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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좋은 문화에서 위인은 잉태된다
2018-07-10 06:00:00 2018-07-10 06:00:00
프랑스에는 위인을 모시는 성전이 있다. 파리 5구 생트 주느비에브(Sainte-Genevieve·성녀 주느비에브) 언덕에 있는 팡테옹(Pantheon)이다. 팡테옹은 본래 루이 15세가 성녀 주느비에브를 기리기 위해 건설을 명한 후 1790년에 완공된 생트 주느비에브 성당이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공화국 설립에 공헌한 위인들의 납골당이 되면서 그리스 올림푸스신들을 모시는 신전이란 뜻의 팡테옹으로 바뀌었다.
 
1791년 미라보가 최초로 여기에 묻혔으나 나폴레옹 3세 때 본래의 성당 기능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885년 정치인이자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의 유해가 안장되면서 다시 위인들을 모시는 묘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후 미라보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려 결국 그의 시신은 팡테옹에서 퇴출되었고 현재는 볼테르, 루소 등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 등의 문호, 과학자 등 77명의 위인이 모셔져 있다. 외국인도 6명이나 된다.
 
지난 7월1일, 또 한 명의 위인이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여성인권 투쟁의 아이콘이자 전 보건부 장관, 유럽의회 의장이었던 시몬 베유가 주인공이다. 안장 절차도 인상적이었다. 먼저 수플로(Soufflot) 거리에서 시몬 베유의 녹음된 목소리가 울려 퍼져 팡테옹까지 뻗어 나갔다. 30분 동안 그녀의 관은 공화국 호위대의 걸음에 따라 수플로 거리를 올랐고 군중들은 자연스럽게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뜨거운 태양아래 수십만의 군중이 모였다.
 
베유 여사의 팡테옹 안장은 역사적인 사건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사건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30분 동안 프랑스 국기로 덮인 베유 여사의 관 앞에서 그녀가 벌인 여러 투쟁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경의를 담아 연설했다. 베유 여사는 16살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프랑스로 돌아와 정치에 입문했고 페미니스트로서 프랑스 여성들의 재정적 독립과 부부의 자율성, 친권의 평등을 위해 싸웠다. 임신중절 법안을 만든 것도 그녀의 공헌이 결정적이었다.
 
이 ‘영원한 여인’을 상기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의 책임, 프랑스의 정의를 위해 헌신한 시몬 베유의 집념을 각각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건설은 1979년 유럽의회의 의장이 된 그녀의 유산이라기보다, 구대륙을 다시 한 번 일으키기 위해 ‘나쁜 바람’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당신(베유)의 과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신의 투쟁이 우리의 정맥 속에 흐를 수 있도록! 당신이 선택한 여정과 위험에 놓인 프랑스야말로 진정한 프랑스였다”고 강조했다.
 
덜 정치적인 말투로 마크롱 대통령은 모두 연설에서 “프랑스는 항상 정의롭고 필수적인 투쟁을 한 그녀를 좋아한다” “베유 여사를 팡테옹에 모시도록 결정한 것은 모든 프랑스인들의 뜻이었다”고 밝혔다.
 
베유 여사의 안장으로 팡테옹에 머무는 ‘불멸의 여인’의 수는 5명이 되었다. 나머지 4명은 ‘팡테옹의 무명인’이라는 별칭을 지닌 과학자 소피 베르틀로(Sophie Berthelot, 1837-1907), 1903년 노벨물리학상과 1911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마리 큐리(Marie Curie, 1867-1934), 194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민속학자 제르멘 티이옹(Germaine Tillion, 1907-2008), 그리고 레지스탕스이자 샤를르 드 골 전 대통령의 조카인 주느비에브 드 골 안토니오(Genevieve de Gaulle-Anthonioz, 1920-2002)다. 프랑스에서는 위인이 지속적으로 탄생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는 달리 한국 현대사에 위인의 탄생은 요원하기만하다. 지난달 말 한국에서는 김종필 전 총리가 향년 92세로 타개했다. 그의 죽음 앞에 세간의 평가는 첨예하게 엇갈렸다. 김 전 총리는 35세에 5·16 쿠데타를 기획하며 대한민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두고 ‘중앙정보부의 창설 등 반민주적 행위로 한국 민주주의를 퇴행시켰으며 독재 강화와 인권탄압, 3당 합당으로 한국 정당정치를 후퇴시켰다’고 평가한다. 반면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추구해 경제성장을 이룬 장본인이고 현대정치사의 거목으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에 대한 평가 중 어느 쪽이 옳은지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정부가 역대 국무총리들에게 훈장을 준 관례에 따라 김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한 것에 대해 유감을 감출 수 없다. 촛불시위로 탄생한 민주정부가 평가가 엇갈리는 정치인에게 관례에 따라 국민훈장을 추서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 사회에서 위인이 탄생하지 않는 이유는 일관성 있고 지조 있는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는 문화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파리 팡테옹에 안장된 위인들은 하나같이 외길을 걸어온 지조 있고 고결한 사람들이다. 김 전 총리가 좋은 머리로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영욕을 위해 변절을 일삼았다는 평가도 분명 있다. 그런 사람에게 관례라는 이유로 국민훈장을 수여하는 문화가 지속되는 한 우리에게 위인은 없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국민과 국가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국민훈장을 수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인은 그러한 문화 속에서 잉태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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