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구태우·신상윤 기자] 대한항공이 근속연수가 낮은 막내 직원을 포섭해 직원들의 비위사실을 수집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비행 절차를 준수하는지 감독하려고 도입한 제도지만, 실상은 직원들을 사찰하는 용도로 활용됐다는 주장이다. 이 제도로 직원들 사이에 불신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한 사무장은 동료와 갈등을 빚다 목숨까지 끊었다. 대한항공의 인사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항공이 직원을 감시하기 위해 엑스맨 제도를 도입해 운영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뉴스토마토
3일 <뉴스토마토>는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로부터 이른바 '엑스맨' 제도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엑스맨 제도의 공식 명칭은 플라이트 감독자 제도다. 비행 중 조종사와 승무원이 비행 절차를 어기는지 감시하기 위해 도입됐다. 전·현직 직원들은 대한항공이 직원들과 관련된 내용을 광범위하게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이 제도는 2000년 초반 도입됐다. 당시 대한항공 남성 승무원은 청원경찰로 분류돼, 노조에 가입할 수 없었다. 대신, 남성 승무원의 모임인 승우회가 애로사항을 건의하는 등 집단으로 목소리를 냈다. 같은 해 청원경찰로 분류된 규제가 풀리면서, 남성 승무원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는 임금 인상과 근무조건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고, 대한항공은 일부 요구를 수용했다. 전직 승무원의 설명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 대한항공은 직원의 비위사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전직 승무원 A씨는 "노사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문제 사례를 모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복수의 승무원 설명을 종합하면 대한항공은 SS(사원)와 AP(대리)를 플라이트 감독자(엑스맨)로 선발했다. 근속연수가 낮은 막내급 직원을 엑스맨으로 포섭하고, 직원들의 비위사실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막내급 직원이 회사의 지시를 거역하기 힘든 점을 주목했다. 승무원 B씨는 "OOO 팀장을 점검하라고 사내 메일로 지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조 대의원과 이들의 가까운 지인을 파악하고, 승무원이 해외 체류 중 도박을 하는지 감시할 것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내에 성폭력 문제가 있는지 보고하라는 지시도 있었으며, 이를 여성 승무원들이 꺼렸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수년 동안 엑스맨 제도가 운영되면서 대한항공 직원끼리 불신하는 풍토가 생겼다. 2011년 대한항공의 50대 사무장 권모씨는 청주의 한 호텔에서 투신 자살했다. 권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후배 승무원과 말다툼을 벌였다. 현직 사무장인 C씨는 "권씨보다 20년 어린 승무원이 반말을 하면서 권씨에게 대들었다"며 "권씨가 자존심이 상하고 모멸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권씨와 말다툼을 벌였던 승무원이 엑스맨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한항공은 매년 두 차례 인사평가를 하고, 이를 토대로 승진자를 선발한다. 승진 문턱이 높아 극소수만 승진한다는 게 승무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3년 동안 고객의 불만을 한 차례도 받지 않고, 근무평가에 오점이 없어야 겨우 승진할 수 있다. 직원들은 엑스맨에게 꼬투리가 잡혀 승진에서 밀릴까 서로를 믿지 않게 됐다고 현직 승무원은 설명했다. 대신, 엑스맨으로 활동한 직원은 승진 등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전·현직 승무원은 주장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D씨는 "혹시라도 엑스맨이 회사에 문제 사실을 알릴까 봐 선배가 후배를 보호해주기 어려운 문화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엑스맨 제도에 대한 불만이 끊이질 않자 대한항공은 2010년쯤 해당 제도를 폐지했다.
객실 승무원들은 연대책임을 받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승무원들은 이를 '연좌제'라고 말한다. 현직 승무원 E씨는 "객실 승무원들은 수십명이 한 팀을 구성해 일을 하는데, 한 명의 실수가 팀 전체의 잘못으로 평가된다"며 "특히 고객의 소리(VOC)에 특정 승무원에 대한 안 좋은 글이 올라오면 해당 승무원이 속한 모든 팀원들이 인사고과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팀 내에서 한 건의 VOC라도 막기 위해 팀 전체가 서로를 긴장하며 바라본다"고 덧붙였다. E씨는 "VOC에 언급된 승무원들은 사무장이나 상급자들에게도 보고가 돼 특별관리를 받는다"며 "특히 조양호 회장도 VOC에 대해선 직접 코멘트를 달기 때문에 부담은 더욱 크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인사 평가제도를 보면 연대책임을 묻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 평가제도는 '팀 단위 성과(30점), 비행근무(10점), 칭송/불만 관리(15점), 비행손실 방지(25점), 자기 개발(5점), 업무 기여도 1(12점), 업무 기여도 2(3점)' 등으로 운영된다. 평가점수가 승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팀별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 평가제도. 사진/민주노총
직원들이 사고를 당했어도 비행에 투입시키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08년 1월4일 하노이편 비행을 앞두고, 승무원을 태운 버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도랑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 1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1명은 중상을 당했다. 중상자를 제외하고 모두 비행에 투입됐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안전보안실에서 승무원이 안전 규정을 절차대로 수행했는지 확인하지만, 엑스맨 제도는 유지하지 않고 있다"며 "연대책임 주장에 대해서는 객실 승무원 업무는 팀 단위 비행근무를 바탕으로 한 협업으로 이뤄지므로, 공동의 성과 산출을 위해 개인의 성과를 팀 평가에 일부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2008년 1월 교통사고와 비행 투입에 대해서는 "(사고로)정상적인 비행이 불가능한 승무원에게 비행을 강행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구태우·신상윤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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