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이재희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 문제를 지적한 가운데 금융당국이 금융사 지배구조 제도 손질에 나섭니다. 당국은 장기 집권의 근원이 이사회가 회장 친정 체제로 구축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간 경영진 견제 역할을 담당하는 사외이사 구성 등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강화했다면, 앞으로는 주주추천권 등을 활용해 독립적 인사를 앉히겠다는 의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금감원, 지배구조 개선 TF 가동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은행 담당 부원장보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선 TF를 출범시키고 내년 1월까지 제도 개선 과제를 도출키로 했습니다. 금융사 지배구조법을 개정할지, 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손질할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도 개선을 위해 입법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금융위원회와 국회를 통해 협조를 구할 것"이라며 "대통령을 비롯해 금감원장이 문제의식을 가진 부분에 대해 업권 공동으로 논의를 거쳐 새해 업무보고 전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열린 업무보고 자리에서 금융기관 지배구조와 관련해 "관치금융 논란 때문에 정부가 직접 관여하지 않으면서 손을 떼왔지만, 그 결과 일부 '이너서클'이 형성돼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집단이 도덕성과 역량을 갖추고 금융그룹을 잘 운영한다면 문제가 될 게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회장을 했다가 은행장을 맡고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10년, 20년씩 자리를 차지하는 구조라는 얘기"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이찬진 금감원장도 "저 역시 이를 '참호' 구조라고 표현해왔다"며 "특히 금융지주의 경우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 중심으로 이사회가 구성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가 회장과 가까운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사회가 구성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 원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형식만 갖춘 사외이사 선임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 규준은 금융사의 자율적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금감원과 금융업권 공동으로 마련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입니다. 법률과 달리 강제성은 없지만 금융당국의 검사·감독 과정에서 사실상 기준으로 작동해왔습니다. 모범 규준에는 금융사의 이사회 구성과 운영,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 사외이사 후보 추천과 검증 방식, 이사회 내 위원회 운영 원칙 등이 담겨 있습니다.
앞서 금감원은 2023년 12월 모범 규준을 통해 금융사의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금감원은 이사회가 특정 직군에 편중되지 않도록 회사의 특성을 반영한 집합적 정합성을 갖추도록 하고, 이사회에 대한 평가 기준도 대폭 강화했습니다. 최고결정권자인 CEO를 내부에서 견제할 유일한 장치인 이사회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고, 주인 없는 소유분산기업에서 이사회의 CEO 감시·감독 기능이 유명무실해 각종 금융사고를 유발한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2년이 지난 현재 금감원은 여전히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2년 전 모범 규준을 만들 때도 최종본은 아니었고, 이사회 역할 강화를 위해 절차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며 "아직도 사외이사 구성이 독립적이지 못한 만큼 개선 사항을 반영해 개선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금감원이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은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위해 기존의 '주주추천권' 제도를 한층 더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현재 금융지주들은 주주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과점주주들을 대상으로 사외이사를 추천받고 있으나, 이는 일부에 그치는 실정입니다.
금감원은 이같이 금융지주 중 일부만 운영하는 주주추천권 제도를 전 금융지주로 확대할 방침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외이사 주주추천권 제도를 안 하는 금융지주도 있다"며 "공론화를 통해 주주의 권익을 높이는 방향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 임종룡(왼쪽부터) 우리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회장 '친정체제' 원천 차단해야"
국민연금이 주주추천권을 행사해 금융지주 사외이사 선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찬진 금감원장도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 등 사외이사 추천 경로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금융지주 지분을 6~8%씩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사외이사를 추천한 적은 없습니다.
금융당국은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 이른바 '관치 논란'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 TF 관련으로 당국으로부터 공지는 아직까지 없다"며 "사외이사 구성원들이 편향돼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만큼 주주이익을 대변하는 인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습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통령의 발언은 금융지주의 '이너서클' 구조를 날카롭게 지적한 것으로 시의적절했다고 본다"며 "지배구조 개선 TF 를 통해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국민연금 추천 사외이사 활용, CEO 연임 제한, 승계 절차 투명화 등이 현실적으로 추진되고, 제도적 여건이 마련되면 구조적 한계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전성인 전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민간기업의 결정이기 때문에 정부나 금융당국이 직접적으로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결국 주주의 선택이고, 국민연금 등 공적 투자자들이 연대하여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현실적인 개선 방안으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독립성 강화를 위해 현직 회장 등의 간접적 영향력을 제한하고 외부 전문 기관 추천을 활용해 관리 후보를 확대해야 한다"며 "'회장 친정 체제' 유지 수단이 될 수 없도록 사외이사 임기 제한과 교차 재임 금지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김 교수는 "금융당국도 개입보다는 원칙과 평가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진행하고 투명성을 강화한 이후 시장과 주주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 "사람을 바꾸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제도를 통해 구조를 바꾸는 것이 금융산업 안정성 유지에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금융사 지배구조 TF를 출범시켜 내년 초까지 제도 개선 과제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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