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우 하정우가 지닌, 긍정의 철학
입력 : 2016-08-08 15:01:15 수정 : 2016-08-08 15:01:15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하정우의 화법은 다소 독특하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먼저 "그쵸"를 내뱉는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부분은 적당히 짚어주면서, 상대의 말을 확장하며 발전시킨다. 중간 중간 예상 밖의 유머가 녹아있으며, 대화의 마무리는 대체로 희망적이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엿보이면서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묻어난다. 조금만 대화를 나눠도 하정우가 얼마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신작 '터널' 속 인물 이정수는 인간 하정우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사고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인물이다. 무너진 터널에 갇혀 수십일을 오도가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는데,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 극도의 공포감을 긍정적인 사고가 이겨낸다. "하정우가 아니었다면 누가 정수를 이렇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렇게 하정우는 그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인물을 또 한 번 만들어냈다.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고 홀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와중에서도 긍정의 매력을 선보인 하정우를 지난 4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로 출발해 '터널'까지 오는 동안 국내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오른 하정우가 가진 긍정의 철학을 들어봤다.
 
배우 하정우. 사진/뉴시스
 
입체적인 배우 하정우의 연기 철학
 
그간 하정우가 연기한 캐릭터는 대부분 뚜렷한 양면성을 가진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유태정은 멋지고 옳은 말을 하는 군대 선임으로 나오지만 친구의 뒤통수를 치는 악랄한 면을 갖고 있고, '추격자'의 지영민은 극악한 사이코패스인데도 천진난만한 면이 있었다. '멋진 하루'의 조병운은 처음에는 빚지고 도망간 나쁜 놈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한 없이 넓은 마음을 가진 남자로 느껴지며, 최근 '아가씨'의 백작은 돈만 밝히는 사기꾼인데도, 마지막에는 연민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제가 사람의 숨겨진 이면에 흥미를 느껴요. '추격자'에서 지영민은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나와요. 그래야 더 공포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해요. '아가씨'의 백작도 사기꾼인데, 불쌍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런 다양한 결들이 존재해야 현실성이 있다고 느낄 거 같아요. 전 어떤 사람을 보면 '집에 가서 뭐할까?'라는 생각을 해요. 직업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이면에 분명히 자기만의 무언가가 있을 것 같거든요. 캐릭터를 만들 때도 그런 것을 많이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한 인간에 여러 가지 감정이 있는 것처럼 하정우도 연기를 할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번 '터널'에서도 한 없이 긍정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이정수지만 순간 이기심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하정우의 철저한 의도가 계산된 대목이다.
 
"극 중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물을 나눠 먹어야하잖아요. 그 때 물을 얼마나 줄지 몇 초간의 흔들림이 있어요. 그 순간만큼은 이기심과 이타심이 충돌해요. 그게 어쩌면 가장 인간적일 수 있을 거 같아요. 거기서 한 없이 물을 퍼주는 건 오히려 상식 밖이죠."
 
'아가씨'에서는 박찬욱 감독 영화 특유의 연극적인 면을 연기로 선보였다. 아주 작은 것까지 완벽하게 구현해내야하는 현장이 '아가씨'였다고 한다. 이번 '터널'에는 하정우의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내길 바라는 현장이었다고 한다. 하정우는 철저한 계산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풀어냈다고 한다.
 
"처음에 갇히고 무섭고 황당하다가, 공포를 느끼죠. 그리고 김대경(오달수 분)에게 안정을 받고 충분히 살아나갈 수 있다고 느끼면서 긍정을 찾죠. 도리어 세현(배두나 분)을 안정시키죠. 체력이 달려서라도 하루종일 무서워하긴 힘들 거 같아요. 그러다 몇 가지 상황을 거듭하면서 릴렉스를 찾아요. 코미디도 나오죠. 그러다가 다시 갈등이 심화되죠. 그러다 다시 긍정을 찾고 재차 갈등이 폭발하고 그래요. 공포와 유머, 긴장과 완화가 반복되다 클라이막스로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안에서 마음껏 애드리브와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어요."
 
굉장히 치열한 계산을 했던 '아가씨'와 자유롭게 감정을 뿜어냈던 '터널'의 극과극의 현장 중 하정우는 어떤 현장이 더 몸에 맞는 공간일지 궁금했다. 당연히 자유로운 공간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이 나왔다.
 
"편한 건 당연히 '터널' 쪽이겠죠. 즉흥연기를 하는 쪽이 마음은 편할 수 있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에요. 특히 후자의 경우 시나리오가 좋지 않으면 소위 '뽀록'이 나버린다고 해야 될까요. 자연스럽게 지루해져요. 그나마 '터널'은 새로운 사건이 계속 생겨나고 외부의 변화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는 지점이 좋았기 때문에 시너지가 난 거라 생각해요. 그런 완벽함이 없으면 즉흥 연기는 분명 위험성이 있어요. 그럴 바엔 감독의 디렉션이 명확한 영화가 나을 수 있어요."
 
배우 하정우. 사진/뉴시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란"
 
하정우는 혼자 있을 때 더욱 빛나는 배우다. 인물이 적으면 적을수록 하정우의 활약이 온전히 전달된다. 반면 '군도:민란의 시대', '암살', '아가씨'와 같이 초호화캐스팅이 되는 경우 주로 중심을 잡거나 작품에 현실감을 입히는 역할을 한다. 하정우의 연기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지만, 하정우의 빛이 다소 반감된다.
 
"연기를 하다보면 제가 이득을 볼 때도 있고, 남을 도와줄 때도 있죠. 남에게 도움을 줬다면 언젠가는 제가 그 도움을 받지 않을까요. 연기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닌데, 제 캐릭터가 빛나고 안 빛나고는 크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정우는 유독 카메라 앞에 혼자 있는 데 익숙한 배우다. 살인사건과 얽매인 뒤 혼자 도망치기만 했던 '황해', 방송국 앵커로 협박을 받는 모습이 생중계됐던 '더 테러 라이브'와 이번 '터널'까지 그는 혼자서 카메라 앞에 섰다.
 
"혼자 연기하는 건 어쩌면 더 쉬울 수 있어요. 제 마음대로 변주가 가능하거든요. 제작진이 준비한 돌덩이가 무너지는 것에 반응하면서 제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었어요.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왼쪽으로 돌렸다가, 얘기하던 중에 갑자기 나는 소리에 잠시 집중을 한다거나, 이번에는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죠. 대신 저 혼자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분명히 있어요."
 
그는 남과 호흡을 맞추는 연기 역시 일장일단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좋은 배우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밝혔다.
 
"사실 연기는 액션보다 리액션이에요. 앞에 있는 배우가 어떤 연기를 하냐에 따라 제가 반응하는게 연기가 되거든요. 정말 좋은 배우는 상대가 다양한 리액션을 낼 수 있도록 같은 걸 다르게 표현해주는 배우에요. 방금은 목소리를 좀 작게 냈다가, 이번에는 크게 내고, 비아냥을 했다가, 또 평이하게, 그렇게 다양하게 하는 거죠. 그럼 매번 다른 리액션이 나와요. 그게 상대를 배려하는 좋은 배우죠. 같이 연기를 하다보면 그 호흡이 정말 잘 맞을 때가 있어요. 그럼 복 받은 거죠."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나쁜 배우는 어떤 배우일까. 
 
"예를 들면 제가 '밥 먹었어?'라고 물어봐요. 별 거 아닌 장면이라면 '밥 먹었어'라고 바로 받아치는 게 상대 배우로서 좋아요. 그런데 억지로 시간을 끌면서 '밥 먹었어'라고 답해요. 편집점이 애매해서 분량을 더 많이 가져가게 돼요. 욕심을 부린 거죠. 일종의 기술인데 그럴 땐 저도 '같이 기술 들어갈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이걸 배우는 물론이고 편집할 때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다 알아요. 이런 배우가 나쁜 배우죠. 일희일비 하는 거고요. 이미 그런 배우들은 충무로에 소문이 다 돌아 있어요. 누가 좋고 나쁜지는 캐스팅 단계에서 이미 다 알게 돼요. 그렇게 연기하는 배우는 사실 다신 쓰이지 못해요. 배우의 연기력은 어쩌면 다 거기서 거기예요. 진짜 중요한 건 인성이에요."
 
배우 하정우. 사진/뉴시스
 
'웃긴 남자' 하정우가 가진 유머에 관한 철학
 
연기를 잘하는 하정우는 유머감각도 톱클래스로 꼽힌다. 그는 독특한 화법 내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갖고 있는 유머를 구사한다. 장황한 이야기 속에서 상품명과 같은 예상 밖 디테일을 꺼내들고, 평소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지 않는 용어를 사용한다. 때로는 억지스럽게 논리와 의미를 새기는데, 놀랍게도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디테일과 조금은 색다른 용어, 놀라운 설득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다.
 
"저는 찰리 채플린을 좋아해요. 제가 배우를 꿈꾸고 길을 가는데 중요한 시작점이 그에요. 채플린을 연구한 영화가 '채플린'인데 그 주인공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다주). 로다주가 방랑자 캐릭터를 만들고 메이크업을 혼자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이 뭔가 외롭고 슬프죠. 그가 배우의 삶으로 봤을 때는 최고지만 어렸을 때 불우한 가정환경을 겪었고, 억울한 삶을 살았고, 수 많은 이혼을 했어요.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삶이었죠. 그래서 그는 늘 영화에서 코미디를 한 거 같아요. 코미디의 농도가 짙을수록 자신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를 깊게 풀어나간 거 같아요. 사람들이 슬럼프를 겪기도 하고 남들이 내 마음을 다 알아주는 것도 아니죠. 그런 스트레스를 승화하는 것 중 최고의 것은 코미디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 일상이 채플린처럼 힘들다는 얘기는 아니에요.(하하)"
 
유머에 대한 남다른 철학은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멋진 하루'의 조병운, '러브픽션'의 주월,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처럼 일상의 인물은 물론 '암살'의 하와이 피스톨이나 '아가씨'의 백작처럼 연극적인 인물에서도 그만의 유머가 묻어난다. 그가 연출한 '롤러코스터''허삼관' 역시 마찬가지다.
 
"저는 아이러니를 좋아해요. 제 유머는 사실 아이러니가 기반이에요. 이 아이러니를 예로 들면 길을 가다 넘어져서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는 한 여자가 있어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에게서 보면 정말 최악의 날이겠죠. 근데 그걸 멀리서 지켜보면 코미디가 돼요. 모든 게 다 양면성이 있는 거 같아요. 아이러니는 참 흥미로워요."
 
하정우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아이러니한 유머를 기록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록이 작품 활동을 할 때 녹아난다고 했다.
 
"웃긴 일이 있으면 저의 카카오톡에다 기록해요. 이번에 '심부름 시킬 거 있으면 불러줘요'라는 대사가 있어요. 이게 예전에 여행 갔을 때 저보다 나이가 많은 가이드가 계속 했던 말이에요. '하정우씨, 심부름 시킬 거 있으면 불러주세요'라고 계속 말했어요. 얼마나 웃겨요.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낮춘 말이잖아요. 그게 이번 작품에 휙 하고 들어간 거죠. '꿈 꿨어요'는 예전 최민수 선배가 '어린 놈이 꿈을 꿨구나'에서 변주가 된 거예요. 연출을 할 때도 이런 경우가 많아요."
 
유머와 연기, 배우 등의 철학이 뚜렷하기 때문일까. 하정우는 국내 최고의 배우로 손꼽힌다. 2013'더 테러 라이브'를 시작으로 4년 동안 '군도:민란의 시대', '암살', '터널'까지 7~8월 텐트폴 영화에 참여해왔다. 내년에도 '신과 함께'로 이 기간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7~8월 영화가 각 배급사의 에이스 영화를 내놓는 시기로 봤을 때 하정우는 명실상부한 에이스 배우인 셈이다.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는 그다. 기쁨과 스트레스가 공존하는 시기라고도 했다. 배우는 남들에게 쓰이는 직업이라지만, 그만한 능력이 되기 때문에 계속 에이스로 여겨지는 것일터. 이처럼 하정우가 에이스 배우로 발돋움 한 데는 뚜렷한 색깔이 묻어나는 그만의 철학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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