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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이명희, 그리고 대한항공
2018-05-29 15:00:43 2018-05-29 18:25:54
예고된 사태였다. 혹자는 '인과응보'라고까지 했다. 대한항공은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졌고, 또 그 시련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가 28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앞서 현민·현아 두 딸에 이어 이씨마저 포토라인에 서며 세 모녀 모두 법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특히 이씨의 경우 폭언과 폭행이 상습적으로 이뤄졌고 물증도 충분해 구속영장 청구는 시간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 회장 일가는 대형 로펌의 조언에 기대 법리 다툼을 벌이겠다는 의지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철부지 막내의 물컵 갑질에서 시작된 논란은 대한항공을 이용한 조 회장 일가의 명품 밀반입 폭로를 계기로 범죄 혐의로 비화됐다. 업무방해, 밀수, 폭행, 상속세 탈루, 횡령 및 배임 등 제기된 혐의만 5개가 넘는다. 단순 갑질로 안이하게 인식했던 조 회장은 뒤늦게 두 딸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며 반전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총수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의 촛불집회가 4차례 이어진 가운데 동참하는 시민들의 발길도 늘고 있다. 부를 특권으로 잘못 이해했던 천박한 선민의식은 모두가 등을 돌리는 초라한 처지의 이유가 됐다.
 
전 국민을 경악케 했던 이번 갑질의 근원은 이씨다. 한진을 창립했던 조중훈 선대회장은 조양호(항공), 조남호(중공업), 조수호(해운), 조정호(금융) 등 아들 네 명에게 각각의 사업을 물려준다. 4형제 중 가장 영민했던 셋째를 유독 아꼈으며, 첫째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이후 첫째의 빈 틈 속에 항공을 놓고 첫째와 둘째가 충돌했고, 이는 결국 형제간 돌이킬 수 없는 반목을 낳았다. 조양호·남호 두 사람은 지금도 서로를 찾지 않는 사실상의 '남'이다. 그간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이가 이명희씨"라며 "둘째가 장남인 형님 경영권을 넘본다며 집안을 들쑤셨고, 이는 남편에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이씨의 발언권도 커졌다.
 
문제는 이씨의 병적 증세다. 이씨의 행태는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분노조절장애의 확신을 가질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며느리에게 손찌검까지 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은 전했다. 회사 임직원은 물론 심지어 자녀들에게도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보고 배운 게 고함과 욕인데 어찌 닮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어찌 보면 딸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원태 사장도 (분가를 통해)어머니로부터 벗어나면서 달라졌다"며 자녀들도 이씨의 피해자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이씨에게 치료를 권유하지는 못했다. 두려워서였다.
 
일가 전체가 국민적 지탄 속에 범죄 혐의자가 됐지만 이씨가 일우재단 이사장 자리를 놓지 않는 것도 한진의 현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씨의 혐의를 하나하나 일축하며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붙는 촌극도 빚어졌다. 누구도 조 회장과 이씨를 말릴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끌려갈 뿐"이란 게 내부 관계자들의 토로다. 한 관계자는 "땅콩회항 때도 이씨와 관련해 말들이 나왔다. 그룹 차원에서 덮은 적이 있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진작 터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뒤늦은 후회지만, 한진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이들은 마지막 소원을 말하고 있다. "조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이씨도 손을 떼야 한다. 그것만이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을 지키는 길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언론 관심도, 여론 지탄도, 내부 반발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며 북미 정상회담 등 직면한 초대형 이슈로 국민적 시선이 옮겨지면 그 시간은 빨라질 수도 있다는 게 조 회장 일가의 계산으로 보인다. '땅콩회항' 논란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그들은 지금도 "죄송하다"는 한마디로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고 있다.
 
산업1부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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