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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까지 확인했지만…'이동식 발전선' 5년째 제자리
에너지·조선·해운 자체 돌파구 좌초 위기…전력수급계획에 발목
2018-05-23 15:26:56 2018-05-23 15:41:28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발전 공기업과 에너지·조선업계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이동식 발전선(Mobile Powership)’ 사업이 시작 5년이 넘도록 제자리다. 예비전력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추가 전력공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정책에 따라 허가도 지연되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 말을 종합하면, 이동식 발전선이 예정대로 개발됐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차기 과제로 떠오른 대북 전력 송출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보인다. 또 에너지·조선·해운 등 산업 간 융합을 통해 신시장을 창출, 현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출구로도 활용 가능했다는 입장이다.
 
한국중부발전-현대중공업-지멘스-폴라리스쉬핑이 합작 개발을 추진한 ‘이동식발전선’(MOBILE POWERSHIP) 조감도. 사진/현대중공업
 
한국중부발전과 현대중공업, 폴라리스쉬핑, 독일 지멘스는 지난 2013년 12월 원전 1기에 해당하는 880MW급 대용량 이동식 발전선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중공업의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 설비(LNG-FSRU)와 지멘스의 복합화력 발전설비가 더해진다. 액화천연가스(LNG)로 이동하고, LNG로 전기를 만든다. 일부 국가에서 생산해 사용하고 있는 이동식 발전선(또는 이동식 발전소)의 전력 공급량은 100~200MW 정도의 소규모지만, 이 선박은 880MW 대용량을 갖춰 약 3만가구(100여만명)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신기술이 결합한 세계 최초의 대용량 이동식 발전선이다. 전력 생산은 중부발전이, 해외 영업과 용선은 폴라리스쉬핑이 담당한다.
 
이동식 발전선은 발전설비를 탑재한 선박으로, '배 위의 발전소'로 불린다. 해상을 통해 전력이 필요한 지역으로 이동, 현지 전력계통 설비와 연결하면 곧바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육상 발전소와 비교해 부지를 확보할 필요도 없어 건설비용은 4분의 1 수준인 1조원대에 불과한 데다, 건설기간도 조선소의 표준화된 공정관리로 이뤄지기 때문에 2년여면 충분하다. 발전소가 혐오시설이라며 유치를 반대하는 지역 정서를 해소할 수 있고, 폭발 등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바다 위에 있기 때문에 육상 발전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검토 결과 사업성도 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4개 사는 전력이 부족하고 자금사정 때문에 발전소를 짓지 못하는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 수요를 겨냥, 새로운 시장 창출이 가능하다고 봤다. 이들은 2017년 12월 말 가동 목표를 제시하고 정부에 허가를 요청했다. 이에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 등 관련 정부부처와 기관은 2015년부터 이동식 발전선 사업의 사업성과 안전성 등을 검증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논의 결과 결론은 "No"였다. 이동식 발전선은 개발 전례가 없어 국내에서 먼저 시험가동해 제대로 설비가 작동되고 안전한지를 살피는 ‘트랙 레코드’ 수집 과정이 필수다. 이동식 발전선을 인천항에 정박시킨 상태로 전력을 공급하다가 외국에서 구매 의사를 밝히면 수출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시험가동을 하면 국내 전력생산량은 늘어난다. 국내 전력수급 계획은 당국이 전력수요를 따진 뒤 발전원별 전력생산량을 정하고 그 뒤에 사업자를 선정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바로 사업부터 벌이는 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비전력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추가 전력공급 부담이 큰 데다, 기존 민간 전력사들이 강력히 반발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4개 사는 합의 하에 사업 추진을 중단했다. 단, 2013년 체결한 양해각서(MOU)의 효력이 3년임을 감안해 2016년 다시 MOU를 체결함으로써 사업 재개를 위한 불씨는 남겨뒀다.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탈석탄·탈원전을 핵심으로 하는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중장기 LNG 발전소 건설 계획과 전력산업 신기술 개발 투자 계획에서도 이동식 발전선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업을 주도한 중부발전 측은 “미래를 내다본 시각에서 봤으면 좋았을 텐데, 시점이 맞지 않았다”면서 “여건이 성숙돼 사업을 재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도 “지난해부터 해외 선사들이 선박을 개조한 이동식 발전소를 제작, 판매하고 있어 일정대로만 개발됐다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특히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 전력난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에너지·조선·해운산업의 새로운 기회를 국내 전력수급계획의 시각에서만 평가해 중단시킨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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