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다시 신들메를 고쳐 매자
2017-10-12 06:00:00 2017-10-12 06:00:00
열흘이나 되었던 한가위 긴 연휴가 끝났다.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연휴 기간 동안 인천과 경기도 시흥 쪽의 바다와 포구를 찾았다. 월곶에서 인천의 소래포구 쪽으로 건너가는데, 때마침 바닷물 유입이 이뤄지며 바다는 만조를 꿈꾸고 있었다. 밀려드는 사람들의 수많은 발걸음과 목소리가 인산인해를 이루며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갯벌의 흔적을 지운 밀물의 시간처럼 바다에도 포구에도 일상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현재 대한민국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도 녹록치 않아, 밀물처럼 몇 가지 굵직굵직한 뉴스가 우리의 일상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우리의 국력을 시험하는 시그널처럼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잇따른 북한의 무력 도발로 인해 세계가 팽팽한 긴장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은 크게 유난 떨 일이 아니라는 듯 거짓말처럼 평온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9월 29일부터 10월 9일까지 추석연휴기간에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 사람이 206만 명을 돌파해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 이래 모든 연휴를 통틀어 역대 최다규모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다지 반갑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2017년 2분기에 내국인이 해외에서 쓴 카드 이용금액이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를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하다. 반면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쓴 카드 값은 대폭 줄었다고 하니, 어쩌면 우리들만 밀물처럼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느낌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에는 더 귀를 쫑긋하게 된다. 이른바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건으로 촉발된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가 예사롭지 않다는 뉴스가 우리를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10월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주한 미군의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에 나선 진짜 이유는 정보기술(IT)·자동차·조선·화학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의 경쟁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실었는데, 사드 배치는 중국의 경제 보복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고 향후 중국의 행보에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의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총리는,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핵보유국이 비핵보유국을 위협하고 있다”며 공언하고 나섰다. 다가오는 10월 22일은 일본의 총선일이다. 그때 북한 문제를 최대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지지율 회복에 북핵을 이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최근 일본 정치권에 돌풍을 몰고 온 ‘희망의 당’ 대표이며 도쿄도지사(東京道知事)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가 총선 후에 모종의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리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뉴스로 들린다. 두 사람 모두 우익 성향의 정치인으로 미래지향적 관점으로 한일관계를 보면, 그다지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추석 연휴 중 무섭게 다가온 미국의 통상압박도 예사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안보위기에 경제위기가 겹쳐지는 짙은 난기류가 한반도 상공을 가득 메우고 있는 형상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빗나간 통상 압박이 과연 누구에게 이로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쌓여만 간다. 이를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가 우리의 계절을 가로막고 있다.
 
지금부터 380년여 전이다. 주지하다시피, 1636년 12월에는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있었다. 전쟁 결과, 우리는 일방적으로 인조가 굴욕적인 항복을 했고, 백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 치욕과 고립무원의 공간이었던 ‘남한산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을 보는 내내, 언뜻, 지금 우리를 압박하는 갖가지 내부적·외부적 요인들이 그때의 남한산성을 에워싸던 청나라 대군들처럼 우리를 조여 있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기우일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확대 해석과 과장된 상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비교의 차원이 다르다’와 같은 평가를 한 쪽 귀로 흘리기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이 편치 않다. 다시 신들메를 고쳐 매자. 거대한 밀물이 닥쳐오고 있다는 신호는 이미 불을 켜지 않았는가.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교수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