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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눈길'
2017-02-14 15:19:36 2017-02-14 15:19:36
[뉴스토마토 신건기자]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눈길'(감독 이나정)의 시사회가 지난 13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렸다. 눈길은 지난 2015년 KBS1에서 방송된 광복 70주년 기념 특집 드라마를 장편영화로 재편집한 작품이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말, 다른 운명을 타고난 두 소녀가 일본군 위안소에서 같은 비극을 당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고 싶은 '영애'와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종분'의 모습을 통해 당시 소녀들의 다양한 심경을 담아내려 한 감독의 노력이 돋보인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눈길'은 기획 초기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제작에 들어갔다.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는 기자 질의에서 "2013년 KBS 함영훈 CP를 만나 처음 기획할 때부터 영화와 방송을 같이 할 수 있을 부분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나정 감독 역시 "제작 단계부터 영화화될 것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형태로 대본 작업을 했다"며 "방송 이후 극장 개봉을 위해 영화적인 느낌으로 재편집을 했다"고 덧붙였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방식의 스토리로 진행된다.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 모습을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영화 '귀향', '국제시장' 등에서 접한 익숙한 방식이다.
 
다만 '눈길'은 단순 회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네 사회의 문제점을 함께 꼬집어주고 있다. 국가는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고,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사회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새로운 피해자들도 생겨나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위안부'지만 감독은 이 작품이 단지 '위안부'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나정 감독은 이와 관련해 "현재에도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분들도 같이 생각해보기를 바랐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또 "힘드신 분들이 서로 손을 잡고, 용기를 내는 모습에서 희망을 내지 않겠냐고 생각해봤다"고 덧붙였다.
 
  
영화 눈길(왼쪽)과 귀향(오른쪽)의 홍보 포스터
 
 
위안부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지난해 개봉한 '귀향'(감독 조정래)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차이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절제되어 있어, 시각적인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귀향'은 일본군이 소녀들에게 행한 잔혹함에 초점을 맞췄다면, '눈길'은 당시 소녀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버틸 수 있었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나정 감독은 영화 '귀향'과 차별성을 두려 따로 노력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영화를 기획했던 2013년 당시에는 '귀향'에 대해서 몰랐던 상태였기 때문에 차별성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없었다"며 "다만 미성년자인 배우가 성욕과 관련된 장면을 찍을 때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스펙타클한 시각적 표현은 또 하나의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가해자인 일본 군인과 피해자인 위안부 소녀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거나, 관련 소품을 직접 만지거나 보면서 소녀들이 거북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주연을 맡은 김새론과 김향기도 "감독님이 저희가 환하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좀 더 편하게 촬영을 했던 것 같다"고 제작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눈길'의 상영 소식은 2016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상반기 개봉설이 유력했지만, 그보다 1년 늦은 올해 3월 1일 개봉이 확정됐다.
 
정상진 대표는 극장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KBS 방영 이후 개봉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정 대표는 "영화 배급과 국민들에게 이 사안을 잘 알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들이 있었다"며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방송과 스크린, 두 플랫폼을 오가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부담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정 대표는 해외로 시선을 돌렸다. 전주 영화제를 시작으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를 방문했다. 그 결과 '제37회 반프 월드 미디어 페스티벌 최우수상 수상', '제24회 중국 금계백화장 최우수 작품상', '제67회 이탈리아상 프리 이탈리아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정 대표는 "3년이라는 시간이 길면 길지만 계속 영화를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찾았다"며 "지난해 10월경, 사운드 믹싱을 완벽하게 마치고 올해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영화는 물리적인 폭력성 없이도 충분히 참혹함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의 잔인함을 영화에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소녀들이 당한 수모와 그들의 감정은 영화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 폭력은 현대에 와서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나정 감독은 지난해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당사자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동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작품을 준비하고 시나리오를 보며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위안부 문제는 꼭 사과받아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었다"며 "작고 소박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소망이 비극 속에 묻혔다"고 말했다.
 
또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이가 있을 때 피해자들이 어떻게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을지를 '눈길'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눈길'은 오는 3월 1일 개봉한다.
 
 
신건 기자 hellog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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