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민원 접수하고 수백억 모금…"이게 뇌물 아니면 뭔가?"
(기획)'최순실 게이트' 뇌물죄 적용 가능한가?
재벌총수 독대 전 '당면 현안' 접수→면담 직후 거액의 출연금 제공→특혜성 조치
2016-11-18 08:00:00 2016-11-18 17:05:46
[뉴스토마토 이우찬·이재영·박현준기자] '최순실 게이트'에 얽힌 재벌 기업들의 뒷거래가 속속 들춰지고 있다. 정경유착의 적폐가 드러나며 날마다 새로운 비리 의혹들이 쏟아져 나온다. 당초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들은 모금을 강요당한 피해자처럼 비춰졌지만 이를 통해 각종 '민원'을 해결했을 의혹들이 불거진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7개 그룹 총수들은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뒤 별도로 개별 면담을 했다. 이후 미르(2015년 10월27일 설립)·K스포츠재단(2016년 1월13일 설립)에 거액의 설립자금을 출연했다. 개별 면담이 있기 전 청와대 측은 해당 기업들에게 당면 현안을 정리해 제출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면담 자리에서 현안을 논의한 뒤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것으로 보고 뇌물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대법원은 지난 1997년 전두환·노태우 뇌물수뢰 사건에서 이른바 ‘포괄적 뇌물’ 법리를 정립했다. 기업활동과 관련된 각종 정책 등에 대한 결정은 대통령 직무범위에 포함되고,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할 경우 뇌물공여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묻지 않는다. 각 기업들이 청와대가 어떤 민원을 해결하도록 하거나 청탁하고 돈을 줬는지가 핵심이다. 재벌총수들에 대한 피의자 신분 전환 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편집자)
 
 
삼성, 최순실 거액 지원…승계 보장용인가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가장 많은 204억원을 출연했다. 최순실씨 모녀에게 별도의 거액을 건넨 정황 등 추가 지원 의혹도 꼬리를 물고 있다. 이에 따른 각종 대가성 지원 의혹도 끊이질 않는다. 가장 논란이 들끓는 사안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이다. 국민연금이 당시 의결권 자문업체의 반대 권고에도 불구하고 삼성 편을 들어준 데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다. 지난해 박 대통령이 7개 대기업 총수들과 독대하기에 앞서 해당 기업들에게 요청한 '현안 자료'에도 삼성은 합병에서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가 심하다는 민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경환 부총리와 대구고 동기동창인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삼성에 큰 선물을 준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홍 전 본부장이 지난해 7월7일 이재용 삼성전자 본부장을 만나 면담하고 3일 뒤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할 것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SKC&C와 SK의 합병에는 반대하던 국민연금이 삼성의 손을 들어준다"며 "약 6000억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삼성의 손을 들어준 과정에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개입됐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제윤경 더민주 의원도 "삼성물산에 대해 1.4% 지분만을 보유했던 이재용 일가가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을 완전히 지배하고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지배력도 강화했다"며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의 재산이 이건희 일가에게 편법적으로 이전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이 아무런 대가없이 최순실 모녀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했겠느냐”고 꼬집었다.
 
삼성과 한화 간 빅딜에서도 최씨와 연루된 의혹이 있다. 검찰은 삼성이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등 방산업체를 한화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최씨가 정부 승인을 받아주는 조건으로 거액을 요구한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한화가 방산업체를 인수함으로써 독과점 문제의 소지가 있었지만 정부는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승인했다. 이를 통해 한화는 방산 분야 1위로 올라섰고 삼성은 지배구조의 비핵심 계열사를 정리하면서 2조원대 현금을 확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10일 오전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기업인들과 기념촬영 후 센터를 나서고 있다. 왼쪽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지난해 면세점 입찰에서도 최씨가 개입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호텔신라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등이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결과 발표가 나오기 전에 관세청 직원들이 해당 주식들을 사들인 정황이 포착됐다. 이는 심사위원 평가 결과와 상관 없이 최씨가 개입해 면세점 사업자가 내정됐을 것이란 일각의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신라면세점은 최씨 모녀 단골 성형외과 원장의 처남이 운영하는 중소 화장품을 입점시킨 것으로도 구설수에 올랐다. 청와대 측이 이 회사 제품을 명절 선물로 돌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경제사절단에도 참여하는 등 최씨에 의한 특혜 의혹을 받는 회사다. 최씨가 호텔신라 중식당을 정·재계 고위 관계자 면담 장소로 활용했다는 전언도 있다.
 
한화, 면세점 수주…"예상밖 결과"
 
한화도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주가가 면세점 사업자 발표 당일 아침부터 상승세를 보였다. 현대백화점, 신세계 등 쟁쟁한 후보들 틈에서 한화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기업이다. 재계에서는 한화그룹 총수일가와 최씨가 전부터 가까웠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최씨의 입김이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도 작용했을 것이란 의혹이 번지고 있다. 한화가 삼성전자 이전에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았기 때문에 최씨 딸 정유라씨를 지원하면서 다른 대가를 얻은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돈다. 당시 정씨를 둘러싼 승마협회 '살생부', 국가대표 선발 과정의 외압설 등 특혜 지원 의혹도 있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김 회장은 최종 재판 결과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이후 두 차례 광복절 특별사면에선 제외됐다.
 
검찰 내사 받던 신동빈, 독대 뒤 70억 송금 
 
롯데는 올 초 신동빈 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시기 검찰은 롯데그룹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인 상황으로 박 대통령이 피내사자 신분인 신 회장을 독대한 것 자체가 부적절한 만남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실상 검찰을 지휘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내사를 받던 신 회장의 약점을 알고 있었고, 박 대통령이 이를 약점으로 삼아 모금을 요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독대 뒤 3월17일 K스포츠재단은 기존 출연금과 별도로 롯데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해달라고 요청했고 롯데는 받아들였다. 재단은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기 전 70억원을 돌려줬다. 롯데는 올해 초부터 검찰로부터 내사를 받아왔고, 지난 6월10일에는 전방위 압수수색을 받았다. 검찰은 4개월여동안 수사를 거쳐 지난 10월19일 신 회장을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 등 총수 일가와 함께 총 500억원대 급여를 부당하게 수령하도록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초 수사 핵심으로 여겨졌던 비자금이나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 등이 드러나지 않아 반쪽짜리 수사라는 비판이 있었다.
 
최태원 회장 사면 후 미르에 68억 출연
 
SK그룹은 총수부재가 가장 큰 현안이었다. 그러다 최태원 회장이 2015년 8월15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특사는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헌법상 권한이다. 앞서 7월 박 대통령과의 개별 면담에는 당시 수감 중인 최 회장을 대신해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참석했다. 현안 자료에는 총수 부재로 경영이 어렵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K스포츠재단은 지난 2월29일 SK에 80억원의 추가 출연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이후 7월1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T-CJ헬로비전 합병을 불허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25일 오전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SK하이닉스 M14 반도체공장 준공 및 미래비전 선포식에 참석,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최태원 SK 회장에게서 웨이퍼를 전달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손경식 독대 후 이재현 회장 사면
 
CJ도 이재현 회장의 사면과 K컬처밸리 사업에 있어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CJ 역시 대통령 면담 자리에서 총수 부재의 고충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CJ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13억원을 출연했다. 이후 올해 광복절 특사 명단에 이 회장이 대기업 총수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CJ는 또 K컬처밸리 사업에서 23만7401㎡의 부지를 공시지가(830억원)의 1%인 8억3000만원에 50년간 장기 임대했다. 1% 대부율은 외국인투자기업에게 제공하는 최저 이율이다. 반면, 이미경 CJ 부회장의 퇴진은 정부의 압박으로 밀렸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손경식 CJ그룹 회장과의 통화에서 이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녹취파일이 공개됐다. 재계에서는 정치 풍자 프로그램과 진보 색채가 짙은 영화 제작 등을 이유로 CJ가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는 얘기가 나왔다.
 
개소세 인하·수소차 지원책도 현대차용?
 
현대·기아차는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총 128억원을 출연해 삼성에 이어 두번째로 출연 금액이 많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부터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자동차에 대한 개별소비세율을 5%에서 3.5%로 인하했다. 당초 1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국내 자동차 판매량이 좀처럼 늘지 않자 이를 6월말까지 연장했다. 지난 7월 나온 수소차의 구매 지원책도 현대·기아차가 특혜 의혹을 사고 있다. 정부는 현재 10기인 수소충천소를 2020년까지 100기로 확대하고 개별소비세와 취득세 감면, 보조금 상향 등의 수소차 구매 지원책을 내놨다. 친환경차를 많이 보급하겠다는 의지로 보이지만 현재 국내에서 수소차를 개발 중인 곳은 현대기아차뿐이다.
 
현대·기아차는 또한 지속적인 노사 갈등을 겪고 있다. 올해도 노조는 사측과 임금교섭이 결렬돼 지난 7월부터 두달간에 걸쳐 20여차례의 파업을 벌였다. 이에 정부는 긴급조정권 발동할 것임을 시사하며 노사간 협의를 촉구한 바 있다. 긴급조정권이란 노조의 파업 등 사측을 향한 쟁의가 경제를 해친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가 제한할 수 있는 권리다. 긴급조정권 발동 결정은 노동부장관이 하며 발동되면 헌법상 보장된 파업권이 제한돼 중앙노동위원회가 파업을 해결하기 위한 조정을 제시하게 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박 대통령을 면담할 당시 제출한 현안엔 노사 문제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횡령·배임 혐의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9월28일 구속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나왔다. 신 회장은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LG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기업 중 넷째로 많은 총 78억원을 냈지만 대가성 의혹은 많지 않다. 다만 LG유플러스가 KT와 필사적으로 반대했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간의 M&A가 무산된 것과 관련해 청와대 외압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우찬·이재영·박현준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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