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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육성정책, 이대로 괜찮나)③쪼개진 업계…'밥그릇 싸움'에 목소리 제각각
벤처기업협, 이권 둘러싼 주도권 다툼…지원금 노린 단체도 '우후죽순' 난립
2017-11-27 06:00:00 2017-11-27 06:00:00
[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정부가 벤처·스타트업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정작 업계 내에서는 '밥그릇 싸움'만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벤처·스타트업 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단체가 없을뿐더러 단체 안에서도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 또 업종별로도 수많은 단체가 난립해 각자의 이권만 좇고 있어, 업계 발전은커녕 관련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벤처기업협회는 국내 벤처·스타트업 업계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민간단체로 꼽힌다. 사업 시작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부터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중견 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1만4000여 기업이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산하에 '혁신벤처정책연구소'를 두고 벤처 생태계 조성, 규제·제도 개선 발굴 및 개선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또 각 분과위원회는 다양한 기업들의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운영되며, 해당 업계와 긴밀히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벤처기업협회가 국내 벤처·스타트업 업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각종 이권을 둘러싸고 협회 내부에서 이른바 '계파'까지 형성돼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는 말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안건준 회장을 필두로 한 주류 라인과 김봉진 이사를 중심으로 한 O2O(Online to Offline) 관련 벤처기업들 간의 갈등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본질적으로 각자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알력 다툼"이라고 말했다. 안 회장은 부품제조사 크루셜텍, 김 이사는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 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대표이사다.
 
김 대표는 최근 벤처기업협회와는 별개로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란 단체를 정식 발족시켰다. 그는 발족 선언문을 통해 "우리 사회는 '혁신'과 '창의'를 말하면서도 이를 충실히 실현해 내지는 못했다"며 "오늘 여기 스타트업 기업들이 모여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을 출범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규제 당국과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고 건전한 협의를 지속해 스타트업 생태계와 새로운 시장 영역 및 사업에 대한 규제 당국의 이해를 높이고 스타트업 규제 개선을 공론화함으로써 적절한 규제 정책과 환경이 마련되도록 힘을 모을 것"이라며 업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협회가 업계를 위해 해줘야할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고 판단해, 김봉진 대표가 앞장서 별개의 단체를 조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대정부 소통 창구가 분산돼 결과적으로 업계의 목소리가 힘을 받지 못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벤처·스타트업이라는 범주에는 너무나 다양한 업종과 형태의 기업들이 들어있다"면서 "각자가 원하는 바가 다른 상황에서 어느 특정한 단체를 통해 목소리가 수렴된다면 오히려 제대로 된 의견이 전달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 단체 내에서 주도권을 가진 쪽의 목소리만 적극 반영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업종별 벤처·스타트업 단체가 난립하는 것도 문제다. 실제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 산업분야 가운데 하나인 '드론' 업계의 경우, 관련 단체만 1000개가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관심을 두는 분야일수록 더 많은 자금이 집행되기 마련"이라며 "대부분의 단체들이 업계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각종 정부 지원 자금 등을 노리고 달려드는 행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부작용을 막지 못하면 결국 해당 업계에서 진짜로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업계에서도 쪼개진 단체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서로 협력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지난 9월 출범한 '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그 첫걸음이다. 협의회는 벤처기업협회·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 총 7개 단체로 구성된 통합 기구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앞으로 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중심이 돼 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중심 창구가 될 것"이라며 "오는 28일 '혁신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개획'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26일 벤처기업협회 등 7개 단체가 참여한 혁신벤처단체협의회 출범식이 KDB산업은행 스타트업IR센터에서 열렸다. 사진/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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