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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한국인이 노벨상을 못 받는 까닭
2016-10-10 14:22:17 2016-10-10 14:22:17
10월은 사색의 계절이다. 시 한편이 떠오른다. “목장은 독(毒)이 있지만 가을에는 아름답다/암소는 풀을 뜯으며 서서히 중독된다…조끼를 입고 하모니카를 불며 애들은 떠들썩 학교에서 돌아온다…광풍에 흔들리는 꽃 같이 깜박이는 네 눈썹의 색깔 같은 콜히쿰꽃을 아이들은 꺾어든다/목동은 조용히 노래 부르고 암소는 느릿느릿 긴 울음을 토하며 가을꽃 어설프게 핀 넓은 목장을 버리고 돌아간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프랑스 한 마을의 풍경을 옮긴 시를 읽고 있자면 평화롭고 천진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10월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지난 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위원회가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을 발표했다. 이 중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눈에 띈다.
 
후쿠오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오스미 교수는 교외지역에 살면서 유년을 보냈고, 친구들은 대부분 농가의 아이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놀았고 곤충을 좋아했다. 이러한 성장배경은 오스미 교수가 세포 내 노폐물을 세포 스스로 잡아먹는 오토파지(Autophagy·자가포식) 현상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원초적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오스미 교수는 노벨상 수상의 이유로 자기의 외골수(헤소마가리)정신을 꼽았다. 51세가 돼서야 정교수가 된 그는 쉽게 논문을 쓰고 연구비를 받기 위해 유행하는 주제에 눈길을 돌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대신 효모를 통해 세포의 기본원리를 풀 수 있다고 믿으며 40년 지기 친구로 삼았다. 술을 좋아하는 오스미 교수에게 효모는 향이 좋은 실험 재료로써 안성맞춤이었다.
 
프랑스도 지난해에 이어 연속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장-피에르 소바주 스트라스부르대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영국 출신의 프레이저 스토다트 미국 노스웨스턴대 명예교수, 베르나르트 페링하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교수와 함께 그는 분자기계의 설계·합성을 성공시켰다. 노벨위원회는 “오늘날 분자모터는 핸들과 바퀴를 전시했던 1830년대 전기모터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 작은 기계들은 물질의 분자를 각각의 부품에 사용해 조립할 수 있어 새로운 물질이나 센서, 에너지 저장시스템과 같은 물질 개발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944년 파리에서 태어난 소바주 교수는 1971년 스트라스부르 루이 파스퇴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초분자 화학 발명으로 1987년 노벨화학상을 받게 되는 장 마리 렌 교수였다. 1979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후기과정을 마치고 스트라스부르로 돌아온 소바주 교수는 사회과학연구소의 책임자가 된다. 이후 500여 편의 논문을 썼고 1997년부터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노벨위원회로부터 수상소식을 들은 소바주 교수는 “매우 놀랍고 큰 기쁨을 맛본다”면서도 “노벨상을 기대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소바주·오스미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바라보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두 사람은 연구를 위해 인생을 희생하기보다 즐기면서 창조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소바주 교수는 음악과 여행으로 상상력을 키웠고, 오스미 교수는 유행을 좇기보다 고집스럽게 효모를 사랑하며 효모 냄새가 좋아 술을 즐기기까지 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삶이 아닌, 자기만의 독창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의 오랜 연구가 결실을 맺게 된 비결이 여기에 있다.
 
‘프랑스, 특히 일본 학자들이 연속으로 노벨상을 받는데 한국은 뭐하느냐’는 질타가 나오지만 굳이 그럴 것까지 있겠는가. 다만 따져봐야 할 것은 왜 이들이 발휘한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헤소마가리 정신이 우리에게는 부족한가 하는 점이다. 자기 인생을 자기 눈보다 타인의 눈에 맞춰야 하는 한국의 동조문화가 기초연구의 장기투자에 인색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다양함 보다는 모노톤, 여유나 사색보다는 치열한 경쟁을 일삼는 구조에서는 엑센트릭한(별난) 인간이 살아남기 어렵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통해 입시준비를 하고, 시험문제 잘 푸는 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자연을 벗 삼아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동화 속 전설이 되어 간다. 창조는 여유와 사색, 자유 속에서 잉태된다. 우리 사회의 현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노벨상 수상은 계속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머물지 모른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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