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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벤처진단)①투자유치는 항상 옳다?…벤처 '족쇄'될 수도
투자자 과도한 경영간섭 염두에 둬야…성급한 투자유치, 사업 좌초로 이어지기도
2017-12-28 06:00:00 2017-12-28 08:16:53
[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새 정부가 출범한 올해는 지난 2000년 이후 다시금 벤처붐에 불을 지핀 해로 평가된다. 정부는 지난달 2일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발표하며 벤처 생태계 조성에 적극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네 바퀴 성장론(일자리 성장,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핵심으로 혁신벤처 육성이 꼽힌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대 3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 먼저 향후 3년간 정부와 민간이 매칭하는 방식으로 기술혁신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를 조성한다. 또한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과 민간이 함께 20조원 규모의 대출프로그램도 마련, 이른바 '혁신모험펀드'가 투자 기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정부가 먼저 큰 그림을 제시하자, 민간 차원에서도 정책 제언이 나왔다. 지난달 28일 벤처기업협회, 이노비즈협회 등 국내 벤처 관련 단체들이 다수 소속된 '혁신단체협의회'는 처음으로 민간이 주도한 혁신벤처 정책 로드맵인 '혁신 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벤처 생태계 조성을 위한 5대 선결 인프라와 12개 분야의 160대 세부 실천과제가 담겼다.
 
정부와 민간이 각각 내놓은 안건의 주요한 공통분모 가운데 하나가 바로 '투자 활성화'다. 대규모 투자자금이 풀릴 것으로 예상되자 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2년차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한 대표는 "사업 초기에 시드머니(종잣돈)로 투자 받은 1000만원가량을 제외하고는 이후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시제품 출시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직접 투자를 촉진하겠다고 나선 만큼 내년에는 펀딩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커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맹목적인 투자유치는 자칫 사업 실패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벤처 투자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하다. 투자자들도 보는 눈이 비슷하기 때문에 빠르게 성과가 날 것 같은 스타트업에 투자가 몰린다. 때문에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투자유치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디서든지 일단 투자를 받고 보자'는 식의 생각이 팽배하다"고 덧붙였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들이 이 같은 '묻지마식 투자유치'가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 제대로 된 인식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스타트업 대표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투자도 받고 사업도 잘 풀릴 것이란 다소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면서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화 하려면 필연적으로 자금이 필요하고, 자금을 마련하려면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이들 투자자들은 (일부 스타트업 대표들과 다르게) 철저히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는 자신이 투자한 스타트업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간섭하게 되는 일도 발생한다"며 "이 때문에 철저히 '을'의 입장에 있는 스타트업 대표들은 투자자의 과도한 경영 간섭에 속앓이를 겪기도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주변에서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한 번에 투자유치에 성공한 사례도 봤다"면서 "그런데 사업 진행과정에서 대표와 투자자 간에 이견이 커지더니 결국 사업 자체가 무산되고 법정 다툼까지 갔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를 받는 일이 큰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투자를 받는 순간 일종의 '족쇄'를 차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스타트업 법률자문 등을 전문으로 하는 나지수 유앤아이파트너스 변호사는 "자신의 회사와 맞지 않는 투자자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선택해 투자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운영자금 등이 필요해 급히 투자받다 보면 투자자의 가치관, 회사와의 궁합, 투자자가 투자금 외에 회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다수의 투자자와 논의를 하고, 최종 투자 결정을 하기 전에 멘토가 될 수 있는 선배 스타트업 대표 또는 변호사, 회계사 등과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2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 베어드홀에서 열린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친 김동연(오른쪽 세번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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