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제상황이 갈수록 험난해진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가결(브렉시트)은 유럽을 필두로 세계경제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조선·해운산업의 구조조정이 코앞의 난제로 대두돼 있다. 세계경제 여건, 특히 금융시장의 혼란이 짙어지면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관망하면서 적절히 대응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 국가 기간산업이나 마찬가지인 조선·해운산업의 회생 방안은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는 과제다. 서강대 전준수 석좌교수(전 부총장)으로부터 ‘해양의 뉴딜정책으로 해운과 조선을 살리는 방안’을 들어 본다. [편집자]
파산의 갈림길에서 헤매던 현대상선이 내년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8043억원의 회사채 재무조정에 성공했다. 지난달 31일 6300억원의 채무만기를 연장했던 현대상선은 6월1일 두차례 채권자 집회를 열고 나머지 1743억원의 채무를 재조정했다. 재조정 내용은 회사채의 50% 이상을 주식으로 바꾸어 출자 전환하고, 잔여 채무는 2년 거치 3년 분할로 상환하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해외 선주와의 용선료 협상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 채권단이 7000억원 출자전환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세가지 가운데 두가지 조건을 충족한 셈이다.
또 현대상선이 세계 최대 규모의 해운동맹인 ‘투엠(2M)’에 가입할 전망이다. 가입이 최종 성사되면 채권단 자율협약 진행을 위한 조건이 모두 충족된다. 현대상선은 23일 “투엠이 최근 동맹 합류에 대한 협력 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해 왔다”며 “이에 투엠과 해운동맹 가입을 위한 논의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투엠은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와 세계 2위 MSC가 결성한 해운동맹이다. 이렇게 되면 채권단의 출자 조건인 ‘얼라이언스(Alliance) 참여’도 충족하는 셈이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중요한 사항은 언론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얼라이언스는 동맹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맹은 해상운송 카르텔로 미국 정부의 불법화로 와해되었으며, 현재 얼라이언스로 불리는 것은 해운선사들의 연합체이다. 과거 동맹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느슨한 결성체로 선박들을 공동 배선하여 운항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항공의 얼라이언스처럼 서비스하지 않은 지역은 같은 얼라이언스의 다른 항공사 좌석을 상호 리스해 서비스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중요 무역노선에 배선할 수 있는 충분한 선대와 마케팅 네트워크만 갖추고 있으면 독자적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가지고 화주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동맹이 막강하던 시절에 머스크(현재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가 동맹에서 나와 독자적인 서비스를 통해 막강한 경쟁력을 구축해 결국 동맹의 와해까지고 초래한 적이 있다.
요즈음 언론이 마치 얼라이언스에 참여하지 못하면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정보다. 우리 국적 선대가 경쟁력 있는 선대만 갖추게 된다면 독자적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로 마음대로 무역노선을 선정해 컨테이너 정기선 서비스 망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의 최우선 대상으로 조선업과 해운업을 선정했다. 현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에 들어갔고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가 최우선적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해운업이나 조선업이 2~3년 내에는 시황이 개선될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저유가 여파로 해양 개발이 주춤하고 있는 현실에서 해운시황의 개선 없이는 조선업의 영업이 개선될 전망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조선업과 해운은 상생의 협조 노력 없이 각기 성장 발전해왔다.
시중에 알려진 ‘한진해운 총부채 5조6000억원’에 ‘현대상선 4조8000억원’ 하는 식의 얘기는 해운에 대한 시중의 공포감만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것이다. 선박을 구매하고 건조할 때에는 타인의 부채를 80% 이상 쓰는 것이 관행이다. 현재 양대 해운사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단기 부채다. 소위 정부의 긴급전환사채로 발행된 회사채 금리가 10%가 넘는 고금리여서 정책금융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해운기업에 큰 부담이 되어왔다.
우선 현대상선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기 유동성 문제만 해결되어도 정상화할 수 있다. 문제는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다. 우리 정기선 해운사들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몇척을 확보하고 현재 선사들의 공동 운항 연합체인 얼라이언스에 겨우 가입해 현상 유지에만 급급해서는 우리 정기선 해운의 앞날은 없다. 결국 1~2년 후에는 또 같은 상황에 처해 정부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정기선 해운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2011년 덴마크의 머스크 라인이 1만8000개 컨테이너를 적재할 수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우리 수출입은행의 금융 지원으로 대우조선해양에서 일시에 20척을 건조해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우리 조선소에 고속·고효율이면서 보다 친환경적이며 1만3000개를 적재할 수 있는 컨테이너선 20척을 일시에 건조해 우리 선사만으로 가칭 ‘Korea National Line’을 만들어 얼라이언스에 가입을 구걸할 필요 없이 독자적인 동서(아시아~유럽)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현재의 저렴한 선박연료 가격과 낮은 화물적재율을 감안할 때 1만3000TEU 선박이나 1만8000TEU 선박이나 운항 원가의 차이는 거의 없으며 현재 조선업 사정을 생각할 때 오히려 건조가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우리가 기항 항만을 조정·축소해 고속으로 운항하면 동서 항로에서 운항기간을 20% 감축할 수 있다. 아울러 현재 머스크선사가 84% 정도의 운항 스케줄 정확도를 달성하고 있는데 우리는 피나는 노력으로 90% 가까운 운항 스케줄 정확도를 달성해 화주들에게 이러한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고가격 고운임군의 화물을 수하할 수 있다. 기존의 컨테이너 선박들로는 선형별로 적합한 남미항로, 미국 동해안항로, 아프리카항로 등을 개설해 배선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일감이 없어 고전하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에게 일시에 20척의 1만3000TEU 선박의 건조 주문은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며 현재 대형선 건조에 고민하고 있는 세계의 많은 선주들에게 새로운 주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중물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선주들은 때로는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경우가 많아 고속·고효율, 환경 친화적인 컨테이너 선박에 대한 수요가 추가로 일어날 확률이 많은 것이다.
국내 중소형 조선소를 위해서는, 현재 내항 해운에는 20년 이상의 노후선이 64%에 달하고 있다. 현재 여객선 중 전략 항로에만 배정돼 있는 신조선 자금을 국내 여객선, 화물선 전체로 대상을 확대해 15년 이상 되는 노후선은 정부의 자금 지원으로 대대적으로 대체 건조함으로써 보다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 효율성을 갖춘 신조선으로 대체해 일감을 창출해 줘야 한다. 현재 내항 해운의 신조선 건조의 금융은 수협금융에만 국한되어 있어 업무의 전문성이나 금융한도 면에서 수출입은행이나 다른 시중 상업은행에 비해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대대적인 신조선 발주를 위해서도 정부의 정책이 뒷받침 된 수출입은행 및 일반 시중은행들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줘야 한다.
이러한 대대적인 신조 선박 주문이 만들어질 때 대형 조선소뿐만 아니라 중소형 조선소에도 활기를 불러일으켜 조선업의 활황이 관련 기업뿐만 아니라 전 산업이 활력을 되찾는 해양에서의 뉴딜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고속·고효율·친환경 컨테이너 선박을 기반으로 한 독자 서비스를 개척하는 쪽으로 정기선 해운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사진은 지난 6월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상선 본사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전준수 서강대 석좌교수 /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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