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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그들을 잊지말자
2018-07-22 17:24:00 2018-07-22 17:50:26
구태우 산업1부 기자
"오늘로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희망으로 받아들이겠다."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장은 지난 21일 복직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올해 서른아홉인 그는 스물다섯살에 해고됐다.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한국철도유통(홍익회)에 입사했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지상의 스튜어디스(승무원). 그들은 서로를 이렇게 불렀다. '2년 후 정규직'이라는 장밋빛 약속은 빛이 바랬다. 협력업체 소속을 직접 고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2006년 해고됐다. 280명이 김 지부장과 함께 쫓겨났다. 1심과 2심 법원은 승무원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5년 판결을 뒤집었다.
 
코레일은 해고 12년 만인 지난 21일 해고 승무원을 복직시키기로 결정했다. 해고에서 복직까지 4526일이 걸렸다. 그동안 해고 승무원은 몸에 쇠사슬도 묶고, 서울역 뒤 철탑에도 올랐다. 노숙농성을 한 횟수는 셀 수도 없다. 대법원에서 패소하자 동료 해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들은 할 수 있는 걸 다 한 끝에, 12년을 견뎌 일터로 돌아간다. 승무원의 '부당해고'를 지켜보고 응원하던 시민들이 감격스러운 이유다. 이들이 만든 12년의 서사가 복직으로 결말이 났다. 
 
KTX 승무원의 복직은 희망의 싹을 보여준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받는 전임 정권은 사회 곳곳에 불신과 냉소를 심었다. 정부가 나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니편 내편 갈라 분열시켰다. 사회통합에 매진해야 할 정부가 말이다. 그러는 동안 각종 청탁이 끊이질 않았다. 힘센 사람에게 줄을 댄 이들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정리해고는 계속됐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면 정부와 사법부가 수습을 하거나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왔다. 삼성전자 노조 파괴 시나리오와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를 두고 나온 얘기다. 
 
우리 사회에는 슬퍼할 일이 넘친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와 희생자들, 세월호 참사, 용산참사 등 '사회적 타살'이라고 불리는 비극들은 셀 수 없고 매년 발생한다. 올해도 세종병원 참사로 46명이 숨졌다. 슬픔에도 유통기간이 있다고 한다. 삶의 자리가 불안한 시민들은 몇날 며칠을 슬퍼할 수 없다. 감응하는 힘도 무뎌지고, 슬픔에도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함께 하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고민을 멈춰선 안 된다. 그 시작은 잊지 않는 것 망각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의 서정 시인인 시모니데스는 기원전 500년 전 건물 붕괴 현장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복기해냈다. 당시 강풍으로 홀이 무너져 사람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시민 모두가 시모니데스일 수 없지만, 우리 사회의 어떤 일들은 잊혀지지 않고 오롯이 기억돼야 한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에 탑승한 304명이 숨진 일과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의 옥쇄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토끼몰이 진압을 했던 일들이다. 함께 사는 공동체적 사회는 망각이 아닌 기억 위에 세워야 한다. 
 
구태우 산업1부 기자(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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