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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 같이 멍 때립시다
오늘 부는 바람은 / 시선
2016-06-13 18:22:52 2016-06-13 18:22:52
가수 크러쉬(24, 본명 신효섭)가 1등을 했다. 음악 프로그램이나 뮤직 어워드 수상 소식을 전하는 게 아니다. 그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이촌 한강공원 청보리밭 일대에서 열린 '2016 멍 때리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가수 크러쉬의 우승으로 화제가 된 ‘멍 때리기 대회’는 사실 올해 처음 열린 대회는 아니다. ‘멍 때리기 대회’는 2014년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서 처음 열린 후 이듬해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2016년 5월 7일에는 수원 청룡문 앞 잔디광장에서 각각 2, 3회를 맞이했다.  ‘멍 때리기 대회’는 지친 현대인들의 뇌를 쉬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동안 졸음을 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기 때문에 휴대전화, 시간 확인, 잡담 나누기, 노래나 춤추기, 독서와 딴짓 등은 전부 규칙 위반에 해당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모양의 우승 트로피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장 정적인’ 참가자에게 돌아간다. 심박측정기로 심박수를 측정하고, 시민들의 ‘스티커’ 투표 참여까지 고려하여 가장 멍을 잘 때린 사람을 가린다. 
 
사진/바람아시아
 
어떻게 보면 우습고 장난스러운 이 대회는 사실 한국인의 ‘휴식 부족’ 문제와 맞닿아 있다. 바쁜 일상과 과로에 지쳐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뇌를 쉬게 하는 멍 때림의 시간은 사치다. 우리나라는 2,285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은 1위를 차지하는 반면, OECD 더 나은 삶 지수(OECD better life index)의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부문에서는 하위 3위에 위치한다. 이 지수는 근로자가 여가와 개인적 돌봄에 사용하는 시간과 주당 50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무자의 비율의 두 가지 중심 지표를 가지고 산출을 하므로 한국인이 일과 삶의 균형에서 일 쪽에 치우친 삶을 살며 ‘휴식’을 놓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대표 강석린)는 직장인 630명에게 '직장인 우울증'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명 중 8명이 ‘우울증 경험이나 현재 우울함’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휴가도 반납한 채 일만 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진/바람아시아
사진/바람아시아
 
 
이번 우승자 크러쉬 역시 “요즘 앨범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면서 뇌에 휴식을 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직장인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휴식이 부족하다. 실제로 제1회 ‘멍 때리기 대회’ 우승자 김지명 (11)양이 하루에 2~3개씩 총 6개의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 후에 방송 프로그램에서 밝혀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수업 시간에 멍 때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서 대회에 참가하라고 권유해보았다고 한다. 
 
제대로 휴식할 시간을 잃은 현대인들은 제대로 쉬는 법 또한 잊었다. 대부분이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심지어는 자기 전 침대에서까지도 핸드폰을 붙잡고 뇌를 쉬게 놔두지 않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2일 한국의 '멍 때리기 대회'(Space out Contest)를 조명하며 “세계에서 통신망이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멍 때리기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 전체 인구 중 80%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이 중 15% 가량이 중독 증상을 보인다"며 "스마트폰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4시간에 달한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에 대한 집착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고 전했다. 
 
멍 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두뇌를 깨우고 명쾌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기계가 아닌 사람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우리 삶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 신동원 <멍 때려라!> 중에서- 
 
칸트, 베토벤, 뉴턴은 산책을 통해 머리를 비웠고, 투자의 신 워런 버핏은 멍하니 천정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멍 때리기’는 정신 이완운동으로서 정신 건강에 실질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피로 과잉시대에는 핸드폰을 놓고 몸도, 정신도 제대로 쉬는 것도 중요하다. 비록 상금도 없고 대회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멍 때리기 대회’가 지겨운 일종의 경쟁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갈수록 많은 사람이 이 대회에 참여하는 이유는 제대로 쉬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에 있지 않을까. 오늘 나는 나의 머리를 얼마나 쉬게 해주었는가. 자, 이 기사를 읽은 당신 잠깐 아무런 생각 말고 다 같이 멍 때립시다.
 
 
 
김아현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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