평가를 토대로 안정적인 대출 상품 판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핵심 고객이 될 수 있는 중신용 차주에 대한 대출을 확대함으로써 기존 은행과의 차별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자체 신용평가모형을 지속적으로 검증, 개선하고 해외 인터넷전문은행의 성공 모델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출범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금융권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며 "기존 은행과 동일한 기준에서 보기보다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이어 "은산분리 완화를 통해 자본이 확충되면 중신용자에 대한 중금리 대출 또한 활성화될 여력이 커진다"며 "빅데이터 활용과 자체 신용평가모델 개발은 은행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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