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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반기문 사무총장과 라가르드 IMF 총재
2016-05-31 06:00:00 2016-05-31 06:00:00
계몽주의 시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등장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전문가에게 정치를 맡기자는 전문성의 중시였다. 그럼 정치 전문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들이 정계에 입문해 기초를 다지고 다양한 훈련을 거친 후, 실제 정치 무대로 나와 실전 경험을 쌓음으로써 가능하다. 필드를 잘 알고 운용할 수 있는 능력(compétence, 꽁뻬땅스)을 배양한 사람만이 한 나라의 정치를 순항시킬 훌륭한 조타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의 유권자들은 정치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요즘 한국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반기문 대권 도전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 동안 소문처럼 피어오르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망론'이 이번 방한을 통해 기정사실화 되었다. 곧바로 한국 언론은 반 총장의 대권 시나리오로 도배를 하고 여론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며 내심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반 총장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한 몫을 하는' 인물임은 분명하지만 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 전문가가 아니고, 또한 국내 정치에서 10년이나 이탈한 채 소속 정당도 없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스타를 모셔다 정치를 맡기려는 문화는 위험하고 또 무모하다. 정치의 전문성을 무시한 채 스타 정치를 만들려는 한국 언론과 친박은 우리 정치를 어디로 끌고 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나라도 우리와 같은 사정인가? 프랑스에도 한국처럼 국제기구의 최고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여성 총재 크리스틴느 라가르드가 그 주인공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본래 실업가이자 변호사였으나 시라크 전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대외무역 장관을 지냈고, 사르코지 정부에서는 농수산부 장관을 거쳐 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지난 2011년 4월 IMF 총재로 선출되어 5년 째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녀는 내년 4월 벌어질 프랑스 대선의 유력한 우파 후보들 중 여론의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여론의 큰 지지를 등에 업은 라가르드 총재도 반 총장처럼 대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 2015년 2월23일 허핑턴포스트의 아리아나 허핑턴 편집장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로 다시 돌아가 대선에 나가겠냐”는 질문에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IMF 총재인 그녀에게 정치에의 '외도'는 금지된 항목이고 2017년 공화당의 대선 주자인 프랑수와 피옹, 니콜라 사르코지 등과 잠재적 경쟁 관계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화당의 대표인 사르코지 뒤에서 좋은 문하생으로 남는 쪽을 택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인 <렉스프레스>는 라가르드 총재를 두고 “최상의 참모이고,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국제적으로 출세한 인물이라도 국내 정치로 돌아오는 것을 외도로 생각하고, 또한 기라성 같은 전문 정치인들과 경쟁 관계에 휘말릴까봐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별다른 검증도 없이 대권 후보로 덥석 모셔오려 하니 정말 용감무쌍하다. 물론 프랑스와 달리 한국의 유력 대선 후보 중에는 정치적 경험이 부족하고, 특히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정치는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국민의 인기만 있다고 덤빌 수 있는 무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직업 정치인들은 자기의 영역을 스타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유능한 전문가로 변신하기 위해 보다 치열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유권자들과 언론도 우리 정치인들을 질타하거나 식상해만 하지 말고, 애정을 가지고 응원도 하고 지켜봐주는 인내심을 발휘해 보라. 관심을 받음으로써 결과가 좋아지는 '피그말리온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바람직한 정치 문화가 조성될 때 한국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역풍을 피하고 순항할 수 있을 것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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