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최근 석유화학업계의 증설에 이어 정유사들이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생산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공급과잉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하고 있다. 지난 2014~2015년에는 미국 셰일가스발 공급과잉이 화두로 부상했다면, 최근에는 아시아지역 기업간 '몸집 키우기' 경쟁에 초점이 맞춰지며 이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격화될 조짐이다.
23일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LG화학(220만톤)과 롯데케미칼(210만톤), 한화토탈(109만톤), 여천NCC(195만톤), 대한유화(80만톤), SK종합화학(86만톤) 등이 총 90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설비(NCC)을 보유하고 있다. NCC는 원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를 쪼개 에틸렌을 얻고, 이를 활용해 폴리에틸렌 등 석유화학제품을 만든다.
에틸렌 생산설비는 SK이노베이션을 모회사로 둔 SK종합화학 외에는 모두 석유화학사들이 보유하고 있었으나 올 초 GS칼텍스에 이어 현대오일뱅크가 롯데케미칼과 합작 형태로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쓰오일이 오는 2023년까지 울산 온산공장 인근에 연산 150만톤 규모의 스팀 크래커를 짓기 위한 타당성 검토를 수행키로 함에 따라 에틸렌 생산기업이 현재 6개에서 9개사로 확대된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 등의 증설과 정유사의 공장신설로 인해 5년 뒤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1329톤으로 현재보다 48% 커질 전망이다.
국내 석유화학·정유사들의 신·증설 투자 계획 발표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지난 2014년 하반기부터 계속된 저유가로 NCC 신·증설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외 기업들은 국제유가의 변동성 확대와 불확실성 증대, 미국 셰일가스 기반의 에틸렌 신·증설에 대한 우려 등으로 과감한 투자에 나서기보다 '눈치보기'로 버텨왔다. 그러는 사이 공급이 수요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또 원재료 값 하락과 그에 따른 수요 증가 등 선순환 효과도 나타났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지난 2015년부터 매출액 감소에도 영업이익율이 10%대로 고공행진을 거듭한 이유다. 국내 NCC 6개사 평균 영업이익률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였던 2011~2014년 3~8%에 불과했으나 2015년~2017년에는 9.8~15.9%로 대폭 뛰었다.
석유화학업계 안팎에서는 에틸렌 생산량 확대를 두고 공급과잉 논란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눈에 띄는 대목은 주로 미국발 공급과잉을 지적했던 기존과 다르게 아시아 지역 내 수급상황으로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에틸렌 증설 규모가 203만톤, 2019년 267만8000톤, 2020년 363만톤, 2021년 405만3000톤에 이른다. 중국의 환경규제에 따른 재활용 플라스틱 수입 중단 조치와 포장재 등 범용 화학제품의 수요 증가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목적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기업들의 투자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수급상황을 고려한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낙관론을 경계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제유가가 중장기적으로 상향 추세이기 때문에 최근 2~3년과 같은 호황이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전문 기관들은 내년 말 유가가 100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 스탠리는 공급 부족 등으로 브렌트유 가격이 2020년 초 배럴당 90~105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고, 시장조사업체 에너지 애스펙트도 내년 말 공급 부족으로 유가가 100달러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015년부터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의 수익성이 좋은 것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원가우위가 바탕이 된 만큼 마냥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만 3개 업체가 신규로 공장건설에 뛰어들어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드는 것"이라며 "현재 미미하지만, 향후 미국에서도 에틸렌을 가공한 폴리에틸렌 등 석유화학제품을 아시아지역으로 수출을 늘릴 것으로 보여 기존 생산업체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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