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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한국 정치의 문제, 제도보다 사람
2016-10-24 13:55:01 2016-10-24 13:55:01
전남 강진 토굴에 칩거하고 있던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20일 여의도 정치권 복귀선언을 했다. 정계 은퇴 812일 만에 컴백을 결정한 그는 "당 대표를 하면서 얻은 모든 기득권과, 당적도 버리겠다"며 정치 새판짜기에 매진할 뜻을 밝혔다. 손 전 대표는 또한 "1987년 체제는 그 명운을 다했으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라를 끌고 갈 수 없다"며 개헌을 강조하는 한편, 정치·경제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주장했다.
 
손 전 대표가 강진의 다산초당 인근에 새 거처를 마련했을 때 한국 언론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온갖 상상력을 발휘했다. 혹자는 ‘손학규의 목민심서’를, 다른 이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을 벌인 데미안을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손 전 대표는 기자회견장에 자신이 저술한 ‘강진일기’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 책은 실망스럽게도 ‘목민일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손 전 대표는 강진일기에서 “지난 8월 안철수 의원을 만났고 안 의원이 손 대표에게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가개조와 민주주의 재건을 위한 고뇌의 시간보다 전권을 받기 위한 러브콜을 기다리느라 그 긴 세월을 토굴에서 보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손 전 대표가 지난 2년간 토굴에서 알을 깨기 위한 투쟁을 했다면 이번 귀환은 좀 다른 모습이어야 했다. 적어도 제6공화국 체제가 왜 수명을 다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대고 제7공화국 수립을 위한 개헌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방향과 비전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손 전 대표는 한국의 여느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허구적인 수사만을 나열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가. 서울서 5600마일 떨어진 파리에서도 프랑스 제5공화국 체제가 수명을 다했으니 제6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정치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사회당의 아르노 몽부르(Arnaud Montebourg) 전 경제부 장관. 약 2년 간 정계를 떠나있던 몽부르 전 장관은 지난 5월16일 프랑스를 위한 비전을 들고 컴백했다. 그는 “하나의 커다란 조직이 되어버린 제5공화국 시스템은 작동력이 떨어지고 지쳐있다”며 “정치 책임자들은 사회개혁을 원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정치 시스템과 정치 책임자들의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몽부르 전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프랑스인과 정치 계급 간의 무너진 신뢰 회복을 위해 심오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제6공화국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정부는 무너진 신뢰를 재건하기 위해 시민과 연합해야 한다”며 상원의원을 추첨제로 뽑을 것을 제안했다. 그는 추첨제에 대해 회의적인 정치인을 의식한 듯 자신의 지역구(사오네 르와르)에서 이미 실험해봤으며 운용이 잘 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몽부르 전 장관은 대통령의 권한 중 임명권을 제한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에 의하면 이 조처는 엘리제의 ‘궁정효과(l'effet de cour)’를 제한할 수 있다. 또한 국회에 대한 장관들의 개별적 책임을 묻고, 그러기 위해서는 장관들이 그들의 협력자를 직접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렇게 몽부르 전 장관은 프랑스 제5공화국 시스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처방전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제6공화국의 필요성을 논하고 있다. 반면 손 전 대표는 '87년 체제'가 왜 명운을 다했고, 어떤 식의 개헌을 해야 한국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대안 없이 제7공화국을 운운하는 모양새다. 한쪽은 준비된 정책으로 승부수를 걸고 다른 한쪽은 애매모호한 수사로 혼란만 가중시킨다.
 
한국정치가 발전이 없고 제자리를 맴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피땀 흘려 공부하고 손수 많은 경험을 하는 장인정신이 필요한데 우리 정치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마인드로 개헌을 하고 새판을 짠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으랴. 한국정치의 문제는 제도보다 사람임을 깨달아야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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