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고은 기자]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2015년 기준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113시간이다. 회원국(34개국) 중 2위에 해당하는 '장시간 근로국가'다. 정반대의 통계도 있다. 지난해 OECD가 내놓은 '일자리의 질'(Job Quality) 통계(2013년 평균소득 기준)를 보면 한국인들의 딱한 처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나라별 물가와 환율 차이를 감안한 구매력 평가 기준(PPP)으로 추정한 우리나라의 시간당 평균소득은 14.6달러였다. 비교대상국가 중 22위로 네덜란드(35.0달러), 독일(31.2달러)의 절반 수준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나라는 이스라엘(13.0달러), 그리스(12.3달러) 등이었다. '일 할 맛 안 난다'는 말이 괜한 푸념이 아닌 것이다.
그런 푸념조차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1999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9.8%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한 민간연구기관은 청년 체감실업률을 34.2%로 추정했다. 청년 10명 중 3명은 실업상태라는 것이다.
문재인 "'작은 정부가 좋다'는 미신 끝내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일자리 정책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라는 명제에 "반만 맞는 말"이라는 입장이다. 문 후보는 "'작은 정부가 좋다'는 미신, 이제 끝내야 한다. 정부와 공공부문이 최대의 고용주이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시각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부 정책에서 일관성 있게 드러난다.
문 후보는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청와대 내 일자리 상황실 설치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 OECD 평균 절반 수준으로 상향, 81만개 일자리 창출 ▲한 해 17조원 이상 일자리 예산 전면 재검토 ▲노동시간 단축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 대기업 80% 수준까지 상향 등을 약속하고 있다.
이중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계획은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많은 반론에 부딪치고 있다. 세금을 낼 수 있는 민간부문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데,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공부문 일자리가 얼마나 지속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은 "OECD 선진국 대부분이 한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은 공공부문 종사자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 대비 공공부문 종사자 비율은 덴마크가 34.9%, 노르웨이가 34.6% 수준으로 이들 국가는 경제성장과 형평성을 함께 성취했다는 이유로 다보스 포럼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국가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지출 가운데 공공부문 종사자에 대한 보수 비율(21%)이 OECD 평균(23%)에 근접한다는 지적에도 "GDP 대비 일반정부지출 규모 자체가 OECD 평균의 3분의2 수준이고, 일반정부지출 중 사회보장지출 비중이 적어 상대적으로 공공부문 보수 비중이 크게 나타났을 뿐"이라는 답변이다.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는 소방, 경찰, 교사, 복지공무원 등 사회적 수요가 많은 곳에서부터 만들어질 예정이다. 아울러 전기차, 자율주행자동차,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 3D프린팅, 빅데이터 등 4차 산업 관련 분야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고로 삼고 소프트웨어 교육 등 교육정책과 결합해나갈 계획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기업 노동자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공정임금제 시행, 공공부문 비정규직 단계적 정규직화 등은 일자리 확충과 동시에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문 후보의 정책이다. 법정노동시간인 주 52시간을 지키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른 노동자들의 연차휴가 의무 사용, 유연근무제 확대 등으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근로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안철수 "정부가 책임지고 만들겠다 하지 않겠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정부 주도형 일자리 대책에 회의적이다. 안 후보는 지난 2월 일자리 관련 공약을 발표하며 "시장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가 아무리 과감한 일자리 정책과 복지 정책을 펼치더라도 당면한 양극화와 고용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거나 일자리 상황실을 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나.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을 약속하겠다"고 문 후보를 직접 겨냥했다.
안 후보는 산업정책 전환과 결합한 일자리 대책에 집중한다. 그는 "과거 외환위기 때 실업대란을 일자리 정책으로 극복한 것이 아니다. IT산업과 벤처기업 진흥 등 산업정책으로 극복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기술·창업혁명 공약 중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한 10만 양병' 공약이 대표적이다.
기술·영역 간 융합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맞춰 근로자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체계의 혁신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교육제도 개혁 과제와도 연계된다.
일자리 대책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공공부문 정규직화 등으로 질 낮은 일자리 개선에 모범적으로 나서고, 공정한 보상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는 게 안 후보의 시각이다. 특히 일자리 표준에 대해서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 후보는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 고용은 최대한 보장되는 새로운 유형의 정규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안전, 복지, 고용 등 공공부문에서부터 '직무형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문제는 '국가임금직무혁신위원회' 설치를 통해 직종별, 직무별 임금개혁의 중장기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도 공공부문부터 직무별로 표준화된 임금통계를 마련해 공개하고, 민간기업으로의 확산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는 5년 한시의 ‘청년고용보장계획’ 실시를 제안했다.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대-중소기업 간 신입사원 초임격차를 현재의 60% 수준에서 8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유망한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2년간 1200만원을 지원하고, 미취업 청년들에게는 6개월간 월 30만원의 훈련수당을 지급한다. 중소기업 취업 청년 지원과 훈련수당으로 향후 5년간 약 9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17조원 규모의 일자리 예산을 재조정하고 부족할 경우 국민의 동의를 얻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홍준표 "정치권 기업옥죄기·강성귀족노조 원흉"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역시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민간기업이라는 입장이다. 아직 구체적인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지 않은 홍 후보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청년 일자리 절벽시대가 된 것은 정치권의 기업옥죄기와 강성귀족노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홍 후보는 규제 혁파와 강성귀족노조 해체에 일자리 대책의 답이 있다는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유승민 "창업하고 싶은 나라 만들어야"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역시 민간 주도의 일자리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민간 중에서도 일자리 창출 여력이 떨어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창업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유 후보는 '창업하고 싶은 나라' 만들기 공약을 통해 ▲혁신안전망 구축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의 전환 ▲창업을 통해 자수성가할 수 있는 환경 구축 ▲벤처캐피털 요건 완화 등을 통한 창업 활성화 ▲창업교육 지원 확대 ▲산업정책의 중심을 대기업에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으로 전환 등을 약속하고 있다.
심상정 "공공부문 중심 좋은 일자리 확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간호·보육·교육·소방 등 사회서비스 및 공공분야에서 100만개,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개 등 총 1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전기자동차 등 미래산업 분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산업 분야, 생명농업 분야 등 4차 산업 일자리 역시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분야로 주목하고 있다.
청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청년고용할당 비중을 현행 3%에서 5%로 확대하고, 3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에도 5%로 확대해 질 좋은 청년 일자리 24만개를 만들어낸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청년실업부조’를 도입해 15~35세 미만 청년 중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실업급여 지급이 종료된 경우 등에 한해 소득 7분위 이하 가구 청년에게 1년 범위에서 최저임금의 50%를 지급하는 정책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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