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창립 50주년
입력 : 2008-03-25 12:05:25 수정 : 2011-06-15 18:56:52
 LG전자가 3 27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우리가 그거(전자제품) 맨들면 안되는 기요?
안될 거야 없지요 사장님. 우리 기술 수준이 낮아서…”

그렇다면 문제 없구만. 기술이 없으면 외국 가서 기술 배워오고, 그래도 안되면 외국 기술자 초빙하면   아니오. 우리가 하면  끼라. 그거 한번 검토해 봅시다.(1957 . 당시 락희화학( LG화학) 구인회 사장과 직원과의 
대화)

 이것이
 금성사( LG전자) 있게 만든  발걸음이었다.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은 1957 구체적으로 전자공업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자산업에 대한 진출 결정이 곧바로 사업 착수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미개척 분야인 만큼 위험부담이 많았고, 그만큼 찬반 의견도 분분했다.

 구인회
 사장은 1 가량의 다각적인 검토 끝에, 1958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한국 전자산업의 신호탄이자 국민의 생활 혁명을 예고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LG
전자는
 지난 50년간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왔고, 적극적인 투자와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한국경제에 이바지해 왔다.

 LG
전자
 남용 부회장은 “지난 50년의 우리 역사는 고객을 위한 역사와 다름 아니다. 고객을 위한 끊임없는 가치창출로 100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말했다.
 
 
▲ LG전자 50, 한국 전자산업의 씨앗

 1958
.
 당시만 해도 ‘전자라는 용어 자체가 낮설었고, 전자제품이라야 외제 라디오와 소수의 미국산 수입 TV 정도가 전부였다. 방송 환경도 열악했다. 더구나 라디오와 TV 모두 수입 제품이었다. 당시 구인회 사장은 라디오의 국산화를 결심하고 LG전자를 설립하게 된다.

 1
년여의
 각고의 노력 끝에 LG전자는 1959 11 한국 전자산업의 태동이라 불리는 국산 라디오 ‘A-501 출시했다.

 LG
전자가
 더욱 자신감을 갖게  것은 1962 11 라디오 62대를 미국에 수출하면서다. 한국의 기술이 미국 시장에서도 통했다는 감격은 당시로선 이루 표현할  없었다.

 LG
전자는
 라디오에 이어 선풍기, 전화기,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카세트 녹음기, 전자레인지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출시하면서 한국 전자산업의 역사를 써왔다.

 1966
 8월에는 국산 흑백 TV 세상에 나왔다. 라디오에 이어 LG전자가 7 만에 이룩한  하나의 쾌거였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역사가  단계 도약했음을 알리는 이정표였으며, 우리나라가 영상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일대 ‘사건이기도 했다.

 19
인치
 흑백TV 6 8000원에 출시됐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TV  가격은 500  정도였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돈이 있다고 아무나   없었다. 생산량이 모자라 공개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만 판매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 LG전자 50, 주요 발자취

 LG
전자의
  해외 사업 진출은 68 미국 뉴욕에 지사를 설립하면서부터다.

 1973
 3 LG전자는 전자업계 최초로 증권거래소( 증권선물거래소) 상장됐다.

 LG
전자는
 1975 12 민간기업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는데, 이는 국제적 수준의 제품을 개발과 생산을 위한 결단이었다.

 1978
 12 LG전자는 국내 가전업계로는 처음으로 수출 1 달러를 달성했다. 창업 20 만의 일이자, 해외로 수출을 시작한  16 만의 일이었다.

 1982
 10 LG전자는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에 생산법인을 설립하게 된다.  해외 생산기지는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 지역이었다. 공장 건설 단계부터 줄곧 국내외 언론과 주요 인사들의 관심을 모아  헌츠빌 공장의 성공 사례는 당시 한국적 경영의 성공 사례로 평가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헌츠빌 법인의 성공 사례를 교재로 채택하는  한국적 경영을 주제로  연구와 세미나도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헌츠빌의
 성공을 계기로 LG전자는 해외 진출을 점차 확대하게 되었고(현재 해외법인 82),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도  자극을 줬다.

 1995
 LG전자는 미국 최대 가전회사였던 제니스를 인수했다. 인수 발표 소식이 나가자  세계 가전업계와 언론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특히 미국의 언론들은 ‘미국의 자존심이 아시아의  전자 회사에 무너졌다. 부끄러운 날이다.라며 대서특필했다.

 약
 10 간의 구조조정을 거쳐, 제니스는 올해  9000 달러의 디지털 TV 로열티를 벌어들이는 ‘LG전자의 효자 거듭났다.

 99
년에는
 유럽 최대 가전회사인 필립스와 손잡고 LCD 합작 사업을 시작했고, 2001년에는 브라운관 사업에서도 손을 잡았다.

 2006
년에는
 국내 전자업계 최초로 러시아에 생산 법인을 세웠다.
 

 ▲ 숫자로  LG전자 50

 창업
 당시 300명으로 출발한 LG전자 임직원 수는 현재 120 개국에 위치한 해외법인과 해외지사를 포함해 8 2000 명에 이른다.

 창업
 이듬해인 59 5000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1조원으로 늘었다. LG전자는 1962 5 달러 상당의 3592대의 라디오를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해 지난해 183 달러를 수출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창업
 당시 1000만원 자본은 지난해 기준 7 2000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LG전자는  62 2 9백만 원의 순이익을 내고 지난해 1 2000억원의 순이익을 내기까지 1980  해를 제외하고 모두 흑자를  경이로운 기록도 갖고 있다. 1980년은 오일쇼크 영향으로 경기 불황이 국내 산업계를 덮친 탓이었다.
 
 
▲ LG전자 50,  노경문화 창조

LG
전자는
 87년과 89  차례의 노사분규를 겪었다. 87년에는 10 동안의 노사분규로 888  상당의 생산 차질을 빚었으며, 1989년에는 36일이라는 기록적인 조업 중단으로 회사 창업 이래 가장 어려운 고비를 맞기도 했다.

LG
전자는
 생존차원의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회사 정상화에 성공했고, 93년에는 기존의 수직적 개념의 ‘노사(勞使)관계’ 대신 수평적 개념의 ‘노경(勞經)관계라는 LG전자만의 고유개념을 도입해, 노경이 상호 협력하는 자발적인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혁신적인 ‘노경공동체 구축해 오고 있다.

 LG
전자는
 최고경영자의 솔선수범하는 리더십, 과감한 권한 이양을 통해 신뢰와 존중의 노경문화를 구축해 오고 있으며, 현장중심의 열린 경영, 공정한 보상체계 등을 통해 투명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LG전자 노경은 90 이후 19 연속 무분규 임금교섭 타결의 전통을 이어오는 한편,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경공동 사회공헌기금 조성  사회봉사단 활동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뉴스토마토 박은영 기자 (ppara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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