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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사혁명4.0이다)①무노조 전쟁, 얻은 것은 '악명', 잃은 건 '기업 이미지'
2017-04-24 07:00:00 2017-04-24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구태우 기자] 노사관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노사가 벼랑 끝 싸움을 벌이면 노조는 노조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피해를 본다. 협력과 상생은 노사 모두 지향하는 대원칙이지만 현실에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재벌기업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입장차가 확연히 갈리는 데다, 노사 모두 강경 입장을 버리지 않으며 대치전선에만 집중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역시 굳어지고 있다. 과거에만 얽매는 노사관계로서는 앞날을 기약할 수가 없다. 6차례에 걸친 '노사혁명 4.0'을 통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저성장과 양극화를 극복할 해법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조장희 삼성지회 부지회장(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은 지난달 2일, 5년8개월 만에 회사로 출근했다. 삼성물산(옛 삼성에버랜드) 식음료사업부 소속이었던 그는 사측과의 기나긴 싸움 끝에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후에야 회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2002년과 2006년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지냈고,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가 2011년 7월 해고됐다. 당시 사측이 제기한 해고 사유는 17가지로, 경영상 비밀정보를 누설하고 직원의 개인정보를 빼내 노조 홍보에 이용한 것 등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통상적인 해고는 해고의 적합성과 경영상 필요성 등을 따지는데, 이번 사례는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핵심이 됐다고 판단했다. 문건에는 삼성이 노조 설립 단계부터 노조를 와해하려 했고, 노조와 관련된 직원을 문제직원으로 관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법원은 삼성에서 문건을 작성했다고 판단했다. 삼성이 문건대로 노조를 와해하고 노조 설립에 나선 직원들을 제압하는 등 불법을 자행했다는 노조와 정치권 주장을 받아들였다. 조 부지회장은 복직했지만, 삼성은 여전히 문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취재팀의 해명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신세계 이마트에서도 무노조 경영을 위한 시도가 있었다. 2012년 10월 민주노총 소속 이마트 노조가 설립됐다. 사측은 'NJ(노조) 대응 문건'을 작성,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본부와 전국을 10개의 권역으로 나눠 직원들을 관리했고, 실체 파악조, 채증조, 미행조 등도 편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직원들의 개인정보까지 파악, 관련 직원들을 'MJ'로 관리했다. 삼성과 판박이다. 이마트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직원들과 소통했는데, 따로 노조가 생기면서 사측과 불협화음이 생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료/민주노총
 
사찰로 대응한 삼성과 이마트…'악명' 얻고 '이미지' 잃어
 
삼성과 신세계 계열사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하는 재계의 구시대적 판단에서 비롯된다. 지난해 3월 <뉴스토마토>가 자산 상위 30대 기업집단의 계열사 252곳(자본시장법상 정기공시 대상)의 노동조합 조직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노조가 조직됐고 실제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된 곳은 122개사(48.4%)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것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조직화된 실행을 방해하는 것은 내부의 불평·불만이다. 기업은 경영상 이유를 들어 인수합병(M&A), 사업 확장·정리 등을 단행하고,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구조조정이 뒤따른다. 그런데 여기에 반발하는 직원들은 노조를 통해 사측에 대항한다. 이들을 달래고 무마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사실 기업이 노조를 달가워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삼성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과 한화 간 빅딜 등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이 강조하는 '경영상 필요'가 결국 오너의 경영권 방어와 세습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노조는 '오너의 뜻'을 거스르는 암적 존재다. 이런 맥락에서 창업주 이병철 회장 이래 79년간 무노조 경영을 지켜온 삼성은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이씨 왕국을 건설했다. 재계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신화로 대접하는 이유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삼성이 얻은 것은 '악명'뿐이었다.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사찰 등 불법행위마저 마다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겼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삼성의 노조활동 무력화를 문제 삼고 청문회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급기야 국제노동기구(ILO)는 조 부지회장이 관련된 문건의 검찰 수사 결과를 통보하라고 정부에 권고, 삼성을 또 다른 면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게 했다.  
 
전직 삼성 직원 등으로 구성된 삼성일반노조는 2012년 10월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재벌'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얻는 것은 악명, 잃은 것은 기업 이미지"라고 표현한다. 첨단기술로 글로벌 시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대기업들이 정작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구시대적 관행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노조 인정하고, 노조는 대결적 자세 버려야"
 
그렇다고 노조의 투쟁이 언제나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2013년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이 벌인 불매운동은 노동계에서도 자성의 대상이 됐다. 2005년 코오롱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하자, 해고 노동자들은 2014년까지 복직투쟁을 했다. 코오롱 노조는 2013년부터 1년간 민주노총 등과 코오롱 불매운동을 펼쳤다. 불매운동은 회사의 매출을 떨어뜨리고 회사에 남은 동료들에게도 피해를 준 일종의 '해사' 행위로 사회에 인식됐다. 해고 노동자들은 복직되지도 않았고, 노동계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노조의 극단적 대결구도를 종식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삼성은 회사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조를 대하는 태도가 변해야 한다"며 "삼성 노조가 사측과 정상적으로 교섭하고 조합원 수가 늘어난다면, 노조의 요구도 현실적인 수준으로 정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기획전략실장은 "사용자가 노조를 비용으로 여기는 순간 노사간 분쟁과 갈등이 발생한다"며 "회사는 구조조정에 따라 생기는 해고 등의 고용문제를 피해로 받아들이지 말고, 노조는 산업 전체의 문제로 접근해서 회사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삼성은 노조를 막느라 치르는 비용이 노조를 허용한 기업이 치르는 비용보다 더 크다"며 "무노조 경영 독트린을 재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병호·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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