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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마야문명과 발명왕, 그리고 천재소년
2016-05-24 15:13:30 2016-05-24 15:13:31
창조경제센터를 찾아가도 발명왕은 될 수 없다. 발명왕이 되고 싶다는 소년에게 창조경제센터를 찾아가 보라고 했던 대통령의 조언은 일종의 메타포였을 것이다. 웃자고 던진 농담이거나. 세상인심이 각박하긴 한 모양이다. 섬 소년이 가장 가까운 창조경제센터를 찾아가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기어이 계산하더니, 실제 그곳을 찾아갔을 때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설명하는 진지한 글들이 줄을 이었다. 끝내는 “발명왕이 되려면 하루빨리 섬마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동심을 무참히 짓밟는 어른도 있었다. 못된(?) 어른들이다.
 
미국에 사는 한 소년의 성공담은 그야말로 ‘다른 나라’ 이야기다. 주인공은 앨라배마 주에 사는 14살의 테일러. 최근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인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창업 스토리는 더 흥미롭다. 소년은 어려서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경기 도중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는데 마땅한 응급처치 용품이 없어 애를 먹곤 했다. 어느 날 소년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이런 곳에 응급처치 용품을 쉽게 살 수 있는 자판기가 있으면 어떨까?’ 
 
소년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응급조치 용품 자판기를 발명하고 렉매드(RecMed)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경기장, 해변 등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을 직접 찾아가 자판기를 설치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미국 최대 규모의 한 헬스케어 업체가 소년에게 제안한 액수는 3,000만 달러(한화 약 320억 원)에 달한다. 소년은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의 발명품을 빼앗기기 싫다는 게 이유다. 
 
캐나다 퀘벡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는 아예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15살 소년 윌리엄은 어려서부터 마야 문명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마야 문명의 매력에 빠져있던 이 소년이 ‘대형사고’를 쳤다. 흔적 없이 사라진 고대 마야 도시 하나를 찾은 것이다. 우선 소년은 마야문명의 도시 유적 위치가 당시 기록된 별자리의 위치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 마야 천체기록에 나온 142개의 별자리 가운데 117개의 고대 도시 위치가 일치한다. 마야인은 가장 빛나는 별의 자리에 도시를 세웠기 때문이다. 소년은 멕시코 유카탄에 118번째 마야 도시가 있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에 전 세계 연구진이 관심을 보였다. 캐나다 우주국은 소년의 가설에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다른 과학자처럼 윌리엄을 지원했다. 소년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으로부터 위성사진도 받았다. 마야문명을 연구하는 독일의 대학 연구팀은 이 지역을 꼼꼼히 살폈다. 논란의 소지는 남아있지만, 전문가들은 유카탄 반도의 일부 흔적이 마야 문명의 구조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이로운 발견”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년의 가설은 옳았다. 
 
다른 나라, 다른 세상 이야기지만, 이런 소식을 접하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발명왕과 천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천재 소년 송유근 군(18) 역시 반복되는 논문 표절 논란으로 학위는 고사하고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어쩌면 ‘최연소 박사학위 탄생’ 운운할 때부터 그의 불행의 싹은 이미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그런 타이틀을 원했을까? 본인도 결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최연소 박사를 만들어보겠다는 어긋난 어른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천재 소년의 성공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일회용 소모품을 원하는 비뚤어진 사회다. 
 
응급처치 용품 자판기를 발명해 대박이 난 14세 소년이나 사라진 마야 도시를 찾은 15세 소년 역시 전해진 이야기가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일에 몰두한다고 잔소리하는 어른이 왜 없었겠는가. 소년들을 이용해 한몫 잡고 싶었던, 유명해지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대체로 그런 어른보다는 묵묵히 응원해주는 어른이 더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패해도 낙오자로 만들지 않고 그들을 다시 품을 수 있는 사회가 있었을 것이다. 섬 소년의 꿈을 이루게 해 줄 수 있는 곳은 바로 그런 사회다. 
 
잠시 한눈팔면 실패하고, 실패하면 영원히 낙오자가 되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발명왕이나 천재 소년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 자기 기준의 성공(최연소 박사학위와 같은)을 강요하는 어른들이 송 군을 그렇게 만들었다. 참 나쁜(!) 어른들이다. 
 
김형석 과학칼럼니스트·SCOO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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