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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효성가 분쟁’
2018-08-30 06:00:00 2018-09-01 08:17:11
 조현문 변호사가 오랜 해외 체류를 끝내고 조만간 귀국길에 오른다.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재판 증인대에 서기 위함이다. 피의자는 형인 조현준 효성 회장으로, 횡령·배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동생이자, 경영진으로 형의 비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가 어떤 진술과 물증을 내놓느냐에 따라 재판 결과도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효성은 사력을 다해 방어 전선을 구축 중이다. 조 회장 측은 계속해서 “이번 사건이 조 변호사의 악의적인 고발에서 비롯됐다”며 그 저의를 의심케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효성 측 주장대로 조 변호사의 고발에 정략적 목적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조 변호사는 형제 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2015년 기자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변호사이기보다 사업가로 불리길 원했다. 파문 이전까지 자신이 이끌던 중공업에 대한 애착도 숨기질 않았다. 효성은 조 변호사가 형을 벼랑 끝으로 몰아 지분 교환 등의 방식을 통해 중공업을 되찾으려는 뜻으로 의심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나 보이던 라인업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도 이 즈음이다. 재벌3세(조현문)를 중심으로 권력(우병우), 언론(송희영), 기획(박수환)의 편대가 구성됐다. 연거푸 검사장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 조 변호사의 조 회장 고발을 도왔다. 이후 청와대 입성에 성공, 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까지 올랐다. 민정수석에 오른 뒤에는 조 회장에 대한 조 변호사의 고발 건이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서 특수4부로 재배당돼 효성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조 변호사 스스로 “멘토”라 칭할 만큼 탁월한 기획력을 인정받았다. 정·재계는 물론 언론까지 발이 넓었으며 이는 자신의 든든한 배경이 됐다.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조 회장의 목을 죄던 이들 공세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어긋났다. 조선일보가 우 전 수석의 처가 부동산 이권 개입 의혹을 제기하자,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 건이 흘러나왔고 이 과정에서 송 전 주필과 박 전 대표가 금품 향응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망에 포착됐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조선일보를 향한 우 전 수석의 경고로 해석했다. 조 변호사의 라인업이 서로를 향해 칼을 빼든 형국으로, 그의 꿈도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끝내 우 전 수석마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내려놔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따지고 보면 조 변호사의 공세는 조 회장의 비리 때문이었다. 조 변호사는 수차례 부친인 조석래 명예회장에게 형의 잘못을 고했고, 이를 바로잡지 못할 경우 효성이 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그룹 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형에 맞섰지만 힘에 부쳤다. 장자 승계 원칙만을 지키려는 부모의 잘못된 비호에 그는 차츰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파문과 함께 효성을 떠나야 했다. 이후 ‘패륜아’라는 세상의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했던 그가 오랜 외유를 끝내고 다시 형의 면전에 서려 한다.
 
형제 간 갈등은 비단 두 사람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효성은 올해 안에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할 계획으로, 남은 관건은 조 회장과 그의 셋째 동생 조현상 사장과의 계열분리다. 최근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진다. 조 회장이 선대회장 때부터 이어지던 형제 간 자연스런 계열분리 대신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갈등의 시작이라는 전언이다. 비록 자신의 손으로 내쳤지만 둘째 아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조석래 회장으로서는 첫째와 셋째까지 재산을 놓고 분쟁을 겪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 재벌의 비애다.
 
김기성 산업1부장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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