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국제해사기구(IMO)가 오는 2020년 선박연료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를 강화키로 한 가운데 해운·정유·조선업계의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최근 국제유가 급등으로 선박연료유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3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 1분기 선박용경유(MGO)와 벙커C유간 가격 차이는 배럴당 최고 219달러를 기록했다. 선박용경유는 기존 선박연료인 벙커C유보다 황 함류량이 86%정도 낮다.국제해사기구가 오는 2020년부터 전 세계에서 운항하는 모든 선박들의 황산화물 배출량을 기존 3.5%에서 0.5%로 강화하기로 하면서 벙커C유의 대체재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중동 정세불안으로 원유 가격이 오르면서 선박용연료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 문제는 기존 벙커C유보다 비싼 선박용경유의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선박용경유와 벙커C유의 가격차는 132달러에 불과했으나 올 들어 200달러 이상 벌어졌다. 특히 국제유가가 시리아 사태 등 불안이 고조되면서 2분기에는 두 연료간 가격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환경규제 강화를 1년7개월 앞두고, 선박용경유 도입을 저울질 중인 선주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현대중공업의 LNG추진 벌크선 모형도. 이미지/현대중공업 제공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직면한 해운사의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선박용경유를 사용하거나 기존 선박에 탈황장치인 '스크러버'를 다는 방식은 기존 선박을 활용해 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황산화물 배출이 거의 없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쓰는 LNG추진선을 신조발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막대한 비용부담을 전제로 하고 있어 선사들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선박용경유와 벙커C유의 가격 차이가 지금보다 더 벌어지면 해운사들이 탈황장치를 장착하고 기존 선박연료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LNG는 최근 중국과 인도의 수요 급증으로 가격이 뛰면서 선사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선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운사가 '결정 장애'에 빠지면서 관련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오는 2020년부터 벙커C유라는 큰 시장을 놓치게 되는 에너지업계는 선박용경유 생산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에너지는 2020년까지 울산공장에 1조원을 투입해 고유황 중질유를 저유황 연료유로 걸러내는 탈황설비를 짓는다. 에쓰오일은 지난 4월 4조8000억원을 투자한 잔사유 고도화 설비를 완공하고 연내 저유황유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미국 최대 석유업체인 엑손모빌은 세계 1~2위 해운사인 머스크(덴마크), MSC(스위스)와 선박용경유 공급계약을 맺는 방안을 물밑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업계는 신규 발주한 선박의 경우 연료를 기존 벙커C유에서 LNG로 바꿀 수 있는 'LNG 레디(Ready)' 디자인으로 선주들을 공략하고 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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