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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깨어있는 시민은 기억하는 시민이다
2016-11-02 06:00:00 2017-01-11 01:40:16
해괴하다. 시스템이 있을텐데 다들 이상하다고 했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라 했다. 그 때마다 저들은 “근거 없는 억측”이라 했고 심지어 “봉건사회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주광덕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박 대통령의 집무스타일을 언급하며 “제가 아는 대통령은 의혹 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 의혹 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소름끼치도록 냉정하리만큼 단호함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혹의 진상이 밝혀졌다. 세금으로 복채를 받은 비선 실세가 있었던 것이다.
 
우스워진 건 그의 절대적 지지자, 아니 신봉자들이다. 박근혜 정책이라면 무조건 옳고, 반대하면 빨갱이라고 악을 써대던 사람들이 최순실 정책이라는 사실을 알곤 어쩐지 이상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잠자고 있던 역사 속 인물들이 불려나온다. 러시아에서부터 라스푸틴이 날아왔고 고려적 신돈도 깨어났다. 어디 그 뿐인가 민비의 진령군도 빠지지 않았다. 장희빈이나 정난정은 아예 명함도 못 내민다. 무당이 아니었으니.
 
한참 활개를 치다 사라진 인물도 많다. 네티즌들은 이장우, 김진태, 김태흠, 조원진의 이름을 부른다. 갑자기 얼굴을 바꾸어 공주님이 부끄럽다고 질타하는 언론도 있다. 그러니 일편단심의 어버이연합은 그들에게 ‘북조선일보’란 이름을 선사했다. 대통령이 연설문 좀 보여준 게 무에 그리 큰 잘못이냐며 “불쌍한 우리 근혜” 땜에 잠 못 이루는 분들도 여전히 수백만이다. 갑자기 나타나 ‘난 다 알고 있었지롱~’을 외치는 자들이 어디 조선일보뿐이랴, 이명박도 정두언도 전여옥도 김무성도 유승민도 다들 이번 기회에 신바람이 났다. 물론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없다. 
 
외신들이 앞다퉈 샤머니즘이 대한민국을 움직였다 전하고 있는 와중에도 해괴한 일은 이어진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살려달라’며 울먹이다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던 이가 곧바로 귀국해서 검찰을 찾아갔다더니 2박 3일의 합숙조사를 마치고 무사히 귀가했다.
 
스무 살 차이에도 반말을 나눌 정도로 친하다던 그가 귀가하자마자,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려있고, 심장이 안 좋아 진료받고 있어 돌아갈 상황이 아니다. 딸아이가 심경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두고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연민의 정을 구했던 당대의 실력자가 느닷없이 귀국했다. 
 
기자는 단독 인터뷰한 장소가 독일이었다는데 전기 콘센트는 덴마크였고, 비행기는 또 런던에서 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는 심신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 친절한 검찰은 산소와 질소를 압수한 다음이라서 그런지 흔쾌히 시간을 허락했다. 그러니 다음에 나올 진술이야 ‘공기 반, 소리 반’일 뿐이라는 비아냥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에게서 최면술과 신통력을 물려받았다는 학력 불명의 교수님 앞에 나라의 한심함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저 자리 하나 얻기 위해 알랑거리고 굽신대느라 여념이 없던 자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 채 ‘나는 몰랐다’만 외치고 있으니 공주님은 여전히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고 있을 것이다.
 
소위 엘리트라며 잔뜩 목에 힘을 주고, 아랫사람들에게 갖은 문자 써가며 군림하던 이들이 보이는 모습은 이제 무엇이 될까? 또다시 나타나 해괴한 몸짓과 언어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댈 것이다. 어디 감히 호스트바 출신 불한당과 맛사지샵 주인이 나랏일에 관여할 수 있냐면서, 내가 그걸 알고도 그랬겠느냐면서, 내 보기에도 어쩐지 이상했다면서.
 
그러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속보경쟁에 여념이 없는 언론보다는, 머리 굴리기에 여념이 없는 자칭 엘리트들이다. 그들의 행동을 기억하지 않으면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은 한심할 것이며, 여전히 그들은 해괴한 짓을 변명하는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며 다시 일어나 돈과 권력을 찾을 것이다. 나쁜 것은 절대로 한 번에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정의가 쉽게 승리하는 게 역사라면, 정의라는 단어가 그토록 절실한 힘을 갖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광덕은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밤에 서류를 보실 때도 그 넓은 공간의 불을 다 끄고 스탠드 전등 하나만 켜놓고 본다.” 그는 지금도 숙소의 벽에 그려진 색색의 둥근 원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나무자비조화불’이라는 주문을 계속 외우고 있을지 모른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저 빛나는 6월 항쟁의 결과 우리가 얻은 대통령은 노태우였다. 깨어있는 시민은 기억하는 시민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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