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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플러스)CEO 바뀌면 주식 대박나는 이유 알고보니
전임 경영자 시절 부채 등 한 번에 털어버리는 '빅배스' 기법 활용 탓
분식회계 구분 기준은 '고의성' 여부로 판단
2017-09-19 06:00:00 2017-09-19 06:00:00
[뉴스토마토 박민호 기자] 한 분기를 마무리하면 돌아오는 상장 기업들의 실적 발표 시간.
 
몇 몇 기업들은 악조건 속에서 좋은 실적을 내거나 혹은 전년, 전분기보다 높아진 실적을 발표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다소 나쁜 순이익이나 영업이익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주가가 크게 출렁이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어닝 서프라이즈라고 해서 나은 실적을 발표하면 다행이지만, 반대 어닝쇼크의 경우에는 기업들이 왜 이렇게 실적이 악화됐는 지에 대해 공시자료나 언론을 통해 해명하곤 한다.
 
경쟁이 심해졌거나 경영 환경이 나빠서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가 일반적으로 많이 접하는 사유기는 하지만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회계 부문의 '손실 반영'으로 인해 순이익이나 매출액이 대폭 감소하거나, 적자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계상의 '손실반영'은 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 회계 때문에 손실이 났다는 것은 그 동안 손해가 안난 것으로 인식하다가 이번 분기에 이를 '한 번에 털어버렸다'는 의미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지금까지 처리하지 않았던 금융상품이나 파생상품의 손실을 해당일에 인식해 처리하는 경우도 있고, 기존에 체결해 둔 계약 등이 진행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손실을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즉 미래의 빚이나 부채, 손실, 비용을 현재로 앞당겨 한꺼번에 인식해버리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기업의 모든 악재와 손실을 전임경영자 탓으로 모두 돌리고 새 경영자는 새로 출발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영자가 발생시킬 빚과 부채, 손실, 비용을 미래의 후임 경영자에게 모두 돌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전 손실을 떠안지 않고 앞으로의 모든 손실도 후임경영자에게 떠넘겨버리니 당연히 실적과 주가는 이른바 '대박'이 나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이런 현상은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바뀌었을 때 자주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번에 새로 대표이사가 변경돼 장부를 한 번 흝어봤더니 전임 CEO가 잡지 않았던 부실이 있는 경우, 새롭게 시작하는 CEO와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를 그대로 떠안고 가기는 좀 무리가 있기에 전임 경영자 탓으로 다 돌려버리는 셈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CEO가 오기 전 그 동안 잡고 있지 않던 부실을 털어낸다. 물론 이 때문에 기업의 순이익 등이 크게 감소하거나, 심할 경우에는 적자를 보는 경우가 생기지만 새로운 경영진은 '내탓 아니오'라는 식의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홀가분한 입장에서 새롭게 경영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런 일종의 회계장부 정리작업을 빅 배스(Big Bath)라 한다.
 
빅배스는 '목욕'이라는 뜻이다. 그냥 단순한 목욕이 아니라 철저하게 몸에서 때와 먼지를 벗겨내는 목욕을 말한다. 즉 목욕으로 더러워 진 몸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회계장부 정리를 통해 손실을 전임 경영자에게 다 돌려버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경영을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특히 공기업의 경우 빅배스 효과가 정권 교체와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공기업은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이에 맞춰 현 정부에 맞는 CEO나 경영진으로 교체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7년 MB 정권 교체 당시 상장된 7개 공기업들은 영업이익이 4조 2000억원, 순이익이 2조 3000억원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2008년 정권 교체에 따라 CEO가 바뀌면서 1조 2000억원의 손실과 2조 1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당시 이를 두고 공기업 인사 교체로 인한 빅배스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주주 입장에서는 빅배스 때문에 어닝쇼크가 발생할 경우 주가 하락으로 인해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주가 하락이 이어지면 주주 입장에서는 좋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신임 CEO 입장에서는 어떨까. 빅배스는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이는 기저효과 때문인데 빅배스가 일어난 다음 기나 분기에 실적이 상향되면, 그 실적이 작더라도 마치 효과가 커 보이는 착시효과가 발생한다.
신임 경영자는 뚝 떨어진 주가에서 시작해 어닝서프라이징을 기록하면 막대한 스톡옵션도 챙겨갈 수 있다.
 
이렇게 과거 실적이 나빠서 현재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더 좋아보이는 것을 '기저효과'라 하는데 빅배스가 발생하면 이 현상이 심화된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착시현상이 발생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빅배스 과정은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 겪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고의성은 없지만 숨겨진 부실을 발견하지 않고 그대로 넘기다가 나중에 한 번에 폭탄처럼 터질 경우에는 누가 손 써볼 틈 없이 순식간에 회사가 도산해버릴 수도 있다.
 
때문에 회사의 지속성장을 위해 빅배스는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빅배스를 두고 분식회계의 발견이냐 하는 것도 논란이 되곤 한다. 빅배스로 인해 반영되는 손실이 적으면 큰 상관이 없지만 과거 대우조선해양의 3조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처럼 그 규모가 클 경우에는 이것이 사실 분식회계 발견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빅배스와 분식회계를 엄밀히 구분하기는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 있다. 우선 빅배스와 분식회계를 구분하는 기준은 고의성이다. 전임 CEO가 만약 회계 손실을 알고도 고의적으로 이를 덮거나 무시했을 경우에는 분식회계로 처벌 대상이지만, 빅배스라고 밝혀질 경우에는 이는 회계 처리의 과정이므로 형사적 처벌 등은 받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대우조선해양 사례처럼 분식회계로 판단되지 않는 빅배스의 경우는 별도로 '이익조정'으로 회계처리를 해오고 있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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