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글로벌포커스)GDP로는 알수 없는 진짜경제…새로운 지표 필요해
4차산업혁명 GDP로는 제대로 측정 못해…포괄적인 질적지표 마련해야
2016-05-02 12:04:52 2016-05-02 13:50:35
지난 2014년 나이지리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치고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으로 떠올랐다. 당시 나이지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89%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 경제가 성장했다기보다는 GDP 산정방식을 바꾸면서 나타난 착시현상이었다. 앞서 지난 2010년 가나도 같은 이유로 하룻밤 사이 GDP가 60% 증가했다. 산정 방식에 따라 고무줄처럼 변하는 숫자는 GDP를 경제 성장의 척도로 맹신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보여줬다. 전 세계 경제 석학 및 전문가들은 GDP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경제를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할 뿐더러 소득불균형이나 환경문제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며 새로운 경제지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에릭 브린욜프슨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은 한 목소리로 GDP 무용론을 주장했다. GDP로는 한 국가의 경제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파악할 수 없다며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경제상황을 측정하는 지표도 바뀌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이 경제의 질적인 측면이나 새로운 형태의 경제를 포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새로운 지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중국 허베이성의 한 항구 모습. 사진/뉴시스·신화
 
당시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의 GDP는 지난 2009년을 제외하고 매년 상승했지만 미국인 대부분의 삶은 30여년 전보다 나빠졌다"며 "경제성장의 혜택은 일부 부유층에 돌아갔고 하위층의 실질 소득은 60년 전보다 더 줄었다"고 말했다. GDP의 성장이 경제의 성과나 삶의 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이어 "잘못된 항목들에 대해 GDP를 측정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GDP로는 알 수 없는 '삶의 질'
 
GDP는 1930년대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한 국가 안에서 특정 기간 동안 일어난 소비와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수출-수입)을 모두 더해 계산한다. 비교적 간단한 계산법 덕분에 GDP는 한 국가의 경제활동과 삶의 수준 등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로 자리 잡게 됐다. 현재 GDP는 한 나라의 교육 및 인프라 확충 수준, 시장의 효용성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여겨진다.  
 
하지만 GDP를 통해서는 누가,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생산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특정 기간 안에 만들어진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GDP의 개념과 측정방식을 고안한 미국의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도 "GDP는 한 국가의 경제발전 측정에는 적합하지 않은 도구"라며 GDP를 삶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로 쓰는 것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예컨대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로 파괴된 건물을 새로 짓는 비용은 GDP에 플러스 요인이 된다. 또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이를 정화하는 설비에 많은 비용을 투자한 국가는 애초에 환경오염 물질을 적게 배출한 국가보다 GDP가 높을 가능성이 있다. 높은 GDP가 경제 상황이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으로 반드시 연결되지는 않는 이유다. 
 
오픈 SW·공유경제, GDP에 반영 안돼
 
GDP는 70여년 전에 고안된 개념인 만큼 새로운 형태의 경제활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브린욜프슨 교수는 올 초 WEF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경제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 경제학자인 다이앤 코일 맨체스터대 교수는 최근 WEF에 기고글을 통해 GDP에 제대로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산업들을 소개한 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상의 활동이다. 시장가치가 제대로 매겨지지 않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나 개인 블로그 등은 GDP를 계산할 때에는 자원봉사와 같은 범주로 여겨진다. 전 세계 스마트폰의 4분의 3을 점유하고 있는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기 때문에 GDP를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우버와 에어비앤비, P2P대출 등으로 대표되는 '공유경제'도 GDP 상에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비용이 부과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플랫폼이나 공급자에게 일정 수수료나 사용료를 내더라도 그 안에는 사용가치가 모두 포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유경제로 서비스 이용료를 아낀다면 이 자체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만 현재의 계산으로는 소비자 잉여로 남으며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코일 교수는 "기술 혁신은 소비자 잉여가 증가하도록 만들었지만 GDP는 이같은 현상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경제는 오히려 GDP에 마이너스 요인이다. 은행이나 쇼핑, 여행산업 등 서비스업의 많은 부분이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기업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는 크게 줄었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상에서 과거와 같은, 혹은 더 편리한 서비스를 누리게 됐지만 GDP에 반영되는 기업의 투자는 줄어들면서 경제가 위축되는 것 같은 모습을 낳게 된다. 
 
상품 가격이 기술의 진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의 제조비용은 크게 줄고 있지만 소비자가격에는 큰 변화가 없다. GDP는 상품 가격을 바탕으로 산정하는데, 가격이 고평가됐다면 GDP는 저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될 다양한 산업적 성장이나 변화도 GDP를 통해서는 제대로 측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공정성·환경·삶의 질도 측정해야"
 
제니퍼 블랭크 WE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기술 진보와 인구구성의 변화, 소득불평등 등을 GDP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공정한지, 친환경적인지, 삶의 질을 향상시켰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 블랭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공정한 성장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분배가 얼마나 잘 이뤄지냐, 성장을 통해 대중의 삶의 질이 개선됐느냐에 대한 문제"라며 "미래 세대가 감내해야 할 부채로 경제성장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에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위해서는 환경을 보호하는 녹색 성장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 활동의 경제적 영향과 환경적 영향을 동시에 고려하도록 하는 환경회계(environmental accounting) 등을 도입한다면 기업 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아울러 공유경제처럼 환경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경제활동을 생산성을 계산하는 데에 어떻게 포함시킬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선진국들의 과거 실수를 목격한 신흥국들은 GDP 숫자만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질적으로 더 나은 성장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블랭크는 "아프리카개발은행 회원국들은 높은 성과만 쫓기보다는 친환경 성장을 추구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비영리기구 '신경제포럼(NEF)'은 지난해 10월 GDP를 보완하기 위한 지표를 선정해 공개했다. ▲양질의 일자리 ▲행복감 ▲환경 ▲공정성 ▲건강 등 5가지다. 
 
우선 양질의 일자리는 단순히 고용률 혹은 실업률을 계산하지 않고 충분한 소득을 벌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따진다. 행복감은 경제성장이 개개인의 삶을 얼마나 향상시켰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시민들에게 소득이나 건강, 주거, 사회적 유대감 등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방식으로 조사할 수 있다. 현재 일부 국가에서는 삶의 만족도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지만 정책적으로는 유의미하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환경 문제는 한 국가가 세계 시민으로서 얼마나 많은 책임을 지는지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NEF는 일상생활의 탄소배출량을 국가별 탄소배출 할당량과 대비해 환경문제를 평가할 것을 제안했다. 부의 불평등 문제는 소득 하위계층의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심화될 경우 사회 분열 등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정한 소득 분배 문제에 관심을 두고 살펴야 한다. 마지막 건강은 예방 및 치료 기술을 통해 사망에 이르지 않을 수 있는 환자가 어느 정도인지를 계산해 지표화 할 수 있다. 
 
NEF는 5가지 지표를 바탕으로 영국의 삶의 수준을 평가했다. 2014년 기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인구는 61%로 4년간 1% 넘게 하락했다. 정부가 집계한 고용률(94%)과도 차이가 컸다. 행복감은 10점 만점에 7.6점으로 지난 4년간 0.9% 개선됐다. 이 기간 탄소배출비율은 91%에서 98%로 높아져 할당량의 2%만 남은 상황이다. 건강부문의 지표는 4년간 1.8%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4년 영국의 GDP가 전년대비 2.9% 성장한 점을 고려하면 GDP 성장 속도에 비해 삶의 질 성장 속도는 더뎠던 셈이다. 
 
스튜어트 왈리스 NEF 전 회장은 "GDP는 속도계로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보여주지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며 "잘못된 길에 들었는데 속도계만 보고 빨리 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