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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58년 개띠
2018-01-12 06:00:00 2018-01-12 06:00:00
'58년 개띠'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58년 개띠는 흔하기도 하거니와 그 누구보다 격동적인 인생을 살아낸 분들이다.
 
58년 개띠들은 가난하게 태어났다. 보따리에 책을 싸서 고무신을 신고 산을 넘어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서는 미국이 보내 준 옥수수빵과 분유를 먹어야 겨우 영양실조를 면했다. 선배들과 달리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지 않고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 받았다. 고등학교도 연합고사를 보았다. 흔히 말하는 원조 뺑뺑이 세대다. 선배들이 곱게 보지 않았고 후배 취급도 하지 않았다. 58년 개띠는 무시당하며 자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도호국단이라는 군사 조직에 편입되어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다.
 
58년 개띠는 역대 최고 경쟁률의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거쳐 76학번이 되었다. 그들은 1387명을 잡아가둔 긴급조치 9호 시절이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간 사이에 박정희가 죽었다. 군부독재 청산을 요구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58년 개띠 가운데 일부는 민주화운동에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다. 제대하고 돌아간 학교에는 백골단이라는 경찰들이 차고 넘쳤다. 전두환의 폭정에 시달려야 했다.
 
58년 개띠뿐만 아니라 전후로 매년 101만 명이나 태어났지만 (2017년생은 36만 명에 불과하다.) 다행히 전 세계적인 호황 덕분에 일자리는 쉽게 얻었다. 실업이라는 말은 거의 게으름과 같은 의미로 통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직장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는 두터운 군사문화가 서려 있었다. 이들은 항상 가난 아니면 압제라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가 서른이 되었다. 이때가 1987년이다. 1월14일 서울시 남영동에서 서울대학생 박종철이 죽었다. 사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 나중에 부검한 다음에야 목 뒷덜미와 양손이 잡힌 채 두 번이나 욕조에 머리를 처박히다 목 부분이 욕조에 눌려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종철이 죽을 때까지 고문한 사람은 조한경, 강진규, 반금곤, 이정호, 황정웅이라는 다섯 명의 수사관이었다. (이들의 이름을 다섯 번쯤 불러보자.) 경찰 당국은 고문을 숨겼다. 어디 이런 일이 한두 번이었겠는가. 당시 경찰총수인 강민창 치안본부장과 박처원 치안감은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세기의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했다. 그들에게 거짓말은 일상이었다.
 
젊은이들이 나섰고 재야운동권이 합세했다. 하지만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정한 일정대로 나갈 뿐이었다. 6월10일 정오에는 잠실체육관에서 전두환이 노태우의 손을 번쩍 치켜 들어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선언할 예정이었다. 이 시간에 맞추어 재야 운동권은 성공회대성당에서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여기서 6·10 항쟁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리고 바로 전날인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는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출정대회'가 열렸다. 전경들은 최루탄을 학생을 항해 발사했고 이한열이 머리에 맞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그러자 58년 개띠들을 비롯한 직장인들이 넥타이를 매고 거리 시위에 동참했다. 마침내 제5공화국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때 이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군사독재 시대는 한참이나 더 진행되었을 것이다.
 
58년 개띠들이 삼십 대 중반이 되자 일산·분당·평촌·산본·중동 같은 신도시에 입주가 시작되었다. 1990년 58퍼센트에 불과했던 주택보급률이 급속히 높아졌다. 58년 개띠는 중년에 자기 집을 가지게 된 해방 후 첫 세대였으며 부동산 열기를 타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마흔 줄에 들어서려던 1997년 12월 국가부도사태가 났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게 20억 달러를 급히 빌려달라고 구걸해야 했다. 대가는 가혹했다. 우리나라 경제정책은 국제 자본가들의 입맛대로 돌아갔다. 수많은 58년 개띠들이 한창 일할 마흔 살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났다.
 
1998년 2월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경제가 다시 정상화 되고 민주화가 정착되었다. 하지만 58년 개띠는 이미 50줄에 들어선 다음의 일이다. 정치와 사회의 주도권은 그들보다 몇 년 어린 386세대에게 넘어 갔다.
 
이전 세대가 누리던 특권은 사라졌고 다음 세대보다는 훨씬 강한 경쟁을 견뎌내야 했으며 한국 산업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별다른 빛을 보지는 못했던 58년 개띠가 올해 만 예순이 된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물러나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58년 개띠 선배들이 정말 고맙다. 18년 개띠 생들에게는 부디 다른 삶이 기다리기를 바란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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