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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모로우)마술이 선사한 마법같은 '인생 2막'…"여러분도 배워보실래요?"
늦깍이 마술사 안재희씨 행복한 노년 만들어…"노인 문화생활 더욱 다양해져야"
2016-10-17 14:50:34 2016-10-17 14:52:52
75세 늦깎이 마술사 안재희씨에게 마법은 사랑과 같다. 인생 끄트머리에 찾아온 마술은 지팡이가 비둘기로 변하듯 안 씨의 삶을 새롭게 비상시켰다. 가을 날씨가 완연했던 지난 12일, 뉴스토마토가 개최하는 세대공감 토크파티 <해피투모로우>에 출연한 안 씨가 무대에 올랐다. 무대 앞에는 안 씨의 공연을 보러온 시니어 관객들이 호기심 총총한 눈길로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안 씨의 손끝에서 ‘마법’이 시작됐다. 꽃이 튀어나오고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오색빛깔 색종이가 강당을 뒤덮었고, 어디에선가 우산이 솟구쳐 나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입에서 환호와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 무대에서 만큼은 안 씨는 어떤 연예인도 부럽지 않은 스타였다.
 
올해로 77세인 안 씨가 전문 마술사가 되기까지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순발력과 민첩함, 임기응변이 필요했지만 그는 부족한 게 많았다. 고령이라는 신체적 제약이 무엇보다 컸다. 악력이 떨어지다 보니 손가락 마찰을 이용해 불을 만들어 내는 마술은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직업마술사의 세계에서 익혀야 할 무대매너가 익숙지 않아 실수도 많았다고 한다. 
 
안 씨는 "한번은 무대에서 스카프 마술을 하다가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에 스카프가 날아간 적도 있었다. 야외공연 때 종종 일어나기는 하지만, 문제는 대처였다. 자연스럽게 연기를 이어가야 하는데, 당황해서 스카프를 찾겠다고 등을 보인적이 있는데 그건 매너가 아니였다. 아직도 익숙해 지지 않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늦은 나이에 미숙한 마술을 몸에 배게 하는 것은 결국 연습뿐이었다.
 
올 해로 마술에 입문한지 8년째라는 그는 40세 이상만 출전할 수 있는 ‘전주 국제매직 컨벤션 마술대회’에 출전해 유지 야스다 특별상을 수상했다. TV에 실버 마술사로 소개된 이후 초청문의가 쇄도하면서 다채로운 공연행사를 다니느라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스케줄을 소화 중이다. 
 
안 씨는 "중장년층은 무엇을 배워보려해도 젊은 세대들의 감각이나 스피드에 밀려 상실감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동질감을 갖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여가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이 흔하지 않은데 사람들이 제 공연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때 웃어줄 때. 이건 정말 좋은 거구나 생각이 든다. 더구나 마술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특기이기에 저는 공연을 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의미로 마술은 사회와의 단절감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50대 이후 은퇴자들에게 행복지수를 높여줄 수 있는 특별한 취미로 손색이 없다고 안 씨는 말한다.  
 
마술이 안겨준 노후생활의 행복
‘마술’은 ‘마법’처럼 다가왔다. 지금 생각하면 ‘운명’이었다. 늘어지는 시간을 때우려 지역문화회관에 기타강좌를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해당 강좌가 인원미달로 폐강됐다고 한다. 수강료는 ‘3만원’. 환불받기 애매한 금액이었다. 들을만한 강좌를 찾다 눈에 들어 온 것이 ‘마술강좌’였다.
 
안 씨는 "마술에 ‘마’자도 몰랐지만, 동경심은 있었다. 집 앞에 마술학원이 있었는데. 그냥 막연했지만 수강료도 3만원으로 비싸지 않았고, 무엇보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마술세계에 입문 했는데 딱 내 적성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평생의 은인을 만났다. 인천에서 ‘씽크매직’이라는 마술학원을 운영 하는 임종기 선생님이었다. 열정과 의욕으로 가득했던 안 씨의 끈질긴 질문공세에도 그는 싫은 기색 없이 그를 지도했다. 임종기 파타야 마술단장은 “안재희 할아버지는 굉장한 ‘노력파’다. 재능도 있었지만 하나를 알려드리면 밤을 새워서라도 꼭 마스터를 했고 그 모습에 저 역시 자극을 받았다. 그런 긍정적 상호작용이 7년 동안의 인연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고 회상했다. 
 
안 씨는 자신처럼 은퇴후 제2의 삶을 준비하거나 봉사등을 준비하시는 분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저는 마술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마술은 즐거움 그 자체니까. 마술로 인해서 봉사도 할 수 있고 남과는 다른 세계를 접하면 그것이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특히 제 또래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 하는데 마술을 하면서 사람이 즐거워 보인다고 한다. 저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분들께 마술을 하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마술은 어느새 번듯한 직업이 되어 노후생활에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수입도 생겼다고 한다. 
그는 "마술 공연 뿐만 아니라 강의도 다니고 있다.  2군데 초등학교에서 진행하는데, 2년쯤 하니까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방과후 학교에서 마술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나처럼 나이들고 책임감이 있는 분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방과후 마술로 일정 수입도 생기고 남은 시간에는 봉사활동도 다니는데 가끔은 공연 수입도 생겨서, 용돈치고는 상당한 수입이 발생한다"라고 전했다. 
 
<해피투모로우>에 참석한 한 관객은 "안재희 마술사님을 보면 제2의 삶이란 이런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나이들면서도 즐거움을 만끽하고 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면 무엇보다 즐겁고 안재희 마술사를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하루였다"고 말했다.  
 
건전한 취미생활은 노년기에 활력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사회나 문화에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씨처럼 노년기에는 회사를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의학의 발달로 인해 더 오랜 삶을 살게 돼 ‘은퇴 후 삶’이 이미 하나의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시간을 노인들은 어떻게 보낼까. 흔히 중장년층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면 문화를 즐긴다기보다는 소소한 얘기들, 고스톱, 장기 등의 놀이에 한정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92.4%가 매일 하는 여가 활동으로 TV 시청이나 라디오 청취를 꼽았으며 친구와 대화(63.8%) 등 소극적이거나 수동적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독서나 신문읽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59.2%에 불과했으며 뜨개질이나 연극, 영화 관람, 강연회 등 교양 강좌 수강 역시 전혀 하지 않는다는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문화체육 활동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근 연세대학교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서울시 거주하는 50~64세 예비노인층 500명과 65~79세 노인층 500명을 대상으로 서울시노인문화욕구분석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노후에 무엇을 하면서 보내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50~64세의 경우 ‘취미 및 문화생활’이 31.6%로 가장 높았으며 그 뒤를 이어 운동 등 건강을 위한 활동 24.8%, 자원봉사와 사회공헌 16.8% 등이었다. 65~79세는 운동 등 건강을 위한 활동 38.4%, 취미 및 문화생활 28.4%, 취직 10% 이었다. 물론 구청이나 시에서 다양한 문화센터나 강좌 등을 열고는 있지만 여전히 노인의 문화는 아직 막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인들이 즐길만한 문화의 부족은 우울증 등 각종 질환의 배경이 될 수 있다. 노인 문화는 이러한 노인들을집에서 사회로 끌어내 외부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하다.
 
김이연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소극적이고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줄어 내적생활에 집착하며 자기중심적, 자기애적으로 퇴행하게 된다”며 “경제활동의 감퇴와 과거 대가족제도의 붕괴로 소외감이 더욱 심화된 노인들은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적절히 풀지 못한 채 가슴에 품고 자신의 내적 생활에만 집착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외부세상과의 단절 및 사회적 장벽은 감정의 흐름을 적절히 소통시키지 못하고 억압을 주면서 치매나 우울증 같은 정신장애가 증가하는 원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고 소외감까지 느낀다면 사회와 주변 사람을 탓하고 분노가 쌓일 가능성도 있어 노인 범죄자를 양산하는 배경으로 용할 수도 있다. 노인복지 관계자들은 "노인 문화나 생활체육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책개발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뉴스토마토가 개최한 세대공감파티 <해피투모로우>에 출연한 안재희 마술사(왼쪽)와 김이연 가정의학과 전문의(오른쪽). 사진/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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