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미(斷尾)
연재 /기획
2016-08-11 09:07:55 2016-08-11 09:07:55
얼마 전, 집에 친척들이 놀러 왔다. 바닷가 가까이 산다는 죄로 매해 우리 집은 이씨 집안의 피서지가 된다. 친척 동생들은 아침나절부터 에너지가 쌩쌩했다. 저들끼리 무슨 게임을 하는 건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아이고, 머리야. 밑 집에서 쫓아 올라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얼른 서재로 대피했다. 혼자 이것저것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벌컥 문이 열리더니 애들이 들이닥쳤다. 애써 못 본 척하고 있는 와중에 무언가가 허벅지를 콕콕 찔렀다. 고사리 같은 손에 야무지게도 쥐어진 책. ‘이거 읽어줘.’
 
제일 맏형인 열 살짜리가 갖고 온 책은 ‘알쏭달쏭 과학상식’이었다. ‘닭에는 왜 볏이 있을까’, ‘신기루는 어떻게 생길까’. 초등학생 권장도서 같았는데, 이게 읽다 보니까 생각보다 꽤 흥미로웠다. 그런데, 읽어 달라 할 때는 언제고, 애들은 흥미가 떨어졌는지 저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핸드폰을 쥐여주고 거실로 내보냈다. 그리고는 혼자 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도마뱀은 2천5백 종류 이상 되지만, 독을 가진 도마뱀은 두 종류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다. (…) 도마뱀은 스스로 위험을 느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꼬리를 잘라 놓고라도 도망을 가는 것이다. 보통 도마뱀의 꼬리 이음매는 잘 잘리게 되어있으며, 잘리면 몇 번이고 다시 또 나온다.’
 
책에서 말하길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 현상은 도마뱀이라는 파충류에게서만 볼 수 있는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한다. 나는 동물이라면 포유류 빼고 다 싫어하는지라 도마뱀을 실제로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어쩐지, 이 꼬리 자르기라는 게 낯설지가 않았다. 꼬리를 자르고 헐레벌떡 도망가는 저 모습. 어디서 많이 봤는데 말이지.
 
스무 살 무렵, 잠깐 동네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어쩌다 주문과 다른 피자가 나올 때면 그 누구도 자기 잘못을 선뜻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직원들끼리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고, 나중엔 주문한 손님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좀 우스운 광경이었다. 공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친구는 막내에게 잘못을 다 뒤집어씌우던 선배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도 이러한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문제 해결은 뒷전이요, 일이 터지자마자 도망치기 바쁜 우리네 높으신 분들 소식은 뉴스를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공기업, 사기업 할 것 없이 말단 사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세상의 비난에서 벗어나려는 회사들이 부지기수다. 
 
‘꼬리야 자르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는 무책임한 도마뱀들. 
 
그렇게 사람들은 책임지는 게 무서워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도마뱀이 되었다. 꼬리 없는 동물의 흔적기관인 꼬리뼈가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꼬리를 만들어냈다. 꼬리가 잘려나간대도 걱정할 것은 없었다. 꼬리는 몇 번이고 다시 나오니까. 
 
책에서는 독을 가진 도마뱀은 단 두 종류밖에 없기 때문에 무서워할 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버림받을지 모르는 꼬리들에게 도마뱀의 몸통은 독이 있든 없든 그저 무서운 존재일 뿐이다. 몸통은 갑, 꼬리는 을이니까. 그렇게 꼬리는 계속 잘려나가고 몸통은 점점 비대해진다. 잘려나간 꼬리들은 아직 살아있는 신경 덕에 팔딱거리며 마지막 발악을 해보지만 안타깝게도 금세 생명력을 잃고 만다. 길바닥엔 꼬리들이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다. 가여운 꼬리들. 
 
단미(斷尾).
잘려나간 꼬리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 찬 이천십육 년.
아, 지금은 파충류 시대. 여기는 도마뱀 세상.
 
사진/바람아시아
 
 
 
이소록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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