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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 만들고 싶어"
(사회적기업가를말하다)백정연 소소한 소통 대표
발달장애인의 일상생활 자립에 도움주는 '이해하기 쉬운 문서' 제작·보급 앞장
"이해하기 쉬운 문서는 시각장애인의 점자, 청각장애인의 보청기와 같은 것"
2018-01-12 06:00:00 2018-01-12 14:41:34
[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전체 장애인 인구는 지난 2016년 기준 251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발달장애인'은 23만명을 차지한다. 현행법은 장애의 유형을 총 1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이란, 이 분류 가운데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정책적으로 통칭하는 말이다. 영화 '말아톤'과 '7번방의선물'에서 배우 조승우씨와 류승룡씨가 연기한 주인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각자의 장애 정도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발달장애인들의 대다수는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일상적인 의사소통과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의 돌발적인 행동과 말투 때문에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백정연 소소한 소통 대표는 발달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이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문서'를 널리 보급해, 이들이 평범한 일상생활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 9일 서울 신도림동에 위치한 구로사회적경제 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해 있는 사회적기업 '소소한 소통(소소)'을 찾았다. 백정연(사진) 대표는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소소는 4월 법인전환을 마치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으로부터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 지원을 받고 있는 곳이다. 현재 예비사회적기업 등록 신청을 해둔 상태다.
 
소소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문서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국내에는 아직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명칭도 없는 '이해하기 쉬운 문서'란 비장애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문자에 대한 독해력과 이해력, 사고력 등이 부족한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쉽게' 만든 문서를 일컫는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관련법이 제정돼 이미 20년 가까이 보급됐다. 이들 국가에서는 이지 리드(easy read) 또는 이지 투 리드(easy to read)라는 용어로 쓰인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에서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이 제정돼 지난해 7월26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백 대표는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선진국의 사례 등에 비춰 우여곡절 끝에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지만, 법 조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 선언적인 규정이 많다"며 "정작 법의 당사자인 발달장애인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첫 단추를 끼운 것에 불과하고, 앞으로 발달장애인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입안을 위한 법으로 개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관심이 커짐에 따라 '이해하기 쉬운 문서'에 대한 필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백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문해력이나 사고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다양한 문서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 때문에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주변의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자를 최소화하는 한편 한자어 등 어려운 말을 쉬운 단어로 바꾸고, 무엇보다 삽화를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해하기 쉬운 문서"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서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백 대표는 "간단한 은행업무, 근로계약서 작성 등 일상생활에서 겪게되는 일에서, 문서에 쓸데없이 어려운 단어들이 많은데 이를 발달장애인들이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문서를 만들어 비치해두면, 이를 보고 스스로 업무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백 대표가 장애인 인권, 특히 발달장애인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다. 그는 "어쩌다보니 대학 시절 4년 내내 같은 장애인센터에서 노력봉사를 하게 됐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장애인들의 80% 가량이 발달장애인이었다"면서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발달장애인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백 대표는 "학생 때 봉사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우리사회의 뿌리 깊게 내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었다"며 "이런 편견은 지금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봉사활동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특히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백 대표는 "처음에 부모님은 사회복지사 일도 반대하셨다. 내 뜻이 확고하니 나중에는 허락해주셨지만, 발달장애인을 돕는 일에는 반대하셨다"며 "아무래도 부모님 입장에서는 사회취약계층 등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가 조금 더 편한 길이 아닌가하고 생각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 대표는 묵묵히 소신을 따랐다. 지난 12년의 사회복지사 경력 가운데 10년 이상을 발달장애인을 위해서 일했다. 그는 "특별히 발달장애인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 내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모습이 가장 행복하고 '나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순수한 그들의 눈빛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아름다운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소속 사회복지사로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살던 그가 험난한 독립을 선택한 것도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 대표는 "조직에 소속돼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것도 물론 큰 보람이 있었지만, 사회복지기관이어도 결국 조직은 '운영'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보니 가끔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갓 창업 1년을 맞은 소소는 사업 첫해인 지난해에만 전국 23개 기관과 40개의 이해하기 쉬운 문서를 제작했다. 특히 창원경찰서에 비치한 경찰서 매뉴얼은 경찰 내부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예상보다 큰 성과였다. 그럼에도 백 대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이해하기 쉬운 문서는 시각장애인의 점자, 청각장애인의 보청기와 같은 것으로 발달장애인의 알권리"라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신체장애인 남편과 결혼했다. 그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장애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장애 감수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통해 실제 장애인 가족이 되고 나니,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도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인들 나아가 모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결국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이해하기 쉬운 문서' 자문단이 편집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소소한 소통
 
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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