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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①근미래를 넘어서는 '국가비전2050'
2018-08-06 07:00:00 2018-08-06 07:02:19
문재인정부에는 '<100대 국정과제> 이후'가 보이지 않는다. 국정과제들은 정부 5년에 집중됐고 '5개년 기본계획'도 있지만 정작 중요한 중장기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적 담론과 정치아젠다도 안 보인다. 대통령 선거기간에 제기된 '사람경제'는 여전히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포스트 100대 국정과제'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소득주도 성장과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은 정부가 꼭 해결해야 할 과업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산적한 과제들을 잘 해결하는 게 문재인정부에 대한 '촛불시민'들의 기대다. 그렇다면 이 과제들이 해결되기만 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낙관적일까. 정부의 국정과제들을 넘어서는 국가비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써 미래 메가트렌드 변화에 대한 모색이 전제돼야 한다. 미래비전에는 미래사회의 변화에 주목하는 동시에 공적가치에 대한 소망성이 녹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래는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구체적 시간 설계 속에서 모색돼야 한다. 이에따라 올해로부터 30여년 뒤를 준비하는 '대한민국 국가비전2050'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추격형 국가모델과 일국수준을 벗어난 담대한 상상이 필요하다. 이번 기획을 통해 글로벌 거버넌스 중심 국가로 담대히 나아가기 위한 국가비전을 모색한다.(편집자)
 
대한민국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2050년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시민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을까. 시민들은 기본소득을 통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고 있을까. 인간의 평균수명은 100세로 늘었을까, 아니면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될까. 한반도는 통일이 됐을까. 2050년 세계는 미국이나 서구가 아니라 동아시아가 주도하고 있을까.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역사에서 미래를 안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럼에도 인류는 끊임없이 인류의 미래를 예측해 왔다. 특히 국가는 미래를 예견하고 설계하는 문제의식과 이를 담당하는 기관이 있을 때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 왔다. 동아시아문명의 이상시대로 불리는 요순시대에도 춘추관이 국가의 길흉을 갑골과 주역 등을 통해 예측하려고 했다. 그리스 시대에도 올림푸스의 신탁을 통해 인간 세상의 정치를 주도하려고 했다. 역사를 반추할 때 인간이 예견해 온 미래는 당대가 지난 후에 틀렸었다는 점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인류는 지금껏 미래를 알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한 적이 없다.

국가의 기획과 미래예측 기능을 상실한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의 긍정적 측면으로 '국가의 기획' 기능을 꼽는다. 비록 그 시대가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남북의 긴장 조성을 통해 권력을 유지했다는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기획을 통해 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한 국정운영을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혹자는 1990년대 경제기획원이 해체된 이후 한국이 기획 기능을 상실했다고 안타까워한다. 신자유주의가 국정운영 기조가 되자 국가의 기획은 불필요하고 자원을 왜곡한다는 사회적 통념도 생겼다. 시장의 문제는 시장이 해결해야지 국가가 미래를 전망하고 개입하는 것은 시장을 방해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 결과 국가의 기획 기능은 경제에 유해하고 나쁜 국정운영 방법으로 치부됐다. 경제기획원의 해체도 이런 맥락이다. 국가의 미래예측과 기획 기능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폄하됐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자원이 한정됐거나 국제적 경기변동에 민감한 나라일수록 국정운영에서 미래예측과 예견적 거버넌스를 중요시한다.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국가와 아시아의 싱가포르는 미래예측을 통한 미래형 국정운영이 활발히 활용되는 곳이다. 영국과 캐나다, 싱가포르에서는 공직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미래전략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국정운영에서 위정자들의 미래역량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서다. 싱가포르 등에서는 총리를 포함한 내각의 구성원이 1년에 하루만이라도 미래 이슈만을 다루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 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그들은 국정운영에서 미래 인텔리전스의 능력이 곧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2017년 7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100대 국정과제> 보고대회를 열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국정운영에서는 어떤 시각과 접근법으로 미래예측 기능을 살려야 할까. 물론 박정희 시대의 경제기획원을 복원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당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5년마다 미래계획을 국민들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선진국을 따라잡는 추격형(Catch up) 모델은 세계 질서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일국수준의 계획이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2032년에 남한이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15년 뒤 한국이 남북 통일경제가 아닌 남한 단독의 경제일 것으로 가정했음에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는 남북 통일을 전제로 한다면 한국은 2032년쯤 세계 5위권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는 의미다. 한국은 지금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그렇다면 국가비전도 이에 따른 글로벌 파트너십을 전제로 해야 한다. 박정희 시대처럼 작은 개발도상국의 일국주의 틀에 갇혀서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
 
미래전망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 '후방예측'
 
대한민국에는 담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일반 사회과학이 객관적 인과성을 중심으로 한 논리체계를 가졌다면 미래학은 '미래는 고정된 게 아니라 변한다'고 본다. 인간이 상상력을 발휘해 목적의식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비전에서도 어떤 상상을 하고 소망을 가지느냐 따라 국가의 장래가 좌우된다.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때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른 방법론이 있다. 바로 '후방예측(Backcasting)'이다.
 
한국의 대부분 정책들은 현재를 분석한 후 과거의 패턴을 근거로 미래를 전망한다. 본론에서 정책분석을 하고 난 뒤 정책적 함의와 시사점으로 미래를 예상하는 방식은 '전방예측(Forecasting)'이다. 한국의 정책 실무자들은 인과관계와 추세를 통해 '지금과 같은 조건이라면 미래는 결론적으로 이런저런 모습일 것이다'는 전방예측에 익숙하다. 물론 단기적으로 1~2년 동안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이런 전망도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30년 이후의 미래에서는 현재의 조건들이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변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조건으로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국가의 미래비전을 논할 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후방예측도 그중 하나다.
 
사진/뉴스토마토
 
대표적 미래학자인 요한 갈퉁은 담대한 미래비전으로 50년 뒤 미래를 예측했다. 그리고 그는 개별국가가 아닌 인류의 미래를 전망했다. 그는 1967년 노르웨이에서 '인류2000'을 발표했다. 무려 33년 뒤 인류의 미래를 전망한 것이니 당시로써는 놀라운 상상과 구성이었다. 갈퉁은 2001년에는 50년 이후를 전망하는 '인류2050'을 제시했다. 그는 무미건조하게 과학기술의 변화에 따른 미래전망을 기술적으로 제시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추구한 평화와 문명이라는 뚜렷한 가치와 철학을 기반으로 미래를 전망했다. 그의 전망은 소망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철학으로 미래가 변화할 수 있다는 가치지향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가비전2050'은 올해 2018년으로부터 32년 이후의 미래다. 갈퉁처럼 '국가비전2050'도 한 세대 이후의 전망이다. 이 국가비전에는 일국수준을 넘어 글로벌 파트너십을 갖는 미래전망이 제시될 수 있다. 이미 세계는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의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트렌드'…근미래·원미래 통한 다차원 전망
 
미국의 '글로벌 트렌드 2035' 표지. 사진/미국 국가정보위원회
 
갈퉁이 개별 연구소를 중심으로 미래비전을 제시했다면,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는 미국 내 40여개 정보기관의 자료를 근거로 '글로벌 트렌드(Global Trends)'를 제시한다. 미국 대선이 있는 해를 기준으로 2년 전부터 국가정보위원회는 20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비전을 준비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등 국가정보기관이 총망라, 대륙·국가별로 정보를 수집해 국가전략 보고서를 만든다. 미국에서는 4년마다 11월에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는데 국가정보위원회는 12월에 당선자에게 보고서를 브리핑한다. 이는 '글로벌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공개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보고된 '글로벌 트렌드 2035'는 횟수로는 6번째 보고서지만, 지금껏 나온 것 중 완성도가 가장 높다. 이번 보고서는 '진보의 역설'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 보고서에서 주목할 것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막연한 미래가 아닌 구체적 미래를 전망했다. 시기를 5년간의 '근미래(Near-term future)'와 20년 이후의 '원미래(Distance-term future)'로 나눴는데, 근미래는 사회적 갈등이 늘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원미래에는 시민과 정부의 노력으로 '회복탄력성'을 키워내 시민의 삶이 나아지는 낙관적 전망을 했다. 특히 회복탄력성은 갈등으로 개인의 삶과 공동체가 붕괴할 때 이를 복원하는 것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힘의 근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안이다. 둘째는 개별국가와 그가 속한 대륙, 그리고 글로벌 공동체라는 3가지 층위의 미래비전을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서 국가비전의 다차원성을 잘 보여준다.
 
아시아 평화국가를 위한 '국가비전2050'
 
대한민국에는 지금 국가비전과 국가전략이 절실하다.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 고령화, 기후 변화 등 메가트렌드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증가할 때는 역설적으로 미래학과 미래전망이 필요하다. 위기에 도래했을 때는 시민이나 지역공동체, 국가가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구체적 미래비전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적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것이 요구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30년 동안 맹위를 떨친 신자유주의 시대가 마감했다. 국가비전 등 정부의 기획 기능을 폄훼하던 시대도 끝났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미래비전을 설계할 것인지에 관해 국가가 먼저 전체 미래사회를 조감하는 것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은 <100대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정책이 제시됐지만 5년 단임제 정부의 계획에 머물렀다. 그 이후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5년은 단절적인 게 아니라 적어도 20년 이후의 미래전망 속에서 연속적 정책들이 제안·실천돼야 한다. 또 갈퉁이 제시했듯이 평화와 문명, 미래라는 가치를 포괄해야 한다. 미래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인권과 민주, 평화의 가치 속에 소망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글로벌 공동체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국가비전2050'이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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